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검색 기능중에 연관검색어라는 것이 있다.

찾고 싶은 사람을 치면 자연스럽게 연관되어 나오는 것들. 바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어느날 내게 강의를 들은 한 지인이 문자가 왔다.

“박영실박사님을 검색하면 박영실남편 그리고 박영실나이와 속풀이쇼 동치미가 연관검색어로 나오더라구요! 사람들이 박사님 나이를 많이 궁금해하나봐요!”

그런가보다. 하긴 나도 그랬던것 같다. 잘 모르는 누군가가 방송에 나왔을 때 막연하게 그 사람의 개인사에 대한 관심이 생기곤 했으니까.

그렇다면 행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행복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행복과 연관된 것들이 먼저 내 마음속에 자리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당장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논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정, 주제, 스트레스, 촉박함, 막막함’이 먼저 떠오른다.

이때 살짝 관점의 방향을 조금 바꿔서 ‘행복’으로 내머리속에서 자체 검색을 하면 연관검색어로 이렇게 떠오르를것이다. ‘논문주제, 최근 행복했던 일, 웃었던 일, 에피소드’등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 것만 보고 듣는다.

오늘 나는 내 머리속에 ‘행복과 자유’로 채우려한다. 그래야 연관검색어도 자연스럽게 긍정기운의 것들로 채워질테니. 그러나 생각만큼 잘 될지는 모르겠다.
행복의 기준이 전혀 다른 두 남자의 삶: 알렉산더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행복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볼만한 일화 중 알렉산더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와의 만남에 관한 게 있다. 알렉산더대왕은 알다시피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대제국의 왕이다. 당연히 무소불위를 권력을 가진 자였다. 하지만 이런 대왕을 소 닭보듯 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가난한 철학자 디오게네스였다.

알렉산더대왕이 그리스 정벌 후 고국으로 돌아오자 모든 학자들이 그를 알현하기 찾아와 고개를 조아렸으나, 단 한 사람 디오게네스만은 그러질 않았다. 그러자 대왕은 직접 그를 찾아갔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난 알렉산더 대왕이다.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 내가 그대를 도와주겠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큰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데, 다만 옆으로 약간 비켜 서 주겠소? 당신이 지금 내 태양을 가로막고 있잖소? 난 보다시피 일광욕 중이오”

모든 걸 다 가진 걸로 착각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순간 디오게네스 앞에서 자신이 걸인처럼 느껴졌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데, 나는 온 세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욕심을 내고 있구나’

“나도 당신처럼 만족한 삶을 살고 싶소”

대왕이 말하자 디오게네스가 답했다.

“그럼 이리 와서 벌거벗고 누워보시오. 미래를 잊고 과거를 떨쳐버리면, 그 어떤 것도 그대의 행복을 막지 않을테니”

이 말을 듣고 알렉산더는 무슨 생각을 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대 말이 옳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내가 승리자가 되었을 때, 내가 온 세계를 정복했을 대 그때 다시 와서 배우겠다. 그리고 이 강둑에, 그대 곁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오. 지금도 여기 누워서 편안해 질 수 있는데, 왜 막연한 미래를 기다리는가?“

알렉산더는 이 심오한 말에 자신이야말로 욕망에 사로잡혀 행복을 버리고 있는 듯 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결국 알렉산더의 전 생애동안 디오게네스의 망령은 그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지 못했고, 결국 죽을 때야 비로소 누구나 빈손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참 신기한 것은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는 같은 날 죽었는데, 알렉산더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거지로 죽었고, 디오게네스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그대로 가지고 죽음을 통찰하면서 황제로 죽었다는 거다.

우리가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근거 없는 착각이다. 행복의 기준은 무지개처럼 다양하기 때문이다.



-욕먹어도 괜찮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