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다시 시작할수 있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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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뀐 신정(新正) 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한다. 설 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또 새해 인사를 한다. 참 좋은 일이다. 한 해에 두 번씩 새해 인사를 하니, 하지 못한 인사 다시 할 기회도 있고, 핑계를 댈 수도 있다.
연초에 세운 목표나 계획이 한 달이 지나도 실천되지 않아 속상해 하다가도 설이 되면 다시 수정해서 새로운 계획으로 바꿀 수도 있다. 편한 대로 살기에 알맞다.
3월이 오면, 그건 더 좋다. 두어달 동안 망설이며 꾸물거리며 시작도 하지 못한 일을 다시 시작할 이유를 만들 수 있다. 꽃이 피고 새싹이 돋는다는 의미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책도 새로 사고, 교복도 사고, 애들이 학교 가는 걸 보면서 직장인들도 마음을 가다듬는다.
“봄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잘 해야지”라고 하면서 게을렀던 핑계를 대고 망설였던 나약함을 이야기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변명을 하면, 옆 사람도 기다렸다는 듯이 계획을 수정하고 목표를 고치고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1월부터 3월까지가 1/4분기다. 1분기 실적이 낮으면 4월부터 다시 잘 할 수 있도록 3월 중에 계획을 수정할 수 있다.
봄에 해야 할 것들
참 좋은 3월이다. 옷 갈아 입기도 좋고 갈아 입은 옷이 무겁지도 않고 가벼워 보이지도 않아 따뜻할 때도 있고 쌀쌀하기도 하다. 그런 3월에 꼭 해야 할 일은 뭘까? 늘 하고 싶었던 몇 가지만 일단 시작해 보자. 지금.
첫째, 사랑을 시작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한 계절에 사랑을 하는 거다. 자주 연락을 하지 않던 친구에게 전화도 해 보고, 기억에서 지워질 듯한 고객에게 e-mail도 보낸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지가 오래된 아내나 남편에게 꽃을 사 들고 가서 뽀뽀도 해 준다. 애들을 데리고 공원도 거닐고 시원한 베란다에 앉아 맥주도 한잔 마신다. 식구들과 함께 고향이나 시골집에 가서 오래 묵은 꽃밭도 다듬는다. 장독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강아지에게 다가가 온몸을 어루만지며 사람의 정(情)을 느끼게 해 준다.
어른들이 손대지 못한 마당도 쓸고 울타리 밑에 뾰쪽하게 돋아나는 새싹을 바라보며 꿈을 이야기 하고 흙을 갈아 준다. 일요일 아침 일찍 집안을 뒤집어 놓는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쌓아 놓은 서류들을 뒤적이면서 빛 바랜 종이와 소중한 책들의 사랑을 정리한다. 스크랩을 한다고 모아둔 신문꾸러미를 펼쳐 놓고 아름다운 뉴스와 예쁜 칼럼을 오려 둔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의 소식은 별도로 모아서 아이들에게 읽힌다. 이 모든 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끝을 낸다.
둘째, 좋은 책 다섯 권을 산다. 다섯 권 사러 갔다가 열 권을 사도 괜찮다. 인터넷도 좋지만 가급적 직접 서점으로 간다. 복잡한 통로에 앉았다 일어 섰다 하며, 책 사러 나온 사람들 틈에 끼어 책 고르는 즐거움도 만끽한다. 평소 사고 싶은 책도 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좋을 책을 발견하면 충동구매도 한다. 책 사는 데는 충동구매도 권할만하다. 나중에 괜히 샀다 싶으면 도서관에 기증해도 된다.
식구들이나 친구, 선후배들에게 사 주고 싶은 책도 골라 본다. 오랜만에 무거운 책 한 보따리를 들고 오는 걸음걸이가 얼마나 뿌듯한지 느껴 본다. 집에 와서 풀어 놓으며 어느 책부터, 어디부터 읽어야 좋을지 몰라 갈등 하는 시간의 즐거움은 일년 내내 습관이 될 수도 있다. 심심하다고 TV 채널 돌리며 졸고 있는 것보다, 서점에 가서 방황하는 게 얼마나 좋은 버릇인지 모른다. 봄날에 책 사는 습관이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가면 겨울엔 인품이 달라진다.
