큼지막한 여행용 가방과 보조가방을 메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무거운 가방 탓인지 바쁘게 숨을 고르며 상담을 마치면 지방에 출장을 가야 한다며 무언의 재촉을 한다.

여인의 명국(命局) 간평(看坪)이다.

身在艮方過旺世  又有一身貪中財
道生仙食給世中  俗界群生還仙境
歲干歲支在雙鬼  名盡俗界籍籍鳴
巽空父母落在人  莫待不被夫君力
中財巽父與交冲  幕貪餘擧市井財
唯一甘露財聚得  天盤治鬼業活用

..살아오면서 항상 속세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못 떠나고 있네요..라며 자조 섞인 말을 한다.

50을 바라보는 나이.. 20대 후반에 결혼을 하였다고 했다. 당시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문괘(門卦) 좋은 자리지만 공망(空亡)이라는 하자(瑕疵)도 보인다. 결혼 상대자는 도방(道方) 자리에 있는 남자요 구진(勾陳)이라는 꼬리표도 함께 달고 왔으니, 도방은 종교(宗敎)를 공망과 구진은 이별(離別)을 암시한다. 결혼은 하였으나 남편은 결국 구도자(求道者)의 길을 가고야 마니 함께한 날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생을 살아가고 있다.

마치 스스로의 팔자를 이미 알고 결혼했다는 듯 애써 남편 복(福)을 기대하지 않는 말투요 표정 또한 덤덤하다. 임일한 손(孫)의 자리는 간절한 바램이라 그토록 아이를 원하였으나 남편의 자리가 이러할 진데 여인으로서 누려야할 온전한 가정 꾸미기는 바램뿐이요 결국 세상 어느 한 곳 마음 둘 데가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생리현상에 바이오리듬이 있듯이 인간의 일생에도 주기적인 운세의 리듬이 있다. 바이오리듬이 깨져 버리면 하루의 몸도 컨디션이 말이 아니듯 하물며 인생의 운세 리듬이 깨어져 버린다면 삶은 그만큼 고단하다. 오행의 자리가 있고 특히 위상 높은 관(官)의 자리는 사회적 명성 꽤나 얻을 수 있겠지만 각각의 역활이 순기능(順機能)이 아닌 역기능(逆機能)을 하고 있으니 삶은 바쁘기만 하고 실속이 없다. 운세의 리듬이 깨져버린 탓이다.

명진사해(名盡四海) 하는 명성이라면 그에 걸맞은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명성만 있고 합당한 대접이 없다. 관은 남편의 또 다른 이름이라 그 복(福) 또한 무늬만 남편이니 모든 경제문제를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모두가 인성(印星)이라는 연결고리가 깨진 탓이다. 고단함이라는 당연함도 젊었을 때는 그럭저럭 버틸 만 하였으나 이제는 나이가 드니 맞서지를 못하고 자꾸만 피하는 방법이 없냐는 질문만 되풀이한다.

어떤 스님께서 자신은 불가(佛家)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래야 할 것 같다며 선(仙)와 속(俗)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인에게 잠시나마 연민(憐愍)이 느껴진다. 아마도 나이 50이 가까이 되도록 여느 평범한 여인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탓일 것이다.

말로는 평생 속세를 벗어나고 싶다고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단다.
“ 왜 그럴까요? ”

부처님은 마음속에 부처, 마음속에 부모를 죽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나를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여인은 세 가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는 몸은 비록 선계(仙界)에 있으나 또 다른 나는 속세의 재(財)를 탐하고 있으니 물욕(物慾)을 끊을 수가 없음이다.

또 한 가지는 쌍귀(雙鬼)라는 명성(名聲)이라 비록 실속은 없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존재라고 꼬드기는 자리이니 진정 부처가 되지 않고서는 헤어날 수가 없다.

마지막은 배부른 그릇 탓이다. 모든 배움과 깨달음이 그러하듯 배부른 사람에게 학(學)이란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하므로, 결국 속계를 떠나는 조건에서 제일 중요한 자신이 배고프지 않은 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녀가 속세를 떠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떠나지 못할 속세(俗世)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다행히 배워둔 기술(技術)이 있다고 하니 그것을 잘 활용하면 풍족(豊足)은 아니더라도 만족(滿足)은 하며 살아갈 수 있겠다.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뒷모습에서 가방의 무게만큼이나 인생의 무거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