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젊은 친구가 커다란 봉투에 여섯 권이나 되는 책을 주고 갔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 정약용, 박제가, 이 욱, 심노숭 등의 수필집이었다. 대나무통에 담근 술 한 병과 함께 받은 뜻 밖의 선물에 당황하고, 고마워하고, 미안해 하면서 부담을 느꼈지만, 그 선물을 왜 받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새벽 4시 반쯤 일어나 모든 자연이 숨 죽이고 쉬면서 막 움직이려는 시간에그 수필집들을 펴 놓고 읽어 내려 간다. 옛 것을 되새기며 상상하며 읽는 그 시간은 마침, 유일하게 다양한 국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정책적으로 제한된 국영방송에서 딱 한가지 유익하게 들을 수 있는 채널인데 하루 종일 클래식과 고전음악이 흐른다. 하루 세 번, 자주 듣기 힘든 선조들의 가락과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그 때 이와 같은 수필을 읽으며 또 다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여 년 전, 어려웠던 국가와 사회를 걱정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면서, 관리들의 부정과 폐습을 염려했던 선조들의 모습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욕심과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 자연과 벗하며 시간을 기다리는 지혜와 삶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자연과 벗하며 느림의 철학을 연구한 학자들의 흔적 앞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당시의 가난과 슬픔과 안타까움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효행(孝行)과 열녀의 행실을 엿볼 수 있으며, 지금의 가볍고 난잡함과 비교하면서, 디지털 시대의 현대문명이 200년 전과 다르지 않은 삶이라는 걸 생각하니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다.



성공을 위한 처세술이 넘쳐 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과 전략, 전술(Skills, Strategy and Tactics) 등의 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작금에, 단순함과 서두르지 않음, 학문 탐구의 즐거움과 고독의 기쁨, 음악과 문장(文章)의 조화를 생각하며, 시(詩)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안분지족(安分知足)한 인생을 보여 준 선조들을 만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아침 일찍부터 집 밖으로 내 돌며, 고민과 갈등에 휩싸인 고객을 만나 함께 고민 하고 대안(代案)을 연구하고, 기업체에 나가 강의를 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제 시간에 칼럼을 써서 보내 줘야 하고, 제 시간에 현장을 방문해야 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 버린 요즘이었다.



그런 요즘, 하루 24시간 중 단 몇 분 몇 시간이라도 마음의 평정을 얻고, 심적인 부담을 내려 놓고, 아무 생각 없이 아름다운 글을 읽고, 가련한 애환이 스며들어 있는 음악을 들으며, 현실을 잃어 버릴 수 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재빠르게 출세하고 대박을 터뜨리는 기법보다는 옛날의 인간들이 살아 온 모습과 생각을 더듬어 보고, 그들이 정리한 마음의 범위를 음미해 보고, 존재하는 방식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책들을 만나는 기쁨 또한 밤새도록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와의 만남과 무엇이 다르랴?



작년과 올해는 선물 받은 책이 꽤 많다. 지인(知人)들이 쓴 책만도 열 권이 훌쩍 넘으며, 잊을 만 하면 책을 사 들고 오는 “빈”이라는 젊은이도 있다. 좋은 책을 샀는데 같은 책을 받기도 하고 길에서 줍기도 한다.



최근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올라 와 있는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은 우리 나라에서 출간되기 전에 원서를 구입해서 읽고 있었는데 어느 분이 번역본을 선사하였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차에 한경 “직장인을 위한 변명”의 세미나에서 추첨에 당첨되어 원서를 또 한 권 얻었다. 한 가족이 동시에 나누어 읽으며 경쟁(?)을 하고 있다.



부자가 아니라서 잘 살지는 못해도 책 복이 넘치고 친구 복이 넘치는 듯하고, 살아 있는 순간의 시간들이 넘치니 또 다른 기쁨이 있는지라.



그런 시간을 만들어 가는 시기에 이렇게 좋은 책을 여섯 권씩 건네 준 그 젊은이에게 감사 드리며 이제서야 그런 책을 전해 준 이유를 알겠거니, 어찌 그대를 잊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