누드 컴퓨터
살다보니 누드 컴퓨터도 있더군요
케이스가 투명 아크릴로 되어 있어서
속의 훤히 보입니다
LED램프도 여기저기 번쩍이며 휘황찬란합니다
뒤짚힌 것 같지만 이게 제대로 앉은 옆모습니다

누드라해도 전자부품들만 보이지 컴퓨터가 일하는 동작은 보이지 않습니다
속이 훤히 보이니가 오히려 이상합니다
속이 안 보일 때에는 컴퓨터가 위대하게도 보였었는데
텅 빈 듯하고 썰렁한 속의 컴퓨터를 보니 웬지 믿음이 덜 갑니다

사람도 그럴까요?
그 사람의 속속들이 모두를 알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 사람의 전부를 안다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사람의 속속들이를 안다면 그 사람 또한
속속들이를 다 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속내를 이해할 수 없는 친구의 머리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진심을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그렇게도 번번히 저지르는 그 사람도 속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최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누드 컴퓨터를 보고나서 깨닫습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있어도 좋은 것입니다

모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애를 태우고 섭섭해하고 미워하고 남의편을 만들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만 다 알고 이해하고 품고 좋아해도 이미 충분히 그 사람을 아는 것입니다
당신이 모르는 그 부분은 당신의 몫이 아닙니다
당신이 모르는 그 부분은 그 사람의 몫이고 신의 몫이고 용서와 아량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