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하기로는 가곡으로 유명한 ‘동심초’가 더하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도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랫말로 유명한 시이다. 이 가사를 쓴 분은 근대문학사에 등장하는 김억이라는 분인데, 원래는 설도가 지은 춘망사라는 시의 한 부분을 번안한 것이다.




春望詞 薛濤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



欲問相思處, 花開花落時




攬結草同心, 將以遺知音

春愁正斷絶, 春鳥復哀吟
봄, 이별의 계절에 대하여2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那堪花滿枝, 翻作兩相思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꽃피어도 함께 즐기지 못하고

꽃 져도 함께 슬퍼하지 못하네

그대 그리워지는 곳 어디인가

꽃 피고 꽃 질 때로다.




풀을 따서 同心結 맺음은

날 알아주던 님에게 보내고져. <설도의 상>

봄 시름 그렇게 끊어 버리려는데

무정한 봄 새가 또다시 슬피 우네.




바람결에 꽃잎은 시들어가고

만날 날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

그 님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가득 핀 꽃 가지를 차마 보려니

또다시 님 생각에 젖어만 드네.

옥같은 눈물이 아침 거울에 떨어지니

봄바람이여 아는가 모르는가.



同心結은 비단띠에 새기는 고리모양의 매듭으로 굳은 애정을 뜻한다. 서로 사랑한다는 뜻을 담아서 부부가 굳게 맹세하는데 쓰이며, 이별할 때 맺어서 주기도 한다. 또 納幣나 殮襲에 쓰는 매듭으로도 쓰인다.



당나라의 유명한 여류시인 薛濤(770~832)는 좋은 집안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문장이 뛰어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자 歌妓가 되어 당대의 일류 문인들과 교류했다. 훗날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 버리자 평생을 守節했다고 전한다. 설도는 詩도 잘했고, 行書도 奧妙해서 그녀의 친필 시 한 수 얻어 가지는 것이 당시 지식인들의 소망이요, 자랑이었다고 한다.

설도의 동심초는 봄에 느끼는 그리움을 너무나 절실히 노래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덧없는 인생에서 사랑이 이루어짐과 이루어지지 않음은 차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 깊이 사무치는 思慕의 정, 남몰래 흐르는 순수한 눈물 그 자체가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그래서 아파하는 마음속에는 이미 사랑이 이루어져 아름답게 꽃 피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의 슬픔은 그 아픔을 견디면서 내면 깊숙히 성찰과 성숙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자칫 젊은 혈기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중국을 갈아엎은 모택동의 심금을 울렸다는 동양의 로미오와 줄리엣 <<홍루몽>>에서도 어느 봄날 떨어진 꽃잎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던 순수한 젊은 영혼 임대옥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에 자신의 詩稿를 모두 화롯불에 던져버리고 恨天淚地의 생애를 마친 날도 어느 봄날이었다.



청년 부처의 출가일도 29세 되던 해 중춘(仲春)의 어느 봄날이었다. 인도에도 우리같은 봄날이 있는지, 혹은 출가일이 후세에 중국에서 정해진 것은 아닌지는 필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우리나라의 고승들도 출가한 날짜를 따져보면 봄날이 압도적이었으리라. 아무튼 삶과 죽음이란 이 모순 덩어리에 대한 번민이 극에 달하는 시기도 봄날이다. 찬란한 봄날에 마주친 생사의 화두에 더 견디지 못하고 출가를 감행했었으리라.



그래 이별하자. 구태의연한 이 자리를 떠나버리자. 때가 되었다면…




낙화

–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