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생 서원한 것
한국의 야생화 500개를 시로 형상화하겠다고 일생의 목표로 삼은 지 17년
야생화가 늘 그자리에 피지 않고 시들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진을 혼자 배우기 시작했다
17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특히 여름에는 더위와 전쟁이다
원래 땀을 많이 흘리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목에 매고 지팡이를 짚어가며 산과 들로 쏘다니다 보면
땀흘리는 것쯤은 이제 대수도 아니다
땀이 줄줄 흘러 겉옷까지 다 적시고
그것도 모자라 허리띠가지 옷이 다 젖는다
돌아오는 길에 그 땀이 마르는 경우 집에 오면 거짓말 조금 보태
밥숟갈로 소금이 세개쯤은 나온다
그러니 웬만한 더위는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며칠 장마도 있었고 시간도 맞지 않아 요즘 며칠 사진을 찍지 못했다
7월에 피는 여름꽃들에게 미안해서 오늘 출사를 하기로 작정했다
요즘 기온이 30도쯤 되니까 내딴에는 더위를 피하여 2시가 넘으면 괜찮겠지 했다
그래서 양수리 김준경선생 산소로 가기로 했다
아래 사진은 오늘 산소에 핀 야생화 타래난초의 사진이다 타래난초
당신이 나를
난초라 부르고
정성들여 키웠을 때
당신 곁으로 달려가
빼어난 자태 뽐내며
한 포기 난초가 되었소
당신이 나를
잡초라 부르고
못생겼다 눈돌렸을 때
잔디밭 풀 속에 섞여
서러운 심사 배배 꼬며
한 포기 잡초가 되었소
당신에게 있어 나는
불러주기에 달렸지만
난초 잡초는 당신의 욕심
이젠 당신의 애증을 벗어나
빛나는 태양을 즐기며
내 한 몫 다하는
한 포기 풀이 되겠소
식물이름: 타래난초
과 이름: 난초과
학 명: Spiranthes sinensis (PERS.) AMES.
생 육 상: 여러해살이
자라는 곳: 잔디밭, 논둑, 오래된 산소, 특히 경기지방에 많다
잎 모 양: 땅잎은 길이 5-20 cm 나비 3-10 mm 줄기잎은 아주 작다
키: 꽃대높이 10-40cm
꽃 모 양: 나선형으로 꼬여가며 아래를 향해 줄기 상부에 타래로 달린다
꽃피는 때: 6-7월
남다른 점: 꽃이 꼬여가며 타래모양으로 피기 때문에 타래난초라 한다
풀밭에선 잎이 구별이 안 돼 꽃이 피어야 찾을 수 있다
뿌리는 방추형으로 굵다.
쓰 임 새: 화초용으로 아주 아름답다.
**도감에서는 이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으나 실물을 보지 못했다.
꽃사진을 찍으러 다닌 지 이 년만에 망우리 공동묘지 산소에 이 꽃이
핀 것을 보고 세상이 온통 내 것이었다. 한나절 내내 그 타래난초 옆에서
요리조리 뜯어보며 행복했고 요묘한 생김새에 감탄을 했다. **
그런데 오늘은 더운 정도가 아니었다
소에 오르는데 숨이 컥컥 막혔다
사진을 찍으려고 땅에 엎드리니 땅에서 더운 열기가 확 뿜어나온다
땀이 후두두둑 떨어져 카메라로 곤두박질친다
땀은 소금기가 있어서 카메라를 부식시킨다
얼굴의 땀은 아예 닦을 생각도 안하고
카메라만 부지런히 닦았다
너무 더워서 땀이 비오듯 한다
집에 돌아갈까 하다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하고 강행군을 했다
가져간 얼음물은 이미 바닥이 났다
몇 킬로 더 가서 폐허가 된 식물원에 갔다
해바라기 백일홍 능소화 털여뀌 부용 부레옥잠 짚신나물 등을 찍는데
계속 10분을 못 찍겠다
땀을 너무 흘렸는지 정신이 가물가물하고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일사병에 걸려 쓰러지겠구나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내려와 차에 올랐다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오늘 기온이 34도란다
에구머니나 죽을 뻔 했네
이제 야생화시 260개 썼는데 벌써 죽다니 안될 일이지
오늘 그렇게 더울 거라고 일기예보에 안 나왔나 본데
큰산에 갔었더라면 핸드폰도 안 터지고 알릴 사람도 없고
그러다가 딱 죽기 알맞다
에구에구 오래 살려면 조심해야겠다
2005년 7월 22일 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