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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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05.1.jpg)
엊그제(10/4) 대관령에 첫 얼음이 관측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만사불여 튼튼, 장갑과 여벌옷을 챙겨 넣었습니다.
중부 산간지역에 비소식도 있다 하여 우의도 챙겼습니다.
동녘하늘에 불그스레한 기운이 어둠을 걷어내는 이른 시각, 집을 나섰습니다.
태풍의 기운이 뻗쳐서인지 구름의 움직임이 빠릅니다.
오늘 산행지는 강원도 정선에 있는 가리왕산입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06.1.jpg)
바로 이 산자락에 2018년 평창 올림픽 알파인 스키장이 들어서게 된답니다.
2주간의 올림픽을 위해 천년의 숲을 갈아 엎겠지요.
나라에서 지정한 생물유전자보호구역인데도 말입니다.
가리왕산 스키장 환경영향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슬로프 건설로 인해
총 11만 1,636그루의 나무가 훼손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분명 낭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정된 가리왕산의 원시림 훼손은 크나큰 비보입니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네요.
그새 애마는 가리왕산 장구목이골 입구(정선군 북평면 숙암리)에 멈춰
40여 산객들을 부려 놓습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우의를 꺼내입을 정도는 아닙니다.
본격 산행에 앞서 들머리에서 단체 인증샷을 남겼습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07.1.jpg)
계곡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립니다. 수량도 넘쳐나구요.
산이 높으면 골도 깊기 마련이지요.
점판암이 깔린 등로는 이끼계곡과 나란히, 깊은 숲속으로 이어지다가
해발 800m에 이르러 물소리가 잦아들면서 계곡과 갈라섭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08.1.jpg)
필설로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에 그냥 상상에 맡길랍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09.1.jpg)
이끼계곡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푹 빠져 초입에서부터
이곳 임도까지 3km를, 힘든 줄 모르고 걸었습니다.
임도에 세워놓은 안내판엔 가리왕산의 보호수인 주목 42그루에
외과적 수술을 실시하였다고 고지해 놓았습니다.
애써 수술해 놓은 주목이 평창 올림픽의 제물이 되지나 말아야 할텐데…
가리왕산 임도는 총 연장 57.44km로 산악마라톤, MTB 매니아들이
보물처럼 아끼는 곳이지요.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0.1.jpg)
고산 수목들이 비안개에 휘감겨 몽환적 실루엣을 드러냅니다.
아름드리 주목과 들메나무의 기품에 탄성이 절로 납니다.
온갖 풍상에 부대끼면서도 결코 당당함을 잃지 않습니다.
명을 다해 드러누운 고목 위로 이끼가 들러붙고 부엽토가 쌓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분해해 땅심을 돋우며 숲의 생장을 돕겠지요.
건강한 숲에서 이처럼 자연의 순환을 배웁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1.1.jpg)
풀이하자면, 뭐~ 곡차가 땡긴다는 얘기지요.
숲기운을 받고자(술기운을 빌리고자~) 걸음 멈춰 자리를 폈습니다.
감상적 분위기에 취해? 불콰해진 일행들이 일어설 줄 모릅니다.
그만큼 비안개와 어우러진 가을산색은 매혹적이었습니다.
땀이 식어 한기가 와 아쉽지만 자릴 털고 일어섰지요.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2.1.jpg)
우측으로 200m를 진행하여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중봉을 거쳐 숙암분교(7km)으로 내려설 것입니다.
일행 몇몇은 지친 나머지, 정상이 코앞인데도 포기하고 곧장 중봉으로 향합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지요.
키를 낮춘 잡목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걸었습니다.
짙은 비안개는 가리왕산의 조망을 삼켜 버렸지만
홀로 선 고사목이 나그네의 아쉬움을 달래 줍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3.1.jpg)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4.1.jpg)
정상엔 커다란 돌무더기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정상표시석과
갈왕산의 유래를 적은 비석이 각각 세워져 있고요.
비석에 새겨져 있는 가리왕산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가리왕산은 야사에 의하면 갈왕(褐王)이 난을 피하여 현재 절터라고 부르는
서심퇴(西深堆)에 거처하였다 하여 갈왕산(褐王山)이라 부르던 것이
‘가리왕산’으로 변하였음”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5.1.jpg)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6.1.jpg)
이 산엔 유난히 회색빛 나는 납작한 돌이 산재해 있습니다.
숫돌이나 벼루, 기와, 구들장 재료로 쓰인다는 점판암이지요.
얇게 쪼게지기 때문에 판재로 사용이 가능해 장식재로 인기라고들 합니다만
내 눈엔 그저 삼겹살 구워먹기 딱 좋은 돌판으로만 보입니다.
적당한 크기의 얇은 돌판 하나를 챙겨 배낭에 매달았습니다.
마침 하산하여 노상에서 ‘삼겹살 파티’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때 돌판에 구워야겠단 생각으로 말입니다.
어깨를 찍어 누르는 고통을 감내해가며 미련 곰탱이처럼 돌판을 짊어지고
6km를 걸어 내려온 이유는, 단순 명료합니다.
삼겹살은 쇠불판 보다는 돌판에 구워야 제격이기 때문이지요.
호젓한 가을산에 들어 생뚱맞게도 고작 ‘삼겹살’을 떠올리다니!
아마도 뇌의 감성에너지가 소진된 모양입니다.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감성에너지 연료인데 말입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충전을 해야겠습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7.1.jpg)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8.1.jpg)
노랗게, 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어우러져 한껏 가을 분위기를 돋웁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19.1.jpg)
사방이 탁트인 상봉(정상)과는 달리 중봉은 숲이 에워싸고 있어
설사 날이 맑았어도 사위 조망은 어려울 듯 싶습니다.
날머리로 잡은 숙암분교까지는 5.0km…
배낭에 매단 돌판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하봉(2km) 길을 버리고 좌측 숙암분교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합니다.
중봉에서 1.5km 내려서니 ‘오장동 임도’가 산허리를 가로지릅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20.1.jpg)
숲길을 2km 진행하면 두번째 임도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따라 걸을까, 아니면 다시 숲길로 내려설까,
잠시 고민하다가 숲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숲길로 들어서자말자, 지금껏 가리왕산의 등로와는
사뭇 다른, 로프가 매달린 가파른 암릉길이 숨어 있었습니다.
지름길이라 생각해 선택한 길에서 복병을 만난 것이지요.
하지만 얼마전 다녀온 속리산 서북능선 암릉길에 비하면 ‘룰루랄라’지요.
서너군데 로프 구간을 통과하자, 등로는 다시 산사면을 따라
완만하지만 지리하게 이어집니다.
완만하던 능선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급하게 고도를 낮춥니다.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21.1.jpg)
너덜지대가 시험에 들게 하네요. 그제서야 무릎이 시큰거립니다.
그럴수 밖에, 널따란 돌판을 배낭에 매달고서 6km를 내려 왔으니…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22.1.jpg)
이어 저만치에 마을과 숙암분교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어깨쭉지 빠지게 매달고 온 돌판을 깨끗히 씻어
삼겹살을 얹어 굽는 일만 남았습니다 ~~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23.1.jpg)
![정선 가리왕산의 초가을 실루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791624.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