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계곡, ‘오니노시타부루이(鬼の舌震)’를 뒤로하고
다음 코스인 ‘이즈모 다이샤(出雲大社)’로 향했다.
일본사람들은 어느 곳, 어느 것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온갖 신들을 모신다. 신을 모시는 종교, ‘神道’는 일본에만 존재한다.
바로 그 神들을 모시는 곳이 ‘神社’다.
사업 번창을 기원하는 신사, 술이 잘 빚어지기를 기원하는 신사,
풍농을 기원하는 신사, 학문성취를 기원하는 신사 등등 신사의 종류는 하고많다.
그 중 ‘이즈모 다이샤’는 좋은 인연을 맺어주길 기원하는 신사(神社)이다.
국도를 내달리던 버스는 잠시 ‘미찌노에끼(道の驛)’에 멈춰섰다.
‘미찌노에끼’는 고속도로에 있는 대형 휴게소가 아닌 지방도나 국도변에 있는
간이 휴게소로 용변 해결과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다.
또한 주로 그 지역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로컬푸드매장을 갖추고 있다.
과일이나 채소를 생산한 지역민들이 미찌노에끼를 이용해 소비자와 직거래한다.
이러한 시설은 농수산물 유통 활성화와 도농교류, 그리고 지역민의
소득을 높이는 차원에서 일본 정부가 국비로 건립해 지역민이 운영하고 있다.

‘미찌노에끼’는 진출입로가 잘 연결되어 접근이 쉽고 주차공간이 넉넉하며
생산자가 직접 판매하다보니 늘 신선하고 믿을 수 있다는게 강점이다.
더불어 지역의 역사나 문화, 관광 등을 안내하는 역할도 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뜻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미찌노에끼’를 중심으로 잘 전개되고 있다.
매장 안을 둘러 보았다. 과일이나 야채의 소단위 포장이 눈길을 끈다.
수북이 쌓인 과일 무더기에서 이것 저것 골라 담는게 아니라
모든 과일이나 야채들은 소포장 되어 있다.
벽면엔 생산자의 얼굴이 박힌 벽보를 붙여 신뢰를 더한다.
우리나라 국도에도 비슷한 농산물 판매장이 있긴 한데 이곳 ‘미찌노에끼’에 비하면
뭔가 정리가 안된 것처럼 어수선하다.
깔끔한 ‘미찌노에끼’의 순기능이 솔직히 부럽다.

버스는 국도를 버리고 고속도로로 올라 1시간을 달려 이즈모 시내로 들어섰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다. 간간이 진눈개비가 흩날린다.

눈길 닿는 곳 어디나 깔끔하기 그지없다.
휴지조각,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는다.
큰길이든 이면도로든 골목길이든 불법 주차도 눈에 띄질 않는다.
공공 질서의식민큼은 얄미울 정도로 부럽다.

神들의 고향이라서일까, 이즈모市 거리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이즈모다이샤(出雲大社) 어귀에 우뚝 서 있는 하얀 문을 지난다.
사찰 입구의 일주문과 흡사하다.
이 문턱이 신과 인간의 영역을 경계하는지도 모르겠다.

일본 신사 하면 한국인들 입장에서 웬지 꺼려진다.
일본이 벌인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 명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는
야스꾸니신사에 대한 불쾌감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9만 8천개 정도의 신사가 있다. 절은 8만 7천개 정도다.

으스스한 날씨 탓인지 ‘이즈모다이샤’ 주차장도 한산했다.
그러나 작년 음력 10월에는 이곳이 순례자들로 미어터질 정도였단다.
60년 주기로 온갖 신들이 이곳에 모여 회합을 갖는데
작년이 바로 그 해였기 때문이다.
손이 없는 해, 뭔 일을 해도 좋은 일만 일어나는 해가 작년이었다.
그래서 많은 일본 사람들이 이 신사를 참배키 위해 모여들어
이즈모 시내는 물론 돗토리현 인근의 모든 숙박시설까지 동이 났을 정도였다.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는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 시에 있는 신사로
일본에서 세번째로 규모가 큰 유명한 신사다.
메이지 유신 때 실시된 근대 신사의 격을 분류하는 제도 아래서 유일하게
타이샤(大社)라는 이름을 사용한 신사였다.
이즈모다이샤는 일본 건국신화와도 관련이 있다.
일본 건국신화도 뻥이 심한 건 그리스신화 못지않다.

일본 건국신화를 얼렁뚱땅 겉핥기하면 이러하다.

