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안. 쇼커트가 잘 어울리는 2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통로에 서서 책을 펼쳐들고 있다. 책표지엔 ‘무죄사례집’이라 쓰여져 있다. 그녀 앞 좌석엔 만삭인 임부와 학생 그리고 백발의 노인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전철이 멈춰서고 문이 열리자, 앞자리 학생이 내렸다. 동시에 스포츠백을 맨 60대 중후반의 은발男이 전철에 올라 쇼커트女 옆에 서더니 앞 빈자리를 살폈다. 쇼커트女와 은발男의 눈이 마주쳤다.
변호사가 뭐길래
변호사가 뭐길래
변호사가 뭐길래
쇼커트女가 “여기 앉으세요”라며 은발男에게 자리를 권하는 찰라, 중절모에 이어폰을 낀 30대 중후반의 남자가 낚아채듯 빈자리에 앉아버렸다. 쇼커트女는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그 남자를 응시했다. 하지만 이 남자, 태연하게 앉아 독서모드에 돌입했다.
멀뚱한 표정을 짓던 쇼커트女가 조심스레 중절모를 향해 말을 건넨다.
“자리를 양보해 주시는 게 어때요?”
중절모가 고개를 들어 쇼커트女와 은발男을 훑어보더니 다시 책읽기에 몰입한다. 다시 쇼커트女가 “이봐요! 자리를…”하며 나서자, 은발男이 “괜찮아요”라며 말렸다.
하지만 이미 열불이 난 쇼커트女는 중절모의 어깨를 툭 치며 “제 말 안들려요. 자리 좀 양보하라고~요.”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더니, “왜요?”라고 되묻는 그를 향해 “”왜냐구요? 보아하니 아직 젊으신 분 같은데 이 분이 더 연장자시잖아요”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어이없게도 “그래서요?”다.
“기력이 있는 사람이 없는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게 당연한 도덕적 행동이자 매너라고 생각 안해요?”
“생각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하더니 쇼커트女를 향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니까 기운이 있고 연장자니까 기력이 없다고 일방적으로 단정지어도 되는겁니까? 예를 들면 내 나이 서른여덟인데 당신은 내가 심각한 심장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고려하셨나요?”
“아~ 심장병을 앓고 계셨나요?”
“아니오. 저 분은 겉으로는 60대 후반으로 보이나 스포츠클럽에 다니고 있고(어깨에 맨 스포츠클럽 전용 가방을 보면서) 더구나 가방의 연식을 보니 꽤나 베테랑이라 추측됩니다. (이번엔 그의 몸을 아래 위로 스캐닝하더니) 또한 중후한 대흉근에 삼두근, 안쪽으로 당겨진 복근, 하퇴부의 팽팽함은 옷 위로도 충분히 느껴지는군요. 빈약한 나보다 훨씬 좋은 몸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스포츠클럽은 다음 역 앞에 있어요. 불과 4분 정도 걸리는 두 정거장 구간이라 굳이 자리를 양보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불어 기력이 좋으신 분에게 자리에 앉도록 쓸데없이 강요하면 안되겠다 판단하여 일어서지 않았던 겁니다. 이상 반론 있습니까?”
황당해하는 쇼커트女에게  “감사합니다”하고선 다시 책읽기에 집중했다.
부아가 치민 쇼커트女가 “뭐 저런 놈이 다 있어!”라며 옆 칸으로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드라마의 코믹한 오프닝이 시작된다.
2013년 일본 안방극장을 평정한 일본 드라마 ‘리갈하이’ 첫 편에서 두 주인공(중절모와 쇼커트女)이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중절모’는 조금 괴팍하지만, 소송으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연전 연승의 변호사로 상대가 끽소리도 못할 만큼 논파한다. 정의나 피의자의 인권 사수 보다는 고액의 보수나 적대하는 검찰이나 상대 변호사를 철저히 응징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돈 맛 아는 독설 변호사 ‘코미카도 켄스케’다. 그리고 쇼커트女는 성실하고 정의감은 강하나 변호사로서의 목표나 이상은 없다, 다만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내버려둘 수 없는 성격으로 피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고지순한 신참 변호사, ‘마유즈미 마치코’다.
요 며칠을 일본 코믹 법정드라마, ‘리갈 하이’에 푹 빠져 보냈다. 스토리 전개가 빠르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엉뚱해 어이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에 몰입하면 할수록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듯 통쾌해 시즌 1과 시즌 2를 밤을 새워가며 나흘 만에 접수해버렸다.
이처럼 변호사를 내세운 법정 드라마가 한때 일본 안방을 점령했다면 요즘 우리나라TV에는 말빨 좋은 변호사들 세상이다. 전문분야 뿐만 아니라 정치, 예능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특히나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패널 중 변호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일부 스타급 변호사는 출연 수익이 사건 수임보다 낫다고도 한다. 이를테면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여 정계 진출 등을 꾀하기도 한다. 19대국회에서 율사 출신 국회의원 비중이 20%이상이란 통계자료도 있다.
이번 총선 예비후보자들 면면을 들여다보니 여전히 변호사 비중이 높다.
일본에선 법정드라마 ‘리갈하이’에 등장하는 괴팍하고 독설을 내뱉는 코믹 변호사 때문에 ‘변호사’가 희화화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TV만 켜면 나온다”라고 할 정도로 변호사가 별별 프로그램에 다 등장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出演에서 出馬로 전환히기도 한다. 코믹하기로 보자면 피장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