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넓고 골 깊은 지리산 능선길을 걷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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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
숨 고르며 땀 훔치는 사이, 뒤따르던 산객들이 앞지른다.
“먼저 지나갑니다. 쉬었다 오십시오.”
앞질러 간 산객들이 이번엔 저만치 너른 바위에 앉아 땀을 훔친다.
“여기서 또 뵙네요. 安山 하십시오.”
이렇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덕담도 주고받는다.
산길에 서면 모두가 배려심이 넉넉해지나 보다.
오늘 걸음은 성삼재에서 벽소령까지 16.7km이다.
삼도봉(1,499m)에 이르러 잠시 배낭을 내렸다.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 전북 남원에 걸쳐 있어 三道峰이다.
2박 종주라 여유는 만만이나 배낭은 갑절 느낌이다.
어깻죽지가 뻐근하다.
이른 새벽에 먹은 산나물밥의 기운도 예까지 걷는 동안
다 소진된 모양이다. 다리가 후덜덜 거린다.
마의 계단 구간에 들어섰다.
“도대체 계단의 끝은 어디일까?”
552개 계단을 기진맥진 내려서니 화개재(1,316m)다.
너른 공터에 잡초들이 푸릇푸릇 움트고 있다.
그 옛날, 경남 하동 화개장터의 소금과 해산물이 전북 내륙으로,
또 전북 지역의 삼베 등 특산품이 경남 지방으로 전해졌다.
화개재는 바로 이러한 물물거래가 이뤄지던 장소이다.
반야봉을 더 걸음한 탓일까?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 오름길이 유독 힘겹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나 간간이 골바람이 청량감을 보탠다.
토끼봉(1,534m)에 올라서니 숲속 저 너머로 세석평전과
지리 주봉인, 천왕봉(1,915m)이 아스라이 눈에 든다.
다섯 山友 중 둘은 준족이라 이미 뒤꽁무니가 보이지 않는다.
미리 연하천대피소에 가서 식사 준비를 해놓겠다고 했다.
지친 모습의 山友 둘은 뒤처져 보이지 않는다.
쉬엄쉬엄 따라 갈 것이니 염려치 말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나 홀로 토끼봉을 지나 참나무와 구상나무가 빼곡한
산길을 전세 낸 양 휘적휘적 걷는 호사도 누렸으니…
지리산의 봄꽃, 얼레지 군락도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연보랏빛 얼레지의 꽃말은 ‘질투’란다.
얼레지가 무리지어 피어 있는 곳에 ‘곰 출현 주의’ 현수막이라~
얼레지의 아름다움에 지리산 반달곰이 질투를 느끼는 걸까?
오아시스와도 같은 연하천대피소(1,480m)에 닿았다.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연기처럼 흐른다’하여 연하천(烟霞川)이다.
고지대인데도 늘 샘물이 넘쳐흘러 산길을 따라 내를 이룰 정도다.
아름다운 ‘연하천’의 이름만큼이나 물맛도 산뜻하다.
물을 길러와 코펠에 붓고 버너로 끓여 라면을 쪼개 넣었다.
면발 익는 시간이 그렇게 긴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딱 맞다.
라면 맛이 또 그렇게 환상적인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딱 맞다.
1박 2일로 지리산을 종주할 땐 이곳에서 점심 먹고 세석대피소까지
부리나케 걸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2박3일이라 여유만만이다.
1박은 이곳에서 3.6km 거리의 벽소령대피소를 예약해 뒀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酒님? 영접까지…
종주산행에서 좀처럼 맛볼 수 없는 느긋함을 만끽한 후
벽소령으로 향했다. 된비알과 너덜지대가 반복되는 빡센 구간이다.
하지만 암릉과 고사목이 어우러진 변화무쌍한 절경이
산객들을 넉넉하게 품어주니 황공할 따름이다.
지금은 저 석간송이…
벽소령을 1.5km 남겨둔 지점, 거대 암봉이 막아선다.
형제봉(1,453m)이다. 형제봉의 매력은 단연코 석간송인데…
암봉 사이가 허전했다. 그 유명한 석간송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암봉에 기어올라 보니 태풍에 꺾였는지
안타깝게도 고사목이 되어 바위벼랑에 걸려 있다.
살아생전 석간송의 고고한 자태가 더없이 그리워 2009년 8월,
이 길을 지날 때의 사진을 들춰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파랗던 하늘은 서서히 잿빛 구름 뒤로 숨고 있다.
형제봉 암벽에 기대어 함양 방면을 굽어본다.
간신히 삐져나온 햇살이 음정마을을 보듬고 있다.
진행방향 능선 위에 벽소령대피소가 가물가물 모습을 드러냈다.
벽소령대피소 앞마당에 이르자,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곳서 1박이 예정된 산객들이 일찌감치 판을 벌인 것이다.
우리 다섯 山友도 실내가 아닌 야외 식탁을 용케 확보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준비해 온 삼겹살로~”
“아니, 내가 넣어온 김치찌개용 재료로~”
서로들 앞 다퉈? 배낭을 열더니 먹을거리를 손 크게 내놓는다.
마음 씀씀이가 평소 이랬던가? 글쎄다.
배낭무게를 줄이려는 꼼수이다.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지만
그래서 웃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벽소령(1,350m)에 어스름이 내려앉는다.
벽소령을 타고 넘는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난다.
동문끼리, 친구끼리, 父子끼리, 그리고 홀로….
그렇게들 지리산에 들어 벽소령의 교교한 달빛을 올려다본다.
벽소령의 달빛은 유독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른빛을 띤다.
지리산 10경 중 4경이 ‘벽소명월(碧霄明月)’이다.
