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식의 삶을 살되, 타인도 자신의 삶을 살게 두자. 마음을 타인에게 열자. 조용히 전진하자. 삶에 여유를 찾자.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쉬자. 젊은 세대에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자. 자연을 존중하고 돌보자. 부정적 태도를 버리자. 개종시키려 하지 말자. 평화를 위해 행동하자.


프란치스코 교황(79세, Francis Jorge Mario Bergoglio, 2013.03~제 266대)이 제시한 ‘행복 10계명’ 이다. 자연스러움이다. 인간의 선한 본성이 행동 할 수 있도록 그냥 두는 것이다.


한 달 전부터 우리는 교황의 방한(訪韓)에 마음을 기울였다. 교황의 메시지에 귀를 열고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에 대한 해법을 듣고자 소망하고 있다. 일부 종교인들의 비난의 목소리는 우매한 자의 부끄러운 몸부림이다. 현명한 자는 우리 시대의 지주(支柱)요 스승을 알아봐야 한다. 공자, 석가모니, 예수를 따르는 것은 종교적 의미를 이미 떠난다. 사랑을 실천하신 마더 테레사 수녀님, 무소유를 주창하신 법정스님, 자유의 상징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 대통령에게는 종교도 국적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행적만큼 그를 대변하는 것은 없다. 사실이며 진실이다. 성인(聖人)들의 발자취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가 성인을 위대하다 말하는 것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삶 때문이다. 성인은 삶으로 삶을 말한다. 사랑을, 배려를, 포용을, 감사를 산다. 불의(不義)에 비겁하지 않다. 정의(定義) 앞에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성인과 일반인의 차이는 행위에 있다. 행동을 신중히 하는 사람은 말을 적게 한다. 몇 번을 곱씹어 내 놓는 말은 행동할 수 있는지를 살피기 위함이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자연이다. 회오리바람도 아침 내내 불 수 없고, 소낙비도 하루 종일 내릴 수 없다. 누가 하는 일인가? 하늘과 땅이 하는 일이다. 하늘과 땅도 이처럼 이런 일을 오래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노자는 하늘과 땅이 합쳐서 온갖 일을 이루어 내지만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자도,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사철이 순리대로 바뀌고 만물이 생겨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라고 반문한다. 성인의 삶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행동하는 삶은 그를 낮은 데로 이끈다.


비성인(非聖人)은 들음과 행동함에 신중해야 한다. 듣고자 하는 말만 듣는 것은 오만 (傲慢)이다. 알고자 하는 것만 아는 것은 교만(驕慢)이다. 쓴 소리를 기쁘게 듣는 것은 존중(尊重)이다. 자신의 모습을 아는 것은 겸손(謙遜)이다. 배워야 할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것은 지혜(智慧)이다.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겸양(謙讓)이다. 이러한 덕은 자신을 살피는 가운데 얻을 수 있다. 우리시대의 성인이신 교황 프란치스코의 메시지를 새겨듣자.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제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 우리 가운데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