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독한 아홉 봉우리, 진안 구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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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을 대표하는 산, ‘마이산’은 지금, 휴식 중이다.
숫마이봉은 험봉이라 기약없이 통제되고 있지만,
암마이봉은 오는 11월 1일이면 휴식년(1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다.
기다린 10년, 드디어 암마이봉의 품에 안겨 볼 날도 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꿩대신 닭’, 구봉산으로 향한다.
구봉산은 수줍어 숨어 있는 진안의 또다른 명산이다.
추부IC를 빠져나온 버스는 금산을 지나 725번 지방도로를 무진장 달린다.
여기서 ‘무진장’이란 ‘엄청나다’는 뜻이 아니라
무주, 진안, 장수를 일컫는 ‘무진장(茂鎭長)’이다.
‘무진장’은 이제 더 이상 오지의 대명사가 아니다.
‘힐링족’들이 즐겨찾는 천혜의 땅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세가 범상치 않다. 산수 좋은 진안이다.
구봉산 연봉(連峰)이 올려다 보이는 산들머리 주차장에 닿았다.
주천면 운봉리 상양명마을 앞, 너른 주차장에 대형버스가 여럿 보인다.
경향각지에서 일찌감치 산객들을 실어온 버스들이다.
산객들은 빙둘러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신록 가득한 5월의 산자락은 숨쉬는 듯 싱그럽고
하늘빛은 그지없이 선연하다.
그래서일까, 마을 이름도 햇살밝은 ‘陽明마을’이란다. 제1봉을 올려다보며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서 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을 벗어나 개울 건너 농로 끄트머리에 이르자,
산들머리가 나타난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진 2.8km, 다들 만만한 거리라 여긴다.
그렇게들 생각한다. 걸어보지 않고서는…
아홉봉우리를 지나 날머리에 이른 산객을 잡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산’이라고 할 것이다.
骨山九峰은 그만큼 짧지만 강하다. 더러는 설악 공룡능선의 축소판 같다고도 한다.
거칠고 날카롭지만 속살은 부드럽기에 쫄 필요는 없다.
초입부터 등로가 가팔라 발걸음이 둔중하다.
더딘 걸음으로 온전히 몸을 내맡긴다.
엔진이 좀 더 가열되면 제 페이스를 찾게 될 것이다.
쉼없이 걸어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 갈림길에 닿았다.
바닥에 코 박고 걷다간 1봉을 놓치기 십상이다.
1봉은 주등로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붙어야 하는 건너편 1봉이 부담스러웠던지,
몇몇은 포기하고 곧장 2봉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9봉의 시작 봉우리인 1봉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1봉(668m)에 올라 전망데크에 서니 ‘햇살밝은 마을’이 발 아래다.
저 너머 덕유산 주능선이 그려낸 하늘금도 1봉의 일품 조망이다.
1봉을 뒤로하고 돌무더기가 있는 2봉(720m)을 거쳐, 3봉(728m)을 지나,
팔각정이 있는 4봉(752m)까지 한달음에 내걸었다.
둔중하던 장딴지가 슬슬 骨山에 적응되고 있는지 가볍다. 그새 시간은 정오다. 팔각정 아래 자리를 폈다.
‘마의 구간’을 오르내리기 위해선 이쯤에서 연료 보충이 필요하다. 4봉을 내려서니 쉼터다. 나무벤치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서
곧장 5봉(742m)으로 올라 붙었다. 정상 천왕봉이 덮칠 듯 다가섰다.
다시 가파른 바위벼랑을 로프에 매달려 버벅대길 몇차례, 6봉(732m)이다.
로프와 계단이 유난히 많은 구봉산이다.
고가사다리 수준의 계단을 네 발로 기어오르다 지쳐 난간에 몸을 기대어
우러러 하늘을 본다. 시원한 골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난다.
