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여사의 열하(熱夏)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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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여 년 함께 살았던 남편과 이제는 이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미 수년간 여러 액션을 취했건만 무뚝뚝한 남편은 여전히 다른 여인들에게만 관심을 보일뿐 아내의 행동은 여전히 관심이 없다고 한다.
급기야 올봄에는 마치 타들어가 바싹 말라 갈라 터져버린 논바닥처럼 황 여사의 마음도 화가 치밀어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는지라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쭈뼛 거리던 자세를 가다듬고 당신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서울 사대문(四大門) 안 부잣집 딸로 태어나 자신의 집에서 일을 봐주던 시골집 오빠라는 사람과 부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시댁의 모든 대소사는 황 여사의 몫이었다. 자신의 자식들과 함게 일찍 부모를 여읜 시댁 형제의 자식들도 열심히 거두었건만 공치사는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던 남편의 태도는 황 여사의 가슴에 한(恨)을 서리게 하였다.
황 여사의 타고난 명국(사주)는 어떠할까?
남들 눈에는 잘생기고 멋진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자리는 자신에게 취하는 액션이 없다. 더구나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리고 있는 탓에 무늬만 남편인 모습은 황 여사 자신에게 계륵 같은 존재일 뿐이다.
한 집안에 남편이라는 가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재주로 3남매를 훌륭하게 키웠으니 애당초 남편이란 자리는 황 여사의 삶 속에서 후 순위 채권 자리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다를 바 없었다.
명국(命局)이 마치 폭탄 맞은 전쟁터의 모습이라 오행의 다리가 곳곳이 끊어져 있으니 인생살이가 당연히 파란만장했을 터이다. 그 속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은 체 당신 스스로 가정을 일으켜 세웠으니 70을 바라보는 연세에 이제는 누구에게라도 고생했다는 공치사를 들을 만도 하다. 그 대상은 당연 자신의 남편이다.
하지만 남편이란 존재는 결혼 생활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성이 차지 않으니 이제는 사소한 복수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손동(孫動) 즉 극관(剋官)이라는 유년(遊年) 운의 흐름이 일으키는 삶의 파국에 기인함이니 정말 이 보릿자루를 치울 마음이다.
함께 온 큰 딸은 어머니의 마음이 이러한지 몰랐다며 새삼 수 년 전부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보였던 신경질적이었던 태도와 그동안의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에 눈물 감추기에 여념이 없다.
황혼(黃昏)의 열하(熱夏) 일기를 한바탕 쏟아낸 황 여사의 얼굴 표정은 상담 전과는 다르게 많이 밝아진 모습이다. 어찌 보면 마음의 병은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파란만장했던 삶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유년운의 결론을 내야만 한다. 비록 꿔다 놓은 보릿자루일지라도 집 한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하며 한평생 해로(偕老)를 하였기에, 설령 이제는 그 자루가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치우기 전에 한 번의 기회는 주어야 한다.
“정말로 이혼을 하고 싶으시면 이제라도 이혼하겠다고 해 보세요. 남편분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고 반응을 보이실지 … ”
황 여사는 잠시 후 한마디 한다.
“저는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님이 많이 그리워요.. 무척이나 저를 사랑해 주셨거든요..” 대화 말미에 꺼냈던 말은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이 쌓이면 원망 또한 자연스럽게 늘어간다. 황 여사는 아마도 이러한 사랑을 남편에게 기대했는지 모른다.
며칠 후 딸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버님을 대하시는 태도도 달라지셨고 어머니의 마음도 많이 편해지셨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동안의 모든 일들은 모든 황 여사 자신의 명국에서 일어났던 삶의 흔적들이기에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필요는 없다. 어찌 보면 남편 또한 이러한 명국의 여인과 살아온 고단한 삶이었을지 모른다.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결국 타고난 자신의 명국에 그 해답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를 남에게서 찾다 보면 결국 타인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급기야 올봄에는 마치 타들어가 바싹 말라 갈라 터져버린 논바닥처럼 황 여사의 마음도 화가 치밀어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는지라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쭈뼛 거리던 자세를 가다듬고 당신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서울 사대문(四大門) 안 부잣집 딸로 태어나 자신의 집에서 일을 봐주던 시골집 오빠라는 사람과 부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시댁의 모든 대소사는 황 여사의 몫이었다. 자신의 자식들과 함게 일찍 부모를 여읜 시댁 형제의 자식들도 열심히 거두었건만 공치사는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던 남편의 태도는 황 여사의 가슴에 한(恨)을 서리게 하였다.
황 여사의 타고난 명국(사주)는 어떠할까?
남들 눈에는 잘생기고 멋진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자리는 자신에게 취하는 액션이 없다. 더구나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리고 있는 탓에 무늬만 남편인 모습은 황 여사 자신에게 계륵 같은 존재일 뿐이다.
한 집안에 남편이라는 가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재주로 3남매를 훌륭하게 키웠으니 애당초 남편이란 자리는 황 여사의 삶 속에서 후 순위 채권 자리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다를 바 없었다.
명국(命局)이 마치 폭탄 맞은 전쟁터의 모습이라 오행의 다리가 곳곳이 끊어져 있으니 인생살이가 당연히 파란만장했을 터이다. 그 속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은 체 당신 스스로 가정을 일으켜 세웠으니 70을 바라보는 연세에 이제는 누구에게라도 고생했다는 공치사를 들을 만도 하다. 그 대상은 당연 자신의 남편이다.
하지만 남편이란 존재는 결혼 생활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성이 차지 않으니 이제는 사소한 복수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손동(孫動) 즉 극관(剋官)이라는 유년(遊年) 운의 흐름이 일으키는 삶의 파국에 기인함이니 정말 이 보릿자루를 치울 마음이다.
함께 온 큰 딸은 어머니의 마음이 이러한지 몰랐다며 새삼 수 년 전부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보였던 신경질적이었던 태도와 그동안의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에 눈물 감추기에 여념이 없다.
황혼(黃昏)의 열하(熱夏) 일기를 한바탕 쏟아낸 황 여사의 얼굴 표정은 상담 전과는 다르게 많이 밝아진 모습이다. 어찌 보면 마음의 병은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파란만장했던 삶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유년운의 결론을 내야만 한다. 비록 꿔다 놓은 보릿자루일지라도 집 한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하며 한평생 해로(偕老)를 하였기에, 설령 이제는 그 자루가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치우기 전에 한 번의 기회는 주어야 한다.
“정말로 이혼을 하고 싶으시면 이제라도 이혼하겠다고 해 보세요. 남편분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고 반응을 보이실지 … ”
황 여사는 잠시 후 한마디 한다.
“저는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님이 많이 그리워요.. 무척이나 저를 사랑해 주셨거든요..” 대화 말미에 꺼냈던 말은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이 쌓이면 원망 또한 자연스럽게 늘어간다. 황 여사는 아마도 이러한 사랑을 남편에게 기대했는지 모른다.
며칠 후 딸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버님을 대하시는 태도도 달라지셨고 어머니의 마음도 많이 편해지셨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동안의 모든 일들은 모든 황 여사 자신의 명국에서 일어났던 삶의 흔적들이기에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필요는 없다. 어찌 보면 남편 또한 이러한 명국의 여인과 살아온 고단한 삶이었을지 모른다.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결국 타고난 자신의 명국에 그 해답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를 남에게서 찾다 보면 결국 타인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