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를 하는 사람은 돈을 벌고 쓰는 재미에 살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문자의 맛으로 산다. 내가 쓴 글이 활자화되어 간행이 되었을 때 손에 쥐어든 책의 실팍한 느낌과 책장을 펼칠 때 문득 풍겨오는 휘발유냄새까지도 황홀하다. 나의 경험상 아무리 못난 글이라고 해도 그 기분은 감소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내자식이 못났어도 나에게는 그가 가장 소중한 것과 같다.
누구라도 정성들여 쓴 글은 그에겐 가장 소중한 재산이며, 금액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배가 고파도 배고픈 줄 모르고, 낡은 책보를 들고다녀도 명품가방들 앞에서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은 나에게 주어질 수 있는 다른 모든 기회비용을 희생하고도, 나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동감해준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희이며 글쟁이의 존재근거이자 존재의 이유이다.

학교에서도 예전에는 리포트 과제를 내면 학생들은 남들보다 먼저 도서관에 달려가서 책을 빌렸고, 열심히 글을 썼다. 초고를 쓰고 재고를 쓰고 마지막 수정을 거쳐 탈고해서 A+를 기대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제출했었다. 물론 때로 친구의 리포트를 약간 손봐서 제출하는 게으른 학생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전과 글을 쓰는 환경이 달라져서, 컴퓨터가 原稿紙를 대신하고, 인터넷이 紙面을 대신하며, 전문가뿐 아니라 누구라도 용기있는 자라면 온세상에 자기 글을 발표하고, 허튼소리도 잘만하면 명예와 부를 움켜쥘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필자는 디지털문명에 뒤쳐져 있어서, 인터넷이란 새로운 세상을 잘 알지 못한다. 프로그램들이 충돌을 일으키거나 컴퓨터가 고장이 나면 속수무책으로 서비스센터에 달려가는 이외에 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 디지털시대의 글쓰기는 아날로그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듯하다.

#사례1

10년전 쯤 이었다. 대학생들에게 리포트 과제를 냈는데, 학생 두 명의 리포트가 완전히 똑같았다. 리포트를 점검하던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이렇게 완전히 똑같은 리포트를 제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두 학생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캐묻자 죄송하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당시에 나는 학생둘이 관중과 포숙아처럼 친한 친구사이라서 그렇게 자기의 파일을 친구에게 넘겨주었던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는, 더 이상 책망하지 않고 다른 과제를 제출하게 했다. 요즘같은 영악한 세태에, 친구를 위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는 刎頸之交의 우정까지 금가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진상을 안 것은 최근에야 리포트월드라는 전문사이트들이 있어서, 과제의 제목을 검색해서 비슷한 주제의 리포트를 단돈 천원만 내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학생들은 내가 지켜주려던 관포지교의 주인공들이 아니었다. 단지 어두운 익명의 다운로더들이었을 뿐이었다.



#사례2

얼마전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하면서, 우연히 이전에 내가 썼던 글에 포함된 키워드를 검색하게 되었다. 그러던중 내가 쓴 글들이 복사되어 작자의 이름도 없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한경닷컴에 올렸던 몇 개의 글은 타인의 이름으로 둔갑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필자의 拙文(갑사계곡에 관한 글)에 약간의 손질을 해서 유명한 인터넷신문에 자기 이름으로 게재했고, 그 글로 높은 평가와 점수까지 얻어 챙기고 있었다.
그냥 이름없이 퍼가는 것도 우리같은 사람에겐 좀 생경한 일이었지만, 작자의 이름을 바꿔서 개인홈피에 올린 다든지, 이름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신문에 게재해서 이득을 얻는 행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는 나의 어줍짢은 글 한 두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장자란 책에는 다음과 같은 우화가 나온다. 빨래해서 먹고사는 집안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만드는 비방이 대대로 전해내려오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어느 재주꾼이 그 비밀의 약 처방문을 千金에 사다가, 水戰이 벌어진 나라에 되팔아서 거금을 움켜쥔 사나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에 나오는 재주꾼은 싼 값이라도 치렀지만, 표절자는 나에게 일언반구 말도 없었다. 좀 허탈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챙긴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는 명백히 도둑질이고 그것도 아주 지능적인 절도행위였다.

이 문제를 두고 오래 생각해보았다. 내 글을 사랑한다면 남의 글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 아닌가?잘못은 지적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적어도 남의 글을 인용했다는 표시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배고픔을 참으면서 무단 복사와 표절이란 이 개념들을 다시 생각했다. 해적판에서 불법다운로드에 이르는 자본주의와 과학문명의 틈바구니에서 파생된 골칫거리들…어떻게 대응할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그냥 두기로 했다. 디지털 문명에서 이런 정도의 절도행위는 아마 막으래야 막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강투석이란 격언은 이 경우에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잖아도 너무 어려운 주제로 글을 쓰지 않는가 싶어 반성하고 있던 차에, 이에 더하여 디지털로 글을 올리는 것 자체에 회의가 들었고, 그래서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다.

주역에도 몽괘에서부터 도적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약탈경제는 인류문명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준다. 어차피 문명이란 것도 창조적으로 표절하고 모방한 결과가 아닌가! 남의 글을 훔치는 것도 제대로만 활용된다면, 그것도 -보통 사람으로선 엄두를 내기 힘든 용기와 함께-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디지털문명의 정체를 잘 모른다. 디지털 문명은 너무나 편리한 세상을 影像으로 구현해냈다. 이 편리성이 때로는 아날로그 문명의 문제들을 더욱더 증폭시키거나 때로는 전연 예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문명의 방향은 점점 나라는 집착을 버리고 다함께 누리는 대승의 관점에 오를 것을 명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양심적으로 우리 전체를 위해 창조적으로 쓸 수 있다면 지금은 혼란을 겪을지라도 결국은 진보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