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의 시작은 ‘어쩔 수 없는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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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 창업자 존헨드릭스 / 사진=한경DB
“여보, 훌륭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만 방영해 주는 케이블 채널이 새로 생기면 어떨 것 같아? ‘코스모스’, ‘유니버스’ 시리즈 같은 것들을 보여 주는 거야. 과학이나 자연, 역사, 의학처럼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것들 말이야.” 귀를 기울이던 아내는 잠깐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뜻밖의 열렬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굉장히 멋질 것 같아!”
세계적 논픽션 미디어 그룹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즈의 창업자 존 헨드릭스는 《디스커버리》에서 ‘디스커버리 채널’의 성공 여정과 노하우를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의 회사를 사례로 기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탐구하면서 사업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시대를 앞서 변화를 이끈 경영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분석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라면 왜 테드 터너(CNN 창업자)가 아직 만들지 않은 걸까?” 아내의 말에 그는 순식간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스물아홉 살에 불과했고, 텔레비전 사업과 관련해 아무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이것은 내 비전’이라고 되뇌었다.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다. 모든 변수를 고려했지만 치명적인 약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입수할 수 있는 책은 모조리 읽었다.
그는 세계적인 회사를 세울 수 있는 비책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준비된 로드맵도 없었고 더구나 당장 내일 무엇을 할지도 몰랐다. 그는 비전과 현실사이의 엄청난 간극, 큰 그림과 개인적 꿈 사이의 큰 격차 때문에 기업가 정신은 인생의 많은 목표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목표가 된다고 말한다.
출장 중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호라이즌(Horizon)’, ‘비스타(Vista)’, ‘디스커버리(Discovery)’ 등 채널 이름의 후보들을 떠올렸다. 비행이 끝날 쯤 ‘디스커버리’라는 단어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발견의 과정’, 즉 어떤 탐구나 노력이 결국 성공에 이르는 느낌을 좋아한다. 그는 더 나아가 시청자들이 자기 회사의 과학기술 프로그램을 통해서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디스커버리 채널’이라면 훌륭한 사명이 될 것 같았다.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즈 홈페이지
이렇게 창업 후 30년 만에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즈’라는 글로벌 미디어 제국을 이뤘다. 작은 아이디어가 실마리가 돼 이제는 미국에서만 디스커버리 채널, 사이언스 채널 등 14개 방송사를 보유하고 있다. 2012년 기준 215개 국가에서 45개 이상의 언어로 방송을 내보내며, 누적 가입자는 19억명을 넘는다. 시가총액은 230억 달러 이상으로 미국의 4대 방송사(ABC CBS NBC FOX)보다 크다.
그는 일관되고 포기하고 하는 꿈이 왜 중요한지 설파한다. “다큐멘터리에 특화된 새로운 케이블 채널이라는 아이디어는 꼬마시절 내가 TV를 처음 본 순간, 소년인 내가 로켓이 발사되고 과학 연구가 진행되는 것을 목격한 순간, 청년이 된 내가 케이블 TV를 시청한 순간, 사회생활 초창기인 내가 미디어를 검토한 순간들이 모두 모여 만들어진 산물이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라는 것이 저자가 도달한 결론이다. 호기심은 ‘준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관찰로 남는다. 미국 야구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참가할 준비가 될 때까지 몇 번의 시즌을 마이너리그팀에서 보내며 기량을 닦는다. 기업가의 태동도 마찬가지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대학 졸업 후 월스트리트에서 컴퓨터 과학자로 일했으며, 델컴퓨터 창업자 마이클 델도 대학 시절 친구들의 필요에 맞는 컴퓨터를 조립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헨드릭스는 늘 호기심이 충만했고, 일찌감치 교육매체로서의 텔레비전에 매료되었으며, 대학 시절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며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듀서와 유통업체를 접했다. 머릿속에는 경험의 지혜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고, 마침내 여러 요소가 맞아 들어갔을 때 그 전략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는 어떤 급작스런 통찰이나 계시의 산물이 아니라 인생의 수많은 실타래들, 심지어 유년 시절의 경험까지 합쳐져 나온 결과였다고 토로한다.
그는 1991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강연을 끝내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회장님이 디스커버리 채널을 만들게 됐을까요? 회장님의 어떤 면이 그걸 가능하게 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텔레비전 사업에는 문외한이었으니 ‘디스커버리’가 안 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를 업계 사람들처럼 자세히 알지 못했죠. 그게 오히려 내게는 짐을 덜어 준 격이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그 순간 그에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포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고려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말이다.”
기업가가 되는 과정은 예측을 불허한다. 기업가마다 경로가 달라 단순하고 보편적인 로드맵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업가가 성공적으로 회사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호기심 어린 관찰-준비-불붙은 열정-아이디어-계획-사람-브랜드’의 7단계를 제시하며 디스커버리는 이 단계들을 모두 거쳤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여러 해 동안 아마존, 페덱스 창업자와 같은 위대한 기업가들에게 공통된 내적 특성이 있는지 탐구했다. 성공하는 기업가들의 사고방식은 중요한 몇 가지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었다. 남들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 등 항상 어떤 가능성에 대한 사전 지식과 경험에 몰입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스무 살 때 이미 프로그래머로서 수천 시간을 보낸 후였다. 페덱스를 창업한 프레드 스미스는 회사를 차리기 전 베트남에서 복무하며 단거리 비행을 많이 했다.
그 결과 ‘원동력이 되는 강한 호기심’ ‘공상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마음’ ‘불타는 열정을 창조적 집착의 시기로 이끄는 힘’ ‘성공을 그려보는 능력’ ‘논리에 굴하지 않는 낙관주의와 자신감’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운명을 창조하겠다는 열망’ ‘목적’이라는 7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음을 알아냈다. 저자는 이 7가지 특징 중 기업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목적’을 꼽는다. 목적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멈출 수 없는 동력이 되며, 남아 있는 먼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인내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 채널이 출범한 이래 저자는 직원들에게 항상 ‘우리 사업은 방송업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세상을 탐험하고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도록 돕는 일’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는 사업이나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할 때 ‘스톡옵션 가격, 매출, 주당 순이익’ 같은 숫자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고 지내는 것이 비즈니스 세계의 인간적 측면이다. 고결함, 품위, 용기, 신뢰와 같은 것들이 빛을 발하는 눈부신 그 순간이야말로 비즈니스 세계를 진정 가치 있게 만든다.”
방송과 관련해 아무런 경력도, 인맥도 없던 존 헨드릭스는 디스커버리를 설립한 후 실패를 거듭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맞게 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 결국 큰 성공을 거둔다. 경영의 전 과정은 의사결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관된 꿈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통찰의 의사결정으로 그는 위기를 오히려 성장의 터닝 포인트로 만들었다.
강경태 한국CEO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