셋째, 연초에 세운 목표를 수정한다. 막연히 생각했던 꿈과 비전을 그림으로 그려 본다(Visioning and Dreaming). 낙서도 좋고 표(表)를 그리는 것도 좋다. 순서에 관계없이 생각나는 대로 하얀 종이에 써내려 간다. 마구잡이로 쓴 각각의 계획들을 구분하여 따로따로 모은다(Grouping). 그리고는 각각의 꿈과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Visualization).
어떻게 해야 그 꿈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각각의 목표에 숫자를 써 본다. “책을 많이 읽고 일찍 일어 나야지”를 “매일 5시에 일어 나고, 한 달에 두 권의 교양서적을 읽어야지”로 바꾸어 본다. “고객관리를 철저히 해야겠다”가 아니라 “일주일 동안 만난 사람으로부터 받은 명함 중에 중요한 명함 10개씩을 선택하여 다음 주 금요일 이전에 전화를 하고 메일을 보낸다”고 수정한다. 왠지 꼭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두어 시간동안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덧 금방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끝으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퇴근길에 가장 가까운 학원으로 가 본다. 시간표 보면서 회사 일정 보면서 업무 생각하면서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한가지 프로그램에 등록을 한다. 참고서와 테이프도 산다. 매년 마음만 먹으면서 결심만 하면서, 시작만 하면서 하지 못한 공부를 지금 시작한다. 작심삼일이라도 좋고, 일주일 다니다 말아도 괜찮다. 심심하고 지루하거나 포기할 것 같으면 회사 동료나 입사 동기, 친구들과 함께 시작해도 좋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마음만 먹으면 결과가 없다는 게 단점이다. 하다가 포기하는 것도 습관이지만 시작을 잘 하는 것도 습관이다. 매일매일 시작하는 습관은 하루하루의 삶을 충실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인생이다. 존재하는 모든 순간들이 변화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을 게 있다.
첫째, 하는 일에 대한 가치관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먹고 살기 위해, 자식을 키우고 카드 값을 갚기 위해 지금 일을 하고 있지만, 보다 높은 차원의 다른 생각이 필요하다. 65억 인구가 살고 있는 이 땅 위에 자신의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일의 성과와 품질은 달라진다. 게으르거나 나약한 것보다는 부지런하고 강인한 정신이 사회 성장과 문명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게으르고 나약할 수 없음을 공감해야 한다. 이 같은 직업과 일에 대한 가치는 변할 수 없다.
둘째, 이웃과 함께하는 즐거움이다.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다고 걱정하지만, 어느 누구도 혼자 힘으로는 하루도 견딜 수 없다. 싫어도 필요한 사람이 있고, 미워도 아쉬운 사람이 있다. 조직사회에서, 회사 안팎에서, 협력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그 누구도 자신만의 노력과 능력으로 살아 남을 수 없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사람이나 강아지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팀과 부서가 협력을 하지 않고, 상사와 후배가 돕지 않으면 그 어떤 장소에서도 따뜻한 봄기운을 느낄 수 없다. 세상 만물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기(氣)를 더하고 나누어 성장하기 마련이다.
끝으로, 실력과 능력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몸담고 있는 직장인이거나 전문직 종사자라면, 외견으로 나타나는 얼짱몸짱으로 능력을 평가 받을 수는 없다. 일부 몇몇 사람들이 이미지 변신을 위해 뼈를 깎고 살을 에어내는 아픔을 참으며 성형수술을 한다고 하지만, 그럴 시간과 노력과 아픔을 직무 수행능력과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것보다 나을 수 없다. 제 아무리 멋진 미인이라 해도 인격이나 품성이 올바르지 못한 상태에서 성공하는 사례는 없다. 조금 부족한 점이 있으나 다른 요소 때문에 잠시 인정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삶의 여정에서 나타나는 실력과 능력은 누구에게도 감출 수 없다. 그러한 역량 개발은 역시 시간과의 싸움이다. 같은 잠을 자고 같은 즐거움을 느끼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어리석음은 없다고 아인쉬타인은 말했다.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절에 아름답고 화려한 왈츠를 추고 싶다면 지금 작은 노트를 꺼내 놓고 낙서를 시작한다.
내년 봄, 나는 지금과 같은 생각과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가?
(대우인터내셔널 사보(社報), 필자의 글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