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1월 5일 (날씨: 晴, 맑음), 서울은 영하 16도였다.
창경원에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 대중잡지의 검열이 심했다.
국어(일본어)와 조선어 공부를 했다. 조선은 미개(未開)한 늣김이다”



연말연시의 한가한 시간을 내어 서재를 정리하던 중, 2007년 6월, 일본 후쿠오카 규수대학교(九州大學)의 “한국사연구센터”를 방문해서 강의를 들으며 메모를 했던 종이를 찾아 냈다.



일본에 하나 밖에 없는, 한국관련 연구소인 규수대학의 “한국사연구센터”는 매년 5~20명의 대학원생을 배출하고 있다고 한다. 와세다대학교에서 “한국근대사” 전공의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하라 토모히로”는 일제시대의 한국 학생의 일기를 연구 분석하고 있었으며, 그 내용을 우리 일행에게 설명해 주었다.



동 일기는 1929년 서울 인사동 헌 책방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2학년생의 일과 내용이었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한문, 조선어, 영어, 대수 기하, 동물, 도화, 교련 수신(修身) 등을 공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일기는 한자 혼용한 문장으로 일본어와 영어도 섞어 쓰고, 일기를 매일 쓰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비밀스럽게 쓴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본 일기에서 풍부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으며 평온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의 조선사람은 2천만 명이었다.




“한국사연구센터”에서는 일제시대의 조선과 조선인을 연구하면서 일본 통치 지배의 실상과 이에 대한 조선인들의 저항운동을 연구하고 있었다. 큐수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대학생들에게 조선학생이 쓴 일기를 읽게 하고 감상문을 받고 있지만, 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곤란한 점도 있다고 한다.

본 일기의 필자는 서울대를 졸업한 후 검사가 되었다가 납북된 것으로 추정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의 일기는 농촌에서 발견되거나 조선을 여행과정에서 극소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현재 일제시대의 조선을 연구하는 느낌은 “현재에서 보는 과거”인만큼 감정과 느낌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일본의 우경화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한다.
슬픈 역사를 잊어버리는 민족은 그 역사를 반복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역간 세대간 갈등을 겪으며 좌충우돌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는 영토분쟁을 일으키면서 무언가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내치(內治)의 혼란”을 겪을 때가 아닌데, 복지타령이나 하면서 예산처리는 대충 마무리 짓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지도자들이 있다고 하니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 일본과 중국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학자나 정치지도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