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뀌었다고 '부용산'으로 귀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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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쯤으로 기억된다.
아프리카 대륙 동남부에 위치한 나라, ‘말라위’ 정부가
‘공공장소 방귀금지법’을 추진하겠다고 하여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당시, 말라위의 방송 리포터가 길을 가던 한 여성에게 마이크를 들이대자,
거침없이 이렇게 쏘아붙였다. “우리 중 누구도 공공장소에서 방귀 뀌는 걸 조절할 순 없어요.
깨달았을 땐 이미 방귀를 뀌고 난 뒤일 겁니다.
우리는 방귀를 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아하니 남의 나라 ‘방귀금지법’이라고
대놓고 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은데…
요며칠 전,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점, 두물머리가 내려다 보이는
양평 부용산을 찾았다가 이 산에 얽힌 일화를 접했다.
분명 가슴 저민 이야기인데도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렇다면 방귀금지에 있어 ‘말라위’ 보다 우리가 한수 위가 아닌가.
이 산에 얽힌 방귀 일화는 이렇다. 먼 옛날~고려시대 이야기다.
궁중가례를 마친 왕과 왕비가
동뢰(同牢, 술과 찬을 나누는 의식)에 이어 첫날밤 거사까지 잘 치렀다.
그런데 그만, 긴장한 왕비가 어전에서 소리 내어 방귀를 뀌고 만 것.
웃으며 넘길 수도 있는 일이거늘, 좀팽이 왕은 대노했고,
다음날 곧바로 이곳 부용산으로 왕비를 귀양 보냈다.
산속으로 쫓겨온 왕비는 어느날, 뱃속에 아이가 들어선 것을 알았다.
아들이었다. 단한번 거사에 홈런을 날린 것이다.
갖은 설움과 모진 역경 속에서도 달을 채워 왕자를 낳았다.
유달리 총명한 왕자는 크면서 전후 사정을 알게 됐다.
장성한 왕자는 매일 도성으로 들어가 하루 왼종일 돌아다니며,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먹을 수 있는 오이씨를 사십시오”라고 외쳤다.
모두가 미친 놈 취급을 했다.
차차 소문이 퍼져 황당한 오이씨 장수의 이야기가
급기야 왕의 귀에 까지 전해졌다.
왕은 청년을 불러 물었다.
“네놈이 오이씨로 백성들을 현혹하고 있다 들었다”
청년은 예를 갖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분명 이 오이씨는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은 지켜 주셔야 수확이 됩니다.
다름아닌, 밤 사이에 아무도 방귀를 뀌지 말아야 합니다”
청년의 말을 전해들은 왕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왕은 이 청년이 직감적으로 왕자란 사실을 눈치챘다.
임금은 왕자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들었다.
즉시 왕비를 불렀으나 왕비는 끝끝내 궁궐로 들지 않고
이곳 부용산에서 여생을 마감했다.
바로 그 왕비의 무덤이 부용산 정상부에 있는 고분이라고 한다.
지금은 ‘부인당(정상)’ 표시 팻말이 세워져 있다.
요즘은 결혼하면 곧바로 ‘방귀’부터 튼다고 하던데,
저 좀팽이 왕은 이러한 사실을 알랑가 몰라~
어전에 방귀 한방 날렸다고, 좀스럽게 왕비를 귀양 조치 해버렸으니..
이에 비하면 말라위의 ‘공공장소 방귀금지법’은
글쎄~ 너무 약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중앙선 전철, 신원역에서 내려 등로 안내판을 살핀 후,
역사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걸어 굴다리를 지나… 포장된 소로를 따라 걷다보면 갈림길 이정표가…
‘천사의집’ 방향을 버리고 왼쪽길로 접어들면 마을로 이어진다.
이정표가 가리키는대로 가면 마을을 통과해야 하지만
땡볕을 피할 요량으로 마을 못 미쳐 우측 산비탈로 올라… 묘 한번 묘하게 생겼다.
희한한 묘지를 지나 숲길을 걷는데 어째 좀 이상하다.
아무래도 방향이 지난번 다녀온 청계산 방향인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지도와 나침반으로 방향을 살피고 나서야… 마을을 통과하면 곧장인데 숲속에서 한바퀴 크게 돌아 걸었으니.
뭐, 그래도 땡볕 길 걷기 보다야 훨 낫다. 얕으막한 산이지만 그래도 제법 가파른 비탈길도 있다. 부용산 정상에는 ‘부인당(정상)’이란 팻말이 나무에 업혀 있고,
부용산 정상 표시석은 조금 아래 세워져 있다. 정상 아래, 전망데크에서 바라다 본… 양수역까지 5.3km나 더 걸어야 한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 로프도 더러 나타나는 된비알이다. 양수역 방면으로 하산하는 길목에 하계산 표시석도 만나고… 산속을 벗어나 논뚝길로 걸어나와 양수역까지 쭈욱~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뙤약볕을 감내해가며… 그렇게… 방귀(?)산, 부용산 걷기를 마무리했다.
