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술집

인사동 대로
그 중간쯤 올라가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선 바로 거기 어디쯤

간판이 멋진 술집이 하나 있었다

깊은 인연이 없어서 간판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작은뜨락이었지 싶다




제목이 멋있어서 처음 그 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감탄 감격 그리고 단발마였다

아! 아니! 이럴수가!

너무나 작고 좁은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다닐 수가 없을 정도였다

세상에나 이렇게 작은 술집이 있을까 !

폭이 1미터 남짓 하고 뒤집힌 기역자 꼴이었다

세평도 안되는 그야말로 초미니술집이었다




문 열고 들어가서 꼬부라진 곳에서의 풍경이다

왼쪽 작은 선반 같은 데가 테이블이고

둥근 의자를 놓고 바짝 당겨 앉아 마시다가

조금 뚱뚱한 손님이 지나갈라치면 의자를 더 당기면서

배를 조금 홀쭉하게 만들어야 한다

조금 지나가면 손님 하나 앉을 그 자리에 주방이 있고

조금 더 지나가면 바로 출입문이다

사진 찍는 바로 뒤로 왼족으로 꼬부라져

앞에 보이는 길이의 사분의 일 정도의 공간이 또 나온다

그게 전부이다

대충 어림짐작을 해도 12명 정도이면 자리가 꽉 찬다




머리를 숙이고 몸을 홀쭉하게 만들고

비좁게 앉아야 겨우 마실 수 있는 작은 술집

다정한 주인과 맛깔스러운 음식과 간단한 메뉴가 참 인상적이다

계산을 할 때에는 또 한번 놀란다

먹은 것에 비하여 값이 너무 쌌다

몇 번 가 보았는데 늘 손님이 없을 때가 없었다

한두명 나를 닮고 주인을 닮은 손님들이

마음 편하게 푸근히 퍼질러 앉아

인생과 세월을 낚고 있었다




그렇게 몇번 드나들다가 한동안 시내에 나가질 않아 발길이 뜸했다

그 이름을 잊었을만 했을 때 가보니 문을 닫고 그 술집은 없어졌다

가슴이 아렸다

왜 문을 닫았을까?

장사가 안되어 닫았을까?

장사가 잘 되어서 확장개업 했을까?

장사가 잘 되었다면 다른 사람이 인수를 했을 텐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술집이 사라졌다는 것에 마음이 짠했다

사실 그 술집에는 깊은 인연이 없어서 그 술집이 사라진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 작은 술집들이 사라지는 것 그 자체가 아쉬웠다




지금은 모든 것이 대형화이다

슈퍼도 학원도 가게도 사업도 결혼식도 식당도 기업도 모두모두 대형화이다

작고 아담하고 실속있고 겉보기에 보잘것없이 보이는 것은 다 문닫게 되는 세상이다

가뜩이나 거대해진 세상 앞에서 주눅이 들었는데 마음 편하게 한잔 마실 술집도 대형화이다

점점 나 개인은 쪼그라들고 오그라들고 모지라지고 사그라진다

형편없이 작아진 나를 질질 끌고 오늘은 또 어디에 가서 마음의 제왕이 되어볼까

세파에 시달려 소리없이 사라진 작은뜨락이라는 작은 술집을 그리워한다

주머니 돈 이만원이면 친구들과 두어 시간을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었던 곳

나랑 비슷한 주인과 또 나랑 비슷한 손님들과 이런 저런 얘기 주고 받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고 마음이 부자가 되어 편하게 한잔 마실 수 있었던 술집

혼자 가도 여럿이 가도 똑같은 마음으로 마실 수 있던 술집

이젠 가고 없다




어디 사라져가는 것이 작은술집 하나뿐이랴

힘없고 작고 연약한 것들은 사라진다

내 돈 내고 내가 술집 들어가는데도

기웃기웃 눈치를 보는 것은

내가 소심하거나 늙어서가 아니다

모두 내편이 아닌 것 같다

다들 혹성에서 온 골리앗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