힘 내라는 속삭임일게다.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나홀로 산행에서 산중오수가 습관된 탓이다. 정신줄을 부여잡고서 곧추선 철 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7봉(739m)이다.
7봉 역시 1봉처럼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나 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지만 어느 봉 하나 쉽게 허락치 않는다.
로프를 잡고서 7봉을 내려서면 목교(木橋)가 등장한다.
천길 벼랑을 이어놓은 아찔한 목교를 건너 사다리를 다 올라서면
우측으로 로프가 걸려 있는 된비알이 얼핏 보인다. 8봉 오름길이다.
8봉 역시 등로에서 비켜나 있어 무심히 걷다간 그냥 지나치기 쉽다.
8봉(780m)에서 건너다 본 9봉은 지금껏 지나온 봉우리들과는 덩치부터 다르다.
여덟 봉우리를 지나오며 이미 삭신이 파김치가 된 탓일까?
9봉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거대 방벽(防壁)처럼 느껴졌다.
기운이 쭉 빠지고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다. 8봉에서 다시 80m를 내려서니 돈내미재 갈림길이다.
돈내미재(700m)에서 해발 1,002m인 9봉까지 거리는 500m에 불과하나
고도 차이는 300m에 달한다. 이렇듯 오지게 가파르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천황암을 거쳐 곧장 원점으로 하산할 수 있다.
머뭇머뭇 하던 몇몇 산객들이 천황암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9봉의 위세에 지레 겁먹은 이들이 이용하는 탈출로인 모양이다.
저질체력이라 믿는 건 오로지 뚝심 뿐이다.
스스로에게 ‘화이팅’을 주문하며 마의 구간, 9봉 사면에 매달렸다.
끝간데 없는 가파른 계단에 가쁜 숨소리만 쌓여 가고,
거친 된비알은 ‘방심’을 노리며 ‘긴장’을 주문한다.
조망없이 까칠한 된비알 구간은 정말이지, 학을 떼게 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고 했다. 만고의 진리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제9봉, 천왕봉(1,002m)에 올라섰다. 구봉산 정상이다.
불끈 솟구친 암팡진 암봉들은 ‘햇살밝은 마을’을 호위하듯 도열해 있고
옹골진 주변 산세는 용담호와 어우러져 한 폭 그림으로 펼쳐졌다.
서쪽으로 북두봉과 운장봉이 손짓하고, 남쪽으로 덕유산 능선과
두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일망무제에 홀려 9봉 오름길의 쓴 맛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천왕봉을 뒤로하고 남쪽 능선을 따라 바랑재로 향한다.
바랑재에서 능선을 버리고 동남쪽 바랑골로 내려섰다.
바랑재에서 하산길, 높인 만큼 고도를 낮춰야 한다.
급사면 마사토가 얼어붙은 눈길만큼이나 미끄럽다는 사실은 진즉 알았지만
이곳 내리막길에서 다시한번 온 몸으로 실감했다.
마사토 비탈길이 끝나자, 계류 시작점까지 너덜길이 바통을 이었다.
봄 가뭄으로 계곡은 메말라 있어 세족의 기쁨은 누리지 못했다. “지끔 보담사 단풍 든 가을 구봉산이 기가 메키지라~
날머리 길모퉁이에서 오미자즙을 팔고 있는 동네 아낙의 구봉산 자랑이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게 맞나 보다.
독하게 오르내린 기억은 그새 싹 가시고 단풍 좋다는 가을에
다시한번 찾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숫마이봉은 험봉이라 기약없이 통제되고 있지만,
암마이봉은 오는 11월 1일이면 휴식년(1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다.
기다린 10년, 드디어 암마이봉의 품에 안겨 볼 날도 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꿩대신 닭’, 구봉산으로 향한다.
구봉산은 수줍어 숨어 있는 진안의 또다른 명산이다.
추부IC를 빠져나온 버스는 금산을 지나 725번 지방도로를 무진장 달린다.