아프리카 대륙 동남부에 위치한 나라, ‘말라위’ 정부가
‘공공장소 방귀금지법’을 추진하겠다고 하여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당시, 말라위의 방송 리포터가 길을 가던 한 여성에게 마이크를 들이대자,
거침없이 이렇게 쏘아붙였다. “우리 중 누구도 공공장소에서 방귀 뀌는 걸 조절할 순 없어요.
깨달았을 땐 이미 방귀를 뀌고 난 뒤일 겁니다.
우리는 방귀를 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아하니 남의 나라 ‘방귀금지법’이라고
대놓고 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은데…
요며칠 전,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점, 두물머리가 내려다 보이는
양평 부용산을 찾았다가 이 산에 얽힌 일화를 접했다.
분명 가슴 저민 이야기인데도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렇다면 방귀금지에 있어 ‘말라위’ 보다 우리가 한수 위가 아닌가.
이 산에 얽힌 방귀 일화는 이렇다. 먼 옛날~고려시대 이야기다.
궁중가례를 마친 왕과 왕비가
동뢰(同牢, 술과 찬을 나누는 의식)에 이어 첫날밤 거사까지 잘 치렀다.
그런데 그만, 긴장한 왕비가 어전에서 소리 내어 방귀를 뀌고 만 것.
웃으며 넘길 수도 있는 일이거늘, 좀팽이 왕은 대노했고,
다음날 곧바로 이곳 부용산으로 왕비를 귀양 보냈다.
산속으로 쫓겨온 왕비는 어느날, 뱃속에 아이가 들어선 것을 알았다.
아들이었다. 단한번 거사에 홈런을 날린 것이다.
갖은 설움과 모진 역경 속에서도 달을 채워 왕자를 낳았다.
유달리 총명한 왕자는 크면서 전후 사정을 알게 됐다.
장성한 왕자는 매일 도성으로 들어가 하루 왼종일 돌아다니며,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먹을 수 있는 오이씨를 사십시오”라고 외쳤다.
모두가 미친 놈 취급을 했다.
차차 소문이 퍼져 황당한 오이씨 장수의 이야기가
급기야 왕의 귀에 까지 전해졌다.
왕은 청년을 불러 물었다.
“네놈이 오이씨로 백성들을 현혹하고 있다 들었다”
청년은 예를 갖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분명 이 오이씨는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은 지켜 주셔야 수확이 됩니다.
다름아닌, 밤 사이에 아무도 방귀를 뀌지 말아야 합니다”
청년의 말을 전해들은 왕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왕은 이 청년이 직감적으로 왕자란 사실을 눈치챘다.
임금은 왕자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들었다.
즉시 왕비를 불렀으나 왕비는 끝끝내 궁궐로 들지 않고
이곳 부용산에서 여생을 마감했다.
바로 그 왕비의 무덤이 부용산 정상부에 있는 고분이라고 한다.
지금은 ‘부인당(정상)’ 표시 팻말이 세워져 있다.
요즘은 결혼하면 곧바로 ‘방귀’부터 튼다고 하던데,
저 좀팽이 왕은 이러한 사실을 알랑가 몰라~
어전에 방귀 한방 날렸다고, 좀스럽게 왕비를 귀양 조치 해버렸으니..
이에 비하면 말라위의 ‘공공장소 방귀금지법’은
글쎄~ 너무 약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중앙선 전철, 신원역에서 내려 등로 안내판을 살핀 후,
역사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걸어 굴다리를 지나… 포장된 소로를 따라 걷다보면 갈림길 이정표가…
‘천사의집’ 방향을 버리고 왼쪽길로 접어들면 마을로 이어진다.
이정표가 가리키는대로 가면 마을을 통과해야 하지만
땡볕을 피할 요량으로 마을 못 미쳐 우측 산비탈로 올라… 묘 한번 묘하게 생겼다.
희한한 묘지를 지나 숲길을 걷는데 어째 좀 이상하다.
아무래도 방향이 지난번 다녀온 청계산 방향인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지도와 나침반으로 방향을 살피고 나서야… 마을을 통과하면 곧장인데 숲속에서 한바퀴 크게 돌아 걸었으니.
뭐, 그래도 땡볕 길 걷기 보다야 훨 낫다. 얕으막한 산이지만 그래도 제법 가파른 비탈길도 있다. 부용산 정상에는 ‘부인당(정상)’이란 팻말이 나무에 업혀 있고,
부용산 정상 표시석은 조금 아래 세워져 있다. 정상 아래, 전망데크에서 바라다 본… 양수역까지 5.3km나 더 걸어야 한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 로프도 더러 나타나는 된비알이다. 양수역 방면으로 하산하는 길목에 하계산 표시석도 만나고… 산속을 벗어나 논뚝길로 걸어나와 양수역까지 쭈욱~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뙤약볕을 감내해가며… 그렇게… 방귀(?)산, 부용산 걷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