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수발하랴, 네 자녀 건사하랴,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고단한 일상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누를 수 없었다. 우향 박래현(1920~1976)은 집안일을 마친 밤에야 잠을 쫓아가며 작업에 몰두했다. 늘 깨어 있었고 고단했고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그를 남편인 운보 김기창(1913~2001)은 ‘부엉이’라고 불렀다.

우향도 이런 애칭이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부엉이를 자주 그렸다. 한지에 수묵담채로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을 사용했지만 부엉이와 배경은 매우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냈다.

우향의 ‘부엉이’가 지난 17일 열린 케이옥션의 메이저 경매에서 깜짝 이변을 일으켰다. 부엉이 두 마리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담은 가로 45.5㎝, 세로 78㎝ 작품이다. 낮은 추정가가 500만원으로 매겨져 프리뷰 기간엔 별 관심을 얻지 못했다. 막상 경매 당일 뚜껑을 열자 반전이 일어났다. 시작부터 치열한 경합이 이어졌고 시작가의 7배에 가까운 3400만원에 낙찰됐다. 우향이 운보의 아내, 부부전의 파트너가 아니라 한국 근대미술을 연 대표 화가로 자리잡았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