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과 이견대 : 주역으로 이룬 천년왕국의 힘(주역명승지 순례기2)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주말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을 다녀왔다. 마침 감사하게도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있으면서 사진작가이자 클레이사격국가대표출신인 이중열씨의 안내로 경주의 대왕암과 이견대를 둘러볼 수 있었다. 대왕암의 일출이 장관이라는 이중열씨의 말대로 그의 안내로 새벽일찍 출발했다. 먼저 대왕암에 도착하자 곳곳에는 기도하는 불단이 차려있고 대왕암 주위의 상가에는 곳곳에 방생하는 물고기를 판매한다는 구절이 눈에 띠어서, 여늬 관광지와는 전연 다른 모습이었다. 시원하게 툭터진 동해바닷가에 맑은 파도가 눈같은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고, 갈매기 떼들이 끼룩끼룩 날아도는 그 한가운데에 신라왕관 모양을 한 대왕암이 점잖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미 그곳에는 일출을 사진에 담으려고 모여있던 많은 사진가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마침 음력 초하루여서 그런지 몇 명이 울긋불긋한 당복을 차려입고 굿거리를 하는 모습부터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한두명이 아니었다. 불공을 드리는 스님도 보이고 여기저기 몇 명씩 백사장에 모여앉아 촛불을 켜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모습도 보였다. 그 모양은 이미 동트기 오래전부터 시작된 듯했다. 100일앞에 닥친 대학입시에 자식의 문운을 비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일까? 북핵문제로 온세상이 뒤숭숭한 이 때에 호국의 대왕암에 국태민안을 비는 민중의 기도일까? 나는 효자 신문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문무왕(재위 661-681)을 찾아왔다는 利見臺의 전설을 보러 찾아왔건만 그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서, 쌀쌀한 바람이 부는 바닷가를 꼭두새벽부터 찾아와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일까? 물론 대왕암이 문무왕의 수중릉이란 것은 후대인의 믿음일뿐 사실 무근이란 설도 있지만, 아무튼 이곳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백제 왕릉이나 신라 왕릉이나 하다못해 集安에 있는 -평양은 가보지 못했으니- 고구려의 왕릉이건 나는 한번도 왕릉에 찾아와 소원을 빌고 기도를 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에 권력은 온갖 미사려구로 왕은 곧 부처라고 선전했지만, 민중은 그것이 위선임을 벌써부터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그러나 이곳은 다른 관광지에서 정말 보기 어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1500년전의 신라왕에게 아직도 민중들이 경배와 기도를 올리고 있다니! 1500년의 장구한 세월도 찰나에 불과한 것인가? 의외였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주역에는 “만물이 항상 그러한 곳을 살펴보면 천지 만물의 정을 볼 수있다”고 했으니, 그 생생한 장면을 담고 싶었다. 촬영을 위해 굿을 돕던 초로의 분에게 사진촬영을 위해 비켜달라고 어렵게 부탁을 했더니 아주 흔쾌하게 도와주셨다. 무상한 역사의 흥망성쇠속에서도, 이곳에서는 천오백년을 묵묵히 대왕암의 전통을 간직해왔음을 보았다. 어느덧 밝은 광명을 뿜어내는 태양아래 펼쳐진 맑고 광활한 동해바닷가, 용바위의 한귀퉁이에서 아직도 살아움직이고 있는 천년왕국의 혼을 보았다. 이것이 통일의 힘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