대피소 지붕 위로 떠오른 달은 한을 머금은 듯 시리고 푸르게
밤늦도록 잠 못 이루는 산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었으니…
숨 고르며 땀 훔치는 사이, 뒤따르던 산객들이 앞지른다.
“먼저 지나갑니다. 쉬었다 오십시오.”
앞질러 간 산객들이 이번엔 저만치 너른 바위에 앉아 땀을 훔친다.
“여기서 또 뵙네요. 安山 하십시오.”
이렇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덕담도 주고받는다.
산길에 서면 모두가 배려심이 넉넉해지나 보다.
오늘 걸음은 성삼재에서 벽소령까지 16.7km이다.
삼도봉(1,499m)에 이르러 잠시 배낭을 내렸다.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 전북 남원에 걸쳐 있어 三道峰이다.
2박 종주라 여유는 만만이나 배낭은 갑절 느낌이다.
어깻죽지가 뻐근하다.
이른 새벽에 먹은 산나물밥의 기운도 예까지 걷는 동안
다 소진된 모양이다. 다리가 후덜덜 거린다.
마의 계단 구간에 들어섰다.
“도대체 계단의 끝은 어디일까?”
552개 계단을 기진맥진 내려서니 화개재(1,316m)다.
너른 공터에 잡초들이 푸릇푸릇 움트고 있다.
그 옛날, 경남 하동 화개장터의 소금과 해산물이 전북 내륙으로,
또 전북 지역의 삼베 등 특산품이 경남 지방으로 전해졌다.
화개재는 바로 이러한 물물거래가 이뤄지던 장소이다.
반야봉을 더 걸음한 탓일까?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 오름길이 유독 힘겹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나 간간이 골바람이 청량감을 보탠다.
토끼봉(1,534m)에 올라서니 숲속 저 너머로 세석평전과
지리 주봉인, 천왕봉(1,915m)이 아스라이 눈에 든다.
다섯 山友 중 둘은 준족이라 이미 뒤꽁무니가 보이지 않는다.
미리 연하천대피소에 가서 식사 준비를 해놓겠다고 했다.
지친 모습의 山友 둘은 뒤처져 보이지 않는다.
쉬엄쉬엄 따라 갈 것이니 염려치 말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나 홀로 토끼봉을 지나 참나무와 구상나무가 빼곡한
산길을 전세 낸 양 휘적휘적 걷는 호사도 누렸으니…
지리산의 봄꽃, 얼레지 군락도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연보랏빛 얼레지의 꽃말은 ‘질투’란다.
얼레지가 무리지어 피어 있는 곳에 ‘곰 출현 주의’ 현수막이라~
얼레지의 아름다움에 지리산 반달곰이 질투를 느끼는 걸까?
오아시스와도 같은 연하천대피소(1,480m)에 닿았다.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연기처럼 흐른다’하여 연하천(烟霞川)이다.
고지대인데도 늘 샘물이 넘쳐흘러 산길을 따라 내를 이룰 정도다.
아름다운 ‘연하천’의 이름만큼이나 물맛도 산뜻하다.
물을 길러와 코펠에 붓고 버너로 끓여 라면을 쪼개 넣었다.
면발 익는 시간이 그렇게 긴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딱 맞다.
라면 맛이 또 그렇게 환상적인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딱 맞다.
1박 2일로 지리산을 종주할 땐 이곳에서 점심 먹고 세석대피소까지
부리나케 걸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2박3일이라 여유만만이다.
1박은 이곳에서 3.6km 거리의 벽소령대피소를 예약해 뒀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酒님? 영접까지…
종주산행에서 좀처럼 맛볼 수 없는 느긋함을 만끽한 후
벽소령으로 향했다. 된비알과 너덜지대가 반복되는 빡센 구간이다.
하지만 암릉과 고사목이 어우러진 변화무쌍한 절경이
산객들을 넉넉하게 품어주니 황공할 따름이다.
지금은 저 석간송이…
벽소령을 1.5km 남겨둔 지점, 거대 암봉이 막아선다.
형제봉(1,453m)이다. 형제봉의 매력은 단연코 석간송인데…
암봉 사이가 허전했다. 그 유명한 석간송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암봉에 기어올라 보니 태풍에 꺾였는지
안타깝게도 고사목이 되어 바위벼랑에 걸려 있다.
살아생전 석간송의 고고한 자태가 더없이 그리워 2009년 8월,
이 길을 지날 때의 사진을 들춰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파랗던 하늘은 서서히 잿빛 구름 뒤로 숨고 있다.
형제봉 암벽에 기대어 함양 방면을 굽어본다.
간신히 삐져나온 햇살이 음정마을을 보듬고 있다.
진행방향 능선 위에 벽소령대피소가 가물가물 모습을 드러냈다.
벽소령대피소 앞마당에 이르자,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곳서 1박이 예정된 산객들이 일찌감치 판을 벌인 것이다.
우리 다섯 山友도 실내가 아닌 야외 식탁을 용케 확보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준비해 온 삼겹살로~”
“아니, 내가 넣어온 김치찌개용 재료로~”
서로들 앞 다퉈? 배낭을 열더니 먹을거리를 손 크게 내놓는다.
마음 씀씀이가 평소 이랬던가? 글쎄다.
배낭무게를 줄이려는 꼼수이다.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지만
그래서 웃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벽소령(1,350m)에 어스름이 내려앉는다.
벽소령을 타고 넘는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난다.
동문끼리, 친구끼리, 父子끼리, 그리고 홀로….
그렇게들 지리산에 들어 벽소령의 교교한 달빛을 올려다본다.
벽소령의 달빛은 유독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른빛을 띤다.
지리산 10경 중 4경이 ‘벽소명월(碧霄明月)’이다.
대피소 지붕 위로 떠오른 달은 한을 머금은 듯 시리고 푸르게
밤늦도록 잠 못 이루는 산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