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災)가 되어 버린 어머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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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씨앗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야만 튼튼하고 좋은 싹을 피우게 된다. 자녀에게 좋은 환경이란 이러한 싹을 알아보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의 안목과 배려 그리고 인내이다. 인생의 흐름이 좋을 때는 모든 것이 좋게만 보이므로 잠재되어 있는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으며 부모와의 관계 또한 원만하다.
문제점은 대부분 자녀들이 커가면서 겪게 되는 사춘기思春期와 학마운學魔運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회자되는 친구 따라 강북 가는 시기에 표출된다. 부모의 사주 격格이 자녀와 어울린다면 다행이지만 차이가 있을 때에는 마치 홍역을 앓듯 가족 전체의 문제로도 번지게 된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공부 자리와 명예 자리가 좋은 길吉 한 명국命局이다. 가끔씩 경험하게 되는 교수나 판사와 같은 이른바 상위 직업군에 속하는 사주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들은 영재英才 판정을 받았고 모든 것을 시키는 대로 따라와 공부도 전교 상위 등수만 차지를 하였다. 중학교를 들어서면서 아들은 사춘기와 더불어 학마운에 접어들었다. 이같은 흐름의 변화를 간과한 체 평소의 모습을 기대한 어머니는 초등학교 시절처럼 선행학습과 오로지 전교 등수라는 목표에만 가치를 두었다.
아들과는 정반대의 흐름인 학업운學業運에 접어든 어머니는 마치 교차로에 접어든 상행선과 하행선 방향의 열차처럼 서로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는 아들의 성적에 비례하여 어머니는 학업운 답게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성적을 바라게 되니 늘어가는 잔소리에 갈등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되었다.
아들은 더 이상 어머니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다고 한다. 최근에는 음악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외박을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 아버지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그나마 자신과는 간간이 대화를 한다고 하니 이제라도 자신이 문제점을 찾아서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야겠다며 조언을 구한다.
학마운이 심하고 길어질수록 아들의 심리적 반발은 커지기 마련인데 이런 시기일수록 포기抛棄와 선택選擇사이에서 부모는 신중해야 한다. 명문대 출신의 부모들이라 딱히 긴 말은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나마 필자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아들의 현재 모습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고언苦言이었다. 존중尊重의 밑바탕에는 더 이상의 극단적인 관계를 우려하는 바램이 있었으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사춘기의 흐름이 지나고 나면 어머니처럼 학업운의 흐름이 도래하니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아들의 인생의 길은 전혀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타고난 그릇의 격과는 다르게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귀하게 태어난 아들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관계 회복을 통한 아들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살리는 것이다. 인생의 흐름이란 항상 굴곡이 있는 법이기에 이러한 방황은 마음을 잡고 나면 오히려 시간을 더 귀중하게 쓸 수가 있는 자산資産이 될 수가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도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상황의 변화란 운運 흐름의 변화요 운의 변화란 절기節氣의 변화이다. 누구에게나 사계절四季節은 공평하기 마련인데 흐름을 대하는 자세가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에 따라 처해진 상황의 결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던 순자荀子는 세상에서 인재人災만큼 무서운 재앙災殃은 없다고 하였다. 자식 잘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마음이야 공감하지만 처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사랑은 오히려 인재人災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점은 대부분 자녀들이 커가면서 겪게 되는 사춘기思春期와 학마운學魔運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회자되는 친구 따라 강북 가는 시기에 표출된다. 부모의 사주 격格이 자녀와 어울린다면 다행이지만 차이가 있을 때에는 마치 홍역을 앓듯 가족 전체의 문제로도 번지게 된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공부 자리와 명예 자리가 좋은 길吉 한 명국命局이다. 가끔씩 경험하게 되는 교수나 판사와 같은 이른바 상위 직업군에 속하는 사주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들은 영재英才 판정을 받았고 모든 것을 시키는 대로 따라와 공부도 전교 상위 등수만 차지를 하였다. 중학교를 들어서면서 아들은 사춘기와 더불어 학마운에 접어들었다. 이같은 흐름의 변화를 간과한 체 평소의 모습을 기대한 어머니는 초등학교 시절처럼 선행학습과 오로지 전교 등수라는 목표에만 가치를 두었다.
아들과는 정반대의 흐름인 학업운學業運에 접어든 어머니는 마치 교차로에 접어든 상행선과 하행선 방향의 열차처럼 서로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는 아들의 성적에 비례하여 어머니는 학업운 답게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성적을 바라게 되니 늘어가는 잔소리에 갈등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되었다.
아들은 더 이상 어머니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다고 한다. 최근에는 음악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외박을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 아버지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그나마 자신과는 간간이 대화를 한다고 하니 이제라도 자신이 문제점을 찾아서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야겠다며 조언을 구한다.
학마운이 심하고 길어질수록 아들의 심리적 반발은 커지기 마련인데 이런 시기일수록 포기抛棄와 선택選擇사이에서 부모는 신중해야 한다. 명문대 출신의 부모들이라 딱히 긴 말은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나마 필자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아들의 현재 모습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고언苦言이었다. 존중尊重의 밑바탕에는 더 이상의 극단적인 관계를 우려하는 바램이 있었으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사춘기의 흐름이 지나고 나면 어머니처럼 학업운의 흐름이 도래하니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아들의 인생의 길은 전혀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타고난 그릇의 격과는 다르게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귀하게 태어난 아들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관계 회복을 통한 아들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살리는 것이다. 인생의 흐름이란 항상 굴곡이 있는 법이기에 이러한 방황은 마음을 잡고 나면 오히려 시간을 더 귀중하게 쓸 수가 있는 자산資産이 될 수가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도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상황의 변화란 운運 흐름의 변화요 운의 변화란 절기節氣의 변화이다. 누구에게나 사계절四季節은 공평하기 마련인데 흐름을 대하는 자세가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에 따라 처해진 상황의 결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던 순자荀子는 세상에서 인재人災만큼 무서운 재앙災殃은 없다고 하였다. 자식 잘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마음이야 공감하지만 처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사랑은 오히려 인재人災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