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통찰법] 미술로 보는 경쟁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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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그림을 보라. 누구의 작품이며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왼쪽은 고흐가 오른쪽은 고갱이 그린 작품이다. 똑같은 모델과 같은 장소에서 그렸는데 그들의 그림은 완전히 딴판이다. 고갱은 숄의 둥근 곡선과 함께 넓은 코, 완만한 눈썹, 턱까지 둥그스름해서 고흐의 지누 부인의 뾰족한 턱과 코, 각진 눈썹 등 모든 선이 날카로운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또한 고갱은 실존하는 인물을 무시하고 지누 부인의 초상화를 <아를의 밤의 카페>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바꾸어 놓았다. 고갱은 이 카페안의 사람들을 모두 타락한 인물로 묘사하면서 반 고흐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모독하는 것으로 무시무시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냈다.
고흐와 고갱은 함께 살면서 늘 논쟁을 벌였다. 두 사람은 자주 흥분했고 격렬하게 다퉜다. 고갱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고흐와 나는 일반적으로 거의 의견이 달랐다. 특히 그림에 관해서 그랬다. 고흐는 로맨틱했고 나는 원초적인 상태에 도달하려고 했다. 색상만 해도 고흐는 몽티셀리처럼 물감의 반죽을 무작위로 선택했고, 나는 기교를 부려 만지작거리는 걸 싫어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의 우월성은 상대를 헐뜯는 육탄전이 되었다. 결국 고갱이 떠난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자해까지 감행한다. 목사의 아들로서 차분하게 자라온 고흐의 행동은 고갱과의 경쟁에서 지기 싫어하는 분노의 표출이었으리라.
위대한 화가는 단지 엄청난 노력이나 대단한 천재성만으로 위대한 반열에 오른 게 아니다. 고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화풍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걸 깨달은 뒤 곧장 파리로 달려가 인상파 기법을 배우고 그것을 넘어서며 경쟁자들과 경쟁했다. 특히 말년에는 고갱과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자신의 업적을 완성했다. 고통스럽지만 경쟁의 춤을 춰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고흐의 위대함은 경쟁에서 비롯되었다. 경쟁이 있다는 것은 각 개인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그 경쟁의 합은 사회 전체로 보아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경쟁은 개인의 능력을 높이는 동기가 되며 사회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이다.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부국강병을 추진하고 학자를 우대함으로써 과학과 사상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 시대를 ‘제자백가의 시대’라 한다. 그 시대는 학파 간 경쟁과 학파 내 경쟁을 치르면서 장점은 받아들이고 단점은 고쳐가며 더욱 풍성한 사상적 성취를 이루었다. 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유럽은 절대 권력이 없던 시절, 사람의 재능과 아이디어, 자본을 놓고 여러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만 했다. 그런 경쟁은 상인들이나 기술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공간을 제공했으며 마침내 산업혁명과 같은 자율적인 경제 환경의 출현을 도왔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굳이 경쟁하면 살 필요가 있나?,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인 블루오션을 찾으면 되지!”
미국 스탠퍼드대 윌리엄 바넷(William Barnett) 교수는 이렇게 단언한다.
“블루오션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라고. 경쟁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핵심동력이라는 것이다. 바넷 교수는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1900년 이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영업한 2970개 소매은행의 흥망을 분석한 결과 ‘경쟁에 노출된 조직은 실패 확률이 더 낮다’고 결론 내렸다.
경쟁은 순간의 고통이 따르지만 결국 기업들이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경쟁에 밀린 기업은 만회할 방법을 찾고 배우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경쟁력이 쌓이게 되고 이는 경쟁회사에 다시 자극을 주게 된다. 이러한 경쟁과정을 통해 기업들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니 성장을 바라는 리더라면 경쟁에서 숨지 말고 오히려 경쟁을 즐겨야 한다.
전 세계 커피의 대명사하면 ‘스타벅스’를 빼놓을 수 없다. 스타벅스는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커피와 차, 향신료를 파는 작은 매장으로 시작했다. 대부분의 소매업체라면 회전율에 신경을 쓰게 된다. 회전율이 높아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이 고정관념에 탈피했다. 좋은 커피를 마시며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커피가격은 높아도 고객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이유라 생각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미국적 스타일의 대표 브랜드로 발전했다. 현재 스타벅스는 19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커피 제국으로 63개국에 2만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성공 요인은 커피의 품질, 라이프 스타일, 분위기, 여유,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등 인간적인 요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에게 경쟁상대가 없었다면 이러한 발전적 요소들을 착안할 수 있었을까?
10년 전 스타벅스는 프랑스 진출 할 때 난관에 봉착했다. 중국, 인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지화 전략을 발휘하여 매장 위치, 메뉴, 매장 수 등을 고려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프랑스 시장은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이에 대한 프랑스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특히 손님과 점원이 대부분 잘 아는 사이여서 더 재미있고 친근하다. 이는 100년 넘게 이어진 프랑스만의 문화다.
