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시에 장소 선정은 아젠다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장소는 상대의 사무실에서 해야 할까 아니면 자신의 사무실에서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야구나 축구, 배구, 농구 경기를 떠올려 보자. 경기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홈에 3번 하면 상대의 장소에서 3번 치르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 장소가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는 스포츠 팬들이 확실히 알고 있다. 자신의 연고지에서 경기를 하는 경우 승리할 확률이 확연히 높아진다. 무엇보다 연고지에서 경기를 하면 환경에 익숙하여 심리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팬들의 지원과 응원이 더해져 승리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심판의 판정도 말할 것도 없이 홈 팀의 경기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경우가 많다. ‘똥개도 자기 집이면 50점 먹고 들어간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이점(利點) 때문에 서로 자신의 장소에서 협상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사이의 틸시트 조약은 강 한가운데에 띄운 뗏목 위에서 이루어졌다. 서로 양보할 수 없어 결국 중립의 장소에서 협상이 이루어졌다.
박근혜 정부 초에 북한은 개성공단을 폐쇄한다며 강성전략으로 대한민국을 협박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북한 통신에서 “개성공단 협상은 대한민국이 정하는 장소에서 하면 된다”라고 했다. 당연히 한국 정부는 서울에서 개최를 주장했다. 그러다 며칠 후 북한은 “서울은 안된다 북한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협상은 중립의 장소인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상대방의 장소에서 협상을 진행하도록 초청받으면 중립적인 장소에서 만나는 것으로 전환하라.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전략은 상대를 내가 있는 공간으로 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스티브 잡스도 정말 중요한 협상은 애플 본사에서 하지 않았다. 바로 스티브 잡스 본인의 집에서 협상을 했다.
글.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ijeong13@naver.com) / <소크라테스와 협상하라>, <협상의 심리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