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각 대학교의 취업률이 공개되었다.

학교의 수준이나 평소의 선입견을 깰 수 있는 발표였다. 물론, 학생들이 입사한 기업의 수준이나 직무의 정도는 별도로 논의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취업률이 높고 낮은데에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방학을 앞두고 특강을 하는 몇몇 대학교에 다녀 왔다.



발표된 취업룰 순위에 들지 못한 지방대학교에 “대학생의 진로 선택과 미래”라는 주제를 갖고 강의를 하러 갔다. 강사가 제 시간에 강의장에 도착하는지, 점심은 어디서 어떻게 드실런지, 어느 강의장으로 가면 되는 건지 등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학교 앞에 도착하여 전화를 했더니 강의장을 알려 주며, 그곳으로 가 있으라고 했다.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 학교 근처 커피 숖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혼자만의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의장에 들어 서니 200 여명의 학생들이 들어 찰 강의장 앞부분의 좌석 100여 석이 텅 비어 있고, 뒤쪽 가장자리로 둘러 앉은 학생들은 너무 떠들고 어수선하여 강의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2시간의 강의에는 관심이 없고 출석표를 적어 내고 나가려는 학생들만 눈에 띄었다.

강의실은 너무 추워 마이크를 든 손이 차갑고 몸이 떨렸다. 취업지원팀장이 학생들에게 과제제출에 대해 설명했지만, 학생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첫 교시 2시간 강의를 마치고 점심 때가 되었지만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 그냥 서울로 돌아 갈까 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다음 시간에 강의를 듣고자 하는 “실망에 찰 소수 학생들의 눈초리”가 아른거려 그럴 수는 없었다.

강의를 끝내고 돌아 오면서 “그 학교에 그 학생들일 거”라는 아쉬움이 들어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대학교가 그럴 거”라고 알고 있을 그 학생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취업률 발표 순위 안에 드는, 천안 근처에 있는 학교에 강의를 갔다.



저녁 6시쯤에 시작된 강의는 밤 10시가 가까워 끝이 났다. 우수학생 20명 정도를 선발하여 집중적인 심화학습으로 하루 4시간씩, 몇 개월 동안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배도 고프고 지쳐있을 것 같아서 강의가 불편해질 까봐 걱정했던 강의는 의외로 수준 높고 호기심 많은 학생들의 참여에 의해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앞다투어 발표를 하고 적극적인 목소리로 생각을 이야기 하며 쉬는 시간에 따끈한 커피를 뽑아 주는 학생들, 4시간이나 기다렸다가 강의장을 정리하면서 인사를 건네는 학습 진행담당자, 쉬는 시간에 질문을 던지며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눈빛, 이들의 미래를 밝혀 줄 모습으로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학교 교정의 가로등 불빛 등은 정말 아름다운 조화의 한 장면이었다.



100km 속력으로 2시간을 달려야 할 자동차의 시동을 걸면서, “별로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빠르게 달려 가서 나누어야 할 중요한 가치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에게 양질의 학습과정을 제공하기 위해 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해 가며 관계 당국의 지원을 받아 내고, 비싼 돈 들여 가며 밤 늦게 강사를 불러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는 학습 기회를 부여하는 학교에서의 강의는 정성과 배려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를 타기 위해 늦은 밤 어두운 캠퍼스를 뛰어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망해가는 나의 조국, 한국의 미래”를 이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학교의 지원이 없어 추위에 떨면서 수백 명의 학생이 억지로 한자리에 모여, 듣고 싶지도 않은 강의를 듣고자 하는 모습의 학생들이 있다. 반면에 스스로 열정과 정성이 넘치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밤늦게가지 진행되는 소수 정예 학습과정을 듣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의 취업률이 같을 수는 없다.



기회의 평등을 결과의 평등으로 착각하는 학교나 정부 당국의 무관심은 많은 학생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학문의 전당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학생들의 취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무사안일(無事安逸)하게 앉아 있는 취업정보실이나 취업지원센타의 학습진행 방법은,



노심초사(勞心焦思)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보다 나은 교육과정을 찾아 뛰어다니는 책임감 있는 전문가의 우려 섞인 학습과 같지 않다. 그 결과 또한 같을 수가 없다.



이들 두 가지 형태의 상이한 모습을 보이는 대학교의 등록금이 비슷하다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학부모들은 이와 같은 교육현장에 관심이나 있을까?



화려한 언어의 잔치로 “실업극복”을 외치는 방송 역시 현실을 모르는 것 같아,

아니, 애써 알려고 하지 않으려는 무책임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