암흑의 세계, 혼돈의 세상에서 이자나기(男神)와 이자나미(女神) 남매 신의
합궁에 의해서 태양의 신을 비롯 수많은 신들이 태어났다.
그 중 태양의 신인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가 있었다.
동생인 무사의 신이 누나인 태양의 신을 너무나 괴롭혔다.
동생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태양의 신은 동굴 속으로 숨어 버렸다.

그로인해 세상은 결국 암흑천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많은 신들이 태양의 신이 숨어버린 동굴 앞에 몰려가
잔치를 벌이며 소란을 떨었지만 끝내 나오질 않았다.
그때 어떤 신이 동굴 문 앞으로 다가서더니 아랫도리를 확 내렸다.
밖에 모여있던 모든 신들이 그걸 보고 깔깔 웃어댔다.
숨어있던 태양의 신이 호기심이 동해 돌문을 빼꼼히 열었는데
그때 힘이 센 신이 돌문을 잡아젖히며 태양의 신을 끌어냈다.
이로써 암흑의 세계가 가고 다시 광명의 세계가 왔다.

이처럼 동굴 속에 숨은 태양의 신을 끄집어 내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던
많은 신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곳이 바로 이곳, ‘이즈모다이샤(出雲大社)’다.
신화라는게 대개 이렇듯 허무맹랑하며 유치찬란하다.
본당 입구에 ‘시메나와’라는 거대한 금줄이 걸려 있다.
신과 인간세상을 이어준다는 금줄이다.
짚을 꼬와 만든 이 금줄의 무게가 5톤이나 된다.

잘린 면에 5엔짜리 동전이 많이 꽂혀 있다.
동전을 던져 금줄 면에 꽂히면 좋은 인연이 맺어진다하여 너나없이 던졌으나
지금은 동전을 던지지 못하게끔 망을 씌워 놓았다.
그럼 왜 5엔짜리 동전만 던졌을까?
일본말로 인연을 ‘고엔(御緣)’이라 하는데 五円의 발음 역시 ‘고엔’이다.
고로 5엔은 행운과 인연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연과 관계 깊은 곳이라 거목에 소망을 적어 걸어 놓은
‘오미쿠지’ 또한 장관이다. ‘오미쿠지’는 일종의 점괘 제비이다.
일본사람들은 한결같이 오미쿠지를 구입해 緣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나무에 정성스레 걸었다. 어떤 ‘緣’을 주문했을까?

일본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신사와 같이 한다. 신사는 생활 그 자체다.
아기가 100일이 되면 신사로 데리고 가 건강을 기원하고,
3살, 5살, 7살이 되면 또 신사를 찾아 영특하게 자라 달라고 빌고,
결혼할 때도 신사를 찾아 정성껏 예를 올린다.
정월엔 특별히 유명한 신사 찾아가 그해 복과 안녕을 빈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고비고비마다 신사를 찾는 것이다.

40여분 동안 경내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 인근 마트에 들러
몇몇 일행들과 야심한 밤에 일용할 양식(?)을 구입했다.
숙소는 이즈모市 국민숙사(國民宿舍)인 ‘국인장(國引莊)’
드넓은 호수를 끼고 있어 풍광이 빼어난 일본식 온천 호텔이다.
오후 6시, 체크인 하기 바쁘게 온천욕장으로 고고씽~
실내와 실외를 넘나들며 온천욕으로 몸뚱이를 호사시키고 나니
이번엔 근사한 저녁상이 미각을 자극한다. 일본 전통식 ‘와쇼쿠(和食)’다.
일본에서는 화합하라는 ‘和’자를 많이 쓴다. 일본어로 와(わ)다.
이 ‘和’ 정신이 생활 곳곳에 깊이 스며 있다.
일본식사를 ‘와쇼꾸’, 일본옷을 ‘와후꾸’, 다다미방을 ‘와시스’라 한다.
이처럼 일본적인 것에는 대부분 ‘和’자가 붙는다.
‘와쇼쿠(和食)’는 철저히 개인별 상차림이다.
깔끔하고 정갈하여 우선 눈이 즐겁다. 맛과 멋을 함께 담아냈다.
아기자기한 그릇에 올려진 찬은 야박스러우리만치 쥐똥만큼이다.
그러나 곧이어 바삭하게 튀겨진 덴뿌라가 올라오고,
혀끝을 살살 녹이는 게살이 등장하고,
고슬고슬한 쌀밥에 미소된장국까지… ‘야박스럽다’는 말은 거둬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