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을 지은이들2(문왕과 그의 아들 주공)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주역의 괘사를 지었다고 하는 문왕의 모습. 사방이 백리에 불과한 작은 나라의 제후에 불과했으나, 인자한 덕으로 당시의 천자인 은나라 주를 버리고 천하의 3분의 2가 그를 따랐다. 그는 주위에서 역성혁명을 하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신하로서 왕을 칠 수 없다고 하여 거절했다. 폭군인 주임금이 뛰어난 덕을 가진 그를 시기해서 죽이려고 유리옥에 가두었는데, 옥에 갇힌 죽음의 위기속에서 복희가 그렸다는 괘에 말을 붙임으로써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주역의 텍스트를 만들었다.
문왕의 아들로서 어린 조카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완성했다는 주공의 모습. 공자는 특히 “사흘을 꿈에 주공을 만나지 못했다”는 탄식을 남겼을 정도로 위대한 성인으로 존경했다.그는 문왕을 이어 주역의 효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조카를 페위시키고 자신이 왕이 되려한다는 모함속에서 꿋꿋하게 어린 조카를 훌륭히 보필했고 건국초기의 여러 역경과 우환속에서 괘사를 해설한 384효사를 지음으로써 오늘날의 역경의 원형을 완성했다. 우리나라의 단종과 세조처럼 한국과 중국의 역사상 어린 조카가 등극할 때 강력한 삼촌(혹은 인척)이 실세로 대두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대개 실권을 가진 자가 대부분은 결국 어린 왕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등극했지만, 겉으로는 성왕과 주공의 예를 들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변명하는 핑계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