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개비가 흩날리는 으스스한 날씨다.
저멀리 수평선 위로 아른거리던 희끗한 산능선이 바짝 다가섰다.
배는 돗토리현과 시마네현을 잇는 철교 밑을 지나 사카이미나토항에 접안했다. 사카이미나토항은 돗토리현 왼쪽 북단 귀퉁이에 있다.
돗토리현은 일본의 현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다.
동해를 가운데 두고 한반도와 맞보고 있는 현이다. 일본의 하늘빛이 심술궂다. 첫 인사치곤 영 고약스럽다.
저마다 갑판 난간에 기대어 항구 주변 풍경을 담느라 분주하다.
하선용 철계단이 부두에 걸쳐졌다.
갑판에서 내려와 배낭을 챙겨 하선 대열에 섰다.
3충에서 1층으로 이어진 층계엔 하선 대기 중인 탑승객들로 북적댄다.
대부분이 트레킹, 등산, 스키복 차림의 단체객들이다. 입국수속을 끝내고 대합실로 들어서자 할머니 두 분이 미소지으며
한글판 돗토리현 안내도를 건네준다.
돗토리현에는 한국 산꾼들이 즐겨찾는 해발 1,709m의 다이센(大山)이 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건네받은 여행지도엔 돗토리현에 대한 안내뿐이다.
이번 힐링 트레킹 코스는 시마네현에 있다.
사실 시마네현에 발을 딛는게 썩 내키진 않았다.
독도가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정부에 빌붙어 숫제 자기네 현에 속한다며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나선게 ‘시마네현’이기 때문이다.
시마네현은 일본 47개 현 중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다.
그래서 정부의 보조금이 절실했던 모양이다.
보조금에 눈이 멀어 꼼수를 택했다. ‘다케시마의 날’이 그 결과물이다.
덕분에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 챙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우리 일행은 대기 중인 버스 두 대에 분승했다.
본격 걷기 일정에 앞서 이곳 항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는
일본 회유식 정원인 ‘유시엔(由志園)’을 둘러보기로 했다.
시마네현과 돗토리현 사이에 나카우미(中海)라는 큰 호수가 있다.
‘유시엔’은 호수 한 가운데 있는, ‘다이콘시마’란 섬에 자리하고 있다.
버스가 유시엔 정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이번 트레킹을 주관한
JNC(Japan Navigate Company)의 서태원 소장이 마이크를 잡고서
이틀간의 일정을 소개했다.
그는 짬짬이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자칫 지리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도 달달하게 풀어내는 그의 놀라운
언변에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진눈개비 날리는 으스스한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평일이어설까,
유시엔 정원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오가는 이도 눈에 띄질 않는다.
유시엔 정원은 그렇게 한적한 모습으로 이방인을 맞았다. 오늘처럼 궂은날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곳곳에 우산을 비치해 두었다.
정원을 가꾸는 주인장의 섬세함은 이처럼 우산 하나에도 묻어난다. 독야청청 소나무와 품격있는 겨울 모란이 어우러진 정원은
그대로가 한 폭의 그림이다.
모란이 꽃망울을 틔우는 봄, 창포가 개화하는 여름,
단풍빛이 화려한 가을, 그리고 설경이 고즈넉한 겨울,
이렇듯 일본 회유식 정원, ‘유시엔(由志園)’의 사계는 살아 있다. 일본의 정원은, 크게 ‘회유식(回遊式)’과 ‘가레산스이(枯れ山水式)’으로 구분한다.
일본 정원의 역사는 1000여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8세기에는 꽃과 나무를 집 주위에 심고 정원의 한 가운데 연못을 파
물고기를 놀게 했다.
연못 주위에 산책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돌면서 경관을 감상하며 차를 마셨다.
흙과 돌을 쌓아 둔덕도 만들었다. 인공적으로 산과 바다도 표현했다.
정원 조성에 상징적인 기법도 다양하게 구사했다. 이처럼 실제 소나무라든지, 바위, 연못이 있고 물이 흘러내리는 등
실물을 이용해 가꾸어진 정원을 ‘회유식’이라 하며
반면, 연못이나 흐르는 물은 없지만 바닥에 잘게 부순 돌이나 흰모레를 깔아
수면과 같은 분위기를 표현하는 정원을 일러 ‘가레산스이식’이라 한다. 일본의 에도시대부터 지방을 다스렸던 다이묘(영주)들이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공간으로 정원 꾸미길 좋아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아파트나 공동주택보다는 단독주택을 선호한다.
단독주택에 조그만 공간이라도 있으면 십중팔구는 마당에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고,
자그만 연못을 파고, 잉어를 키운다.
에도시대 다이묘들의 DNA가 그대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