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상처 극복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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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굳이 생로병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그렇지 않은 일보다 훨씬 많다. 어떤 일이 우리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면, 그 일에 좌절하거나 맞서기보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어떨까? 하지만 우리는 대개 부정적이거나 불만족스러운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거부하고 저항하게 된다.
이는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기 버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그런 힘든 상황을 오롯이 감내하는 대신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더 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분석 심리학자였던 칼 융(Carl G. Jung)이 주장했던 “뭔가에 저항하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버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무엇인가에 저항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전히 현실에 저항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표면적인 이유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당장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더 심층적인 이유는 삶에서 마주하는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면, 삶의 희생자혹은 피해자가 되어 인생의 굴레 속에 그대로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는두려움 때문이다.
예전에 만난 한 친구는 학창 시절, 남들보다 뚱뚱한 몸집 때문에 따돌림을 당한적이 있었다. 이후 그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 상처로 남아,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 일을 계기로 그 상처를 상처로 여기지 않고, 타인이 가진 아픔마저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자신에게 펼쳐지는 건 그것을 총해 반드시 내가 체험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란 것을 자각한다면 어떨까?
나아가 그 상처를 탓하는 대신 오히려 감사할 수 있게 된다면, 또 어떨까? 이 정도쯤 되면, 이제 그에게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인생의 ‘피해자’로부터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주도자’가 된다.
유리 공을 바닥을 향해 던지면 예외 없이 깨진다. 반면 플라스틱 공을 바닥에 던지면 잠시 찌그려졌다가 조금 지나면 원상태로 회복된다. 그렇다면 고무공은 어떨까?
바닥으로 힘껏 던지면 던질수록 오히려 더 높이 튀어 오른다. 똑같이 바닥을 향해 던져져도 자신이 어떤 공이냐에 따라,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고 조금 지나서 원래대로 회복될 수도 있고 오히려 도약할 수도 있다.
유리 공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상태다.
이는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계속 그 고통을 느끼게 되는 현상인데, ‘때문에’라고 생각하며 계속 자신에게 고통을 준 그 대상을 탓하는 수준이다. 거기서 좀 더 호전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하는 수준이 ‘외상 후 회복(PTR, Post Traumatic Recovery)’된 상태다. ‘외상 후 성장(PTG, Post Traumatic Growth)’을 하게 되면 ‘덕분에’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깨달은 교훈적 메시지에 대해 감사하는 수준에 이른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고 말했다. 우리가 과거에 받은 상처 또한 마찬가지다.
필자가 최근에 출간한《마인드 디톡스 15일》에 언급한 다음의 문구를 끝으로본 칼럼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 비만의 문제는 물론 건강, 행복에 관해 더욱 자세한 내용은 제가 최근에 출간한 <마인드 디톡스 15일>을 참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마인드디톡스코칭 대표 오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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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생로병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그렇지 않은 일보다 훨씬 많다. 어떤 일이 우리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면, 그 일에 좌절하거나 맞서기보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어떨까? 하지만 우리는 대개 부정적이거나 불만족스러운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거부하고 저항하게 된다.
이는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기 버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그런 힘든 상황을 오롯이 감내하는 대신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더 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분석 심리학자였던 칼 융(Carl G. Jung)이 주장했던 “뭔가에 저항하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버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무엇인가에 저항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전히 현실에 저항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표면적인 이유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당장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더 심층적인 이유는 삶에서 마주하는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면, 삶의 희생자혹은 피해자가 되어 인생의 굴레 속에 그대로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는두려움 때문이다.
예전에 만난 한 친구는 학창 시절, 남들보다 뚱뚱한 몸집 때문에 따돌림을 당한적이 있었다. 이후 그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 상처로 남아,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 일을 계기로 그 상처를 상처로 여기지 않고, 타인이 가진 아픔마저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자신에게 펼쳐지는 건 그것을 총해 반드시 내가 체험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란 것을 자각한다면 어떨까?
나아가 그 상처를 탓하는 대신 오히려 감사할 수 있게 된다면, 또 어떨까? 이 정도쯤 되면, 이제 그에게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인생의 ‘피해자’로부터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주도자’가 된다.
유리 공을 바닥을 향해 던지면 예외 없이 깨진다. 반면 플라스틱 공을 바닥에 던지면 잠시 찌그려졌다가 조금 지나면 원상태로 회복된다. 그렇다면 고무공은 어떨까?
바닥으로 힘껏 던지면 던질수록 오히려 더 높이 튀어 오른다. 똑같이 바닥을 향해 던져져도 자신이 어떤 공이냐에 따라,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고 조금 지나서 원래대로 회복될 수도 있고 오히려 도약할 수도 있다.
유리 공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상태다.
이는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계속 그 고통을 느끼게 되는 현상인데, ‘때문에’라고 생각하며 계속 자신에게 고통을 준 그 대상을 탓하는 수준이다. 거기서 좀 더 호전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하는 수준이 ‘외상 후 회복(PTR, Post Traumatic Recovery)’된 상태다. ‘외상 후 성장(PTG, Post Traumatic Growth)’을 하게 되면 ‘덕분에’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깨달은 교훈적 메시지에 대해 감사하는 수준에 이른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 무엇도 결코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우리가 과거에 받은 상처 또한 마찬가지다.
필자가 최근에 출간한《마인드 디톡스 15일》에 언급한 다음의 문구를 끝으로본 칼럼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 비만의 문제는 물론 건강, 행복에 관해 더욱 자세한 내용은 제가 최근에 출간한 <마인드 디톡스 15일>을 참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마인드디톡스코칭 대표 오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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