스타벅스는 프랑스 진출 이래 5년간 적자를 기록했다. 매장 위치 및 메뉴의 현지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0년 넘게 자리 잡은 프랑스의 문화가 경쟁자인 셈이다. 결국 스타벅스는 프랑스 주민보다는 핵심 고객층인 관광객에 집중했다. 프랑스는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다. 유동인구가 많은 관광지를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가 쉽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프랑스 최초의 스타벅스 매장은 관광지에 위치했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고가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전 세계적으로 아우르는 스타벅스 제국을 건설 할 수 있었다. 바로 경쟁이 부르는 가치였다.
고통스럽지만 위대한 경쟁의 춤을 추어보지 않겠는가?
고흐와 고갱은 함께 살면서 늘 논쟁을 벌였다. 두 사람은 자주 흥분했고 격렬하게 다퉜다. 고갱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고흐와 나는 일반적으로 거의 의견이 달랐다. 특히 그림에 관해서 그랬다. 고흐는 로맨틱했고 나는 원초적인 상태에 도달하려고 했다. 색상만 해도 고흐는 몽티셀리처럼 물감의 반죽을 무작위로 선택했고, 나는 기교를 부려 만지작거리는 걸 싫어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의 우월성은 상대를 헐뜯는 육탄전이 되었다. 결국 고갱이 떠난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자해까지 감행한다. 목사의 아들로서 차분하게 자라온 고흐의 행동은 고갱과의 경쟁에서 지기 싫어하는 분노의 표출이었으리라.
위대한 화가는 단지 엄청난 노력이나 대단한 천재성만으로 위대한 반열에 오른 게 아니다. 고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화풍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걸 깨달은 뒤 곧장 파리로 달려가 인상파 기법을 배우고 그것을 넘어서며 경쟁자들과 경쟁했다. 특히 말년에는 고갱과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자신의 업적을 완성했다. 고통스럽지만 경쟁의 춤을 춰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고흐의 위대함은 경쟁에서 비롯되었다. 경쟁이 있다는 것은 각 개인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그 경쟁의 합은 사회 전체로 보아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경쟁은 개인의 능력을 높이는 동기가 되며 사회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이다.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부국강병을 추진하고 학자를 우대함으로써 과학과 사상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 시대를 ‘제자백가의 시대’라 한다. 그 시대는 학파 간 경쟁과 학파 내 경쟁을 치르면서 장점은 받아들이고 단점은 고쳐가며 더욱 풍성한 사상적 성취를 이루었다. 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유럽은 절대 권력이 없던 시절, 사람의 재능과 아이디어, 자본을 놓고 여러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만 했다. 그런 경쟁은 상인들이나 기술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공간을 제공했으며 마침내 산업혁명과 같은 자율적인 경제 환경의 출현을 도왔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굳이 경쟁하면 살 필요가 있나?,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인 블루오션을 찾으면 되지!”
미국 스탠퍼드대 윌리엄 바넷(William Barnett) 교수는 이렇게 단언한다.
“블루오션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라고. 경쟁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핵심동력이라는 것이다. 바넷 교수는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1900년 이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영업한 2970개 소매은행의 흥망을 분석한 결과 ‘경쟁에 노출된 조직은 실패 확률이 더 낮다’고 결론 내렸다.
경쟁은 순간의 고통이 따르지만 결국 기업들이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경쟁에 밀린 기업은 만회할 방법을 찾고 배우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경쟁력이 쌓이게 되고 이는 경쟁회사에 다시 자극을 주게 된다. 이러한 경쟁과정을 통해 기업들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니 성장을 바라는 리더라면 경쟁에서 숨지 말고 오히려 경쟁을 즐겨야 한다.
전 세계 커피의 대명사하면 ‘스타벅스’를 빼놓을 수 없다. 스타벅스는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커피와 차, 향신료를 파는 작은 매장으로 시작했다. 대부분의 소매업체라면 회전율에 신경을 쓰게 된다. 회전율이 높아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이 고정관념에 탈피했다. 좋은 커피를 마시며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커피가격은 높아도 고객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이유라 생각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미국적 스타일의 대표 브랜드로 발전했다. 현재 스타벅스는 19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커피 제국으로 63개국에 2만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성공 요인은 커피의 품질, 라이프 스타일, 분위기, 여유,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등 인간적인 요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에게 경쟁상대가 없었다면 이러한 발전적 요소들을 착안할 수 있었을까?
10년 전 스타벅스는 프랑스 진출 할 때 난관에 봉착했다. 중국, 인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지화 전략을 발휘하여 매장 위치, 메뉴, 매장 수 등을 고려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프랑스 시장은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이에 대한 프랑스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특히 손님과 점원이 대부분 잘 아는 사이여서 더 재미있고 친근하다. 이는 100년 넘게 이어진 프랑스만의 문화다.
스타벅스는 프랑스 진출 이래 5년간 적자를 기록했다. 매장 위치 및 메뉴의 현지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0년 넘게 자리 잡은 프랑스의 문화가 경쟁자인 셈이다. 결국 스타벅스는 프랑스 주민보다는 핵심 고객층인 관광객에 집중했다. 프랑스는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다. 유동인구가 많은 관광지를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가 쉽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프랑스 최초의 스타벅스 매장은 관광지에 위치했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고가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전 세계적으로 아우르는 스타벅스 제국을 건설 할 수 있었다. 바로 경쟁이 부르는 가치였다.
고통스럽지만 위대한 경쟁의 춤을 추어보지 않겠는가?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