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가을에 남녀의 차이가 있을까? 천도의 운행에 무슨 남녀의 차별이 있을까마는, 봄은 여성을 닮았다. 봄은 여성의 화사한 옷차림과 짧아진 스커트에서 먼저 느껴진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은 따사로운 여성의 손길과 닮았다. 봄처녀는 매섭게 떨게 만들던 冬將軍을 물러세우고, 화사한 봄을 노래한다.
요며칠 반짝 추위가 왔다. 꽃샘추위라 불리는 초봄의 추위도 동장군에 속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시샘에 비유되는- 예쁜 여성적 이름을 갖는다.
봄 여름은 陽에 속한다고 하고, 가을 겨울은 陰에 속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기로는 봄은 여성이요 가을은 남성이며 맹추위를 부리는 겨울은 동장군이라 부른다. 이런 모순은 어떻게 된 일일까?
봄에 양기가 자라나서 여름에 극도에 이르고, 가을에 음기가 자라나서 겨울에 극도에 이르며 다시 봄이 되면 양기가 자라난다고 보는 것은 역학을 거론하지 않아도 상식적인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태양의 주기운동과 연관시켜보면 일조량과 기온 변화의 비례관계로 바로 이해된다.그런데 봄이 여성의 계절로 불리는 것은, 봄은 본래 양에 속하지만 양에는 음인 여성이 감응하기 때문이다. 자석의 N극은 S극을 만나야 서로 당기는 힘이 발생하지만 같은 N극과 만나면 밀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봄의 양기에 음기가 感應한다는 陰陽의 법칙에 의해 여성은 봄을 탄다. 햇빛에 감응되어 고주몽을 잉태했다는 유화부인의 이야기도 어느 봄날의 따사로운 햇빛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성은 봄을 탄다는 자연의 거대한 법칙을 거스르지 못한 유화부인은 그렇게 건국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마도 유화부인은 동서고금의 신화와 역사를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봄처녀라고 해도 전연 손색이 없으리라. 유화부인은 그렇게 역사에 길이 남는 봄처녀가 되었지만, 필자가 검정고무신 신던 시절 많은 봄을 타는 처녀들이 ‘바람났다’는 혐의만으로도 집안 식구들에게 몰매맞는 장면을 목도해야 하기도 했다.
청소년들도 봄을 탄다.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양의 기운을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가출이 급증하는 시기도 봄이다. 시골출신의 필자도 봄이 되면 누구네집 애가 서울로 도망쳤다고 수군거렸던 추억이 있다. 학교 다니기는 싫고 이런저런 형편이 여의치 못한 문제아들은 봄이 오면 혼자 열병을 앓는다. 그러다가 어느 따뜻한 봄날 강렬한 봄의 부름을 받고 길을 떠난다. 계절의 여왕의 속삭임을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전번 설날 때에 뾰족구두를 신고 와서 자랑하던 春子 혹은 春植이의 주소를 가슴에 품고 등록금을 챙겨서 집을 떠났다. 아마 소 100마리를 끌고 북한을 방문하므로써 남북경협의 물코를 튼 왕회장님이 소시적 소판 돈을 들고 가출한 날도 어느 봄날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봄꿈에 취해 무지개를 따라나섰다가 신화의 주인공이 된 분도 계시건만, 어느 가을날 그만 뒷덜미를 잡혀 집에 끌려오던 우리의 형들 누나들…
봄날은 따뜻하지만 그 부드러운 유혹은 강렬하다. 마치 어둔 그믐이 지나서 서쪽하늘에 눈썹같은 초생달이 떠오른 것과도 같고, 어린 새싹이 아스팔트를 뚫고 솟아오른 것과도 같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설레임에 도취되는 위험한 때이기도 하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긴 언덕에 누워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이던 봄바람에 도취되던 그 봄날의 추억을 기억하는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지금도 그 따사롭던 봄날의 기억이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