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가기




어느 카페에서 <詩語가기>라는 방제목을 보고
기막히게 잘 지은 제목이라 생각했다.
<쉬어도 가고> <시를 쓰기도 하고>
발음도 좋고 아무래도 멋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겐 그 <시어가기>가 다르게 보였다.



서른 살 전에는 나도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한 때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르고 깝죽대면서 <세어가기>를 꿈꾸었다.
달랑 불알 두쪽의 힘을 믿고 세상천지가 내것처럼 <세어가기>를 꿈꾸었다.

서른 다섯 고개를 넘으면서 나는 진로를 바꾸었다. <시어가기>로 작정을 했다.
풋김치 네들이 뭘 아랴. 마시 제대로 들려면 적당히 <시어가기>를 해야지.
내게 맞는 꿈을 골라 새콤달콤하게 신김치처럼
어느 구석에서라도 한껏 빛을 보리라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정말로 <쉬어간다>는 쉰이 되면서 나는 가던 길에 주저앉았다.
쉰내가 풀풀 나면서 내 꿈은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고
몸도 마음도 정신없이 모지라지고 까라지고 뭉그러져갔다.
어느새 나는 <쉬어가기>가 된 것이다.

쉰내나 풀풀 풍기면서 마지막 카드를 꺼내서 또한번 호기를 부린다.
암! 이건 쉬어가는 것도 아니고 썪는 것도 아니다. 난 지금 발효중이다.
멋진 음식이 되기 위해 삭혀가고 있는 중이다.

골마지가 끼더라도 좀 냄새가 나더라도
참고 기다리라고 부르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