여기서 ‘무진장’이란 ‘엄청나다’는 뜻이 아니라
무주, 진안, 장수를 일컫는 ‘무진장(茂鎭長)’이다.
‘무진장’은 이제 더 이상 오지의 대명사가 아니다.
‘힐링족’들이 즐겨찾는 천혜의 땅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세가 범상치 않다. 산수 좋은 진안이다.
구봉산 연봉(連峰)이 올려다 보이는 산들머리 주차장에 닿았다.
주천면 운봉리 상양명마을 앞, 너른 주차장에 대형버스가 여럿 보인다.
경향각지에서 일찌감치 산객들을 실어온 버스들이다.
산객들은 빙둘러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신록 가득한 5월의 산자락은 숨쉬는 듯 싱그럽고
하늘빛은 그지없이 선연하다.
그래서일까, 마을 이름도 햇살밝은 ‘陽明마을’이란다. 제1봉을 올려다보며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서 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을 벗어나 개울 건너 농로 끄트머리에 이르자,
산들머리가 나타난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진 2.8km, 다들 만만한 거리라 여긴다.
그렇게들 생각한다. 걸어보지 않고서는…
아홉봉우리를 지나 날머리에 이른 산객을 잡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산’이라고 할 것이다.
骨山九峰은 그만큼 짧지만 강하다. 더러는 설악 공룡능선의 축소판 같다고도 한다.
거칠고 날카롭지만 속살은 부드럽기에 쫄 필요는 없다.
초입부터 등로가 가팔라 발걸음이 둔중하다.
더딘 걸음으로 온전히 몸을 내맡긴다.
엔진이 좀 더 가열되면 제 페이스를 찾게 될 것이다.
쉼없이 걸어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 갈림길에 닿았다.
바닥에 코 박고 걷다간 1봉을 놓치기 십상이다.
1봉은 주등로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붙어야 하는 건너편 1봉이 부담스러웠던지,
몇몇은 포기하고 곧장 2봉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9봉의 시작 봉우리인 1봉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1봉(668m)에 올라 전망데크에 서니 ‘햇살밝은 마을’이 발 아래다.
저 너머 덕유산 주능선이 그려낸 하늘금도 1봉의 일품 조망이다.
1봉을 뒤로하고 돌무더기가 있는 2봉(720m)을 거쳐, 3봉(728m)을 지나,
팔각정이 있는 4봉(752m)까지 한달음에 내걸었다.
둔중하던 장딴지가 슬슬 骨山에 적응되고 있는지 가볍다. 그새 시간은 정오다. 팔각정 아래 자리를 폈다.
‘마의 구간’을 오르내리기 위해선 이쯤에서 연료 보충이 필요하다. 4봉을 내려서니 쉼터다. 나무벤치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서
곧장 5봉(742m)으로 올라 붙었다. 정상 천왕봉이 덮칠 듯 다가섰다.
다시 가파른 바위벼랑을 로프에 매달려 버벅대길 몇차례, 6봉(732m)이다.
로프와 계단이 유난히 많은 구봉산이다.
고가사다리 수준의 계단을 네 발로 기어오르다 지쳐 난간에 몸을 기대어
우러러 하늘을 본다. 시원한 골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난다.
힘 내라는 속삭임일게다.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나홀로 산행에서 산중오수가 습관된 탓이다. 정신줄을 부여잡고서 곧추선 철 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7봉(739m)이다.
7봉 역시 1봉처럼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나 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지만 어느 봉 하나 쉽게 허락치 않는다.
로프를 잡고서 7봉을 내려서면 목교(木橋)가 등장한다.
천길 벼랑을 이어놓은 아찔한 목교를 건너 사다리를 다 올라서면
우측으로 로프가 걸려 있는 된비알이 얼핏 보인다. 8봉 오름길이다.
8봉 역시 등로에서 비켜나 있어 무심히 걷다간 그냥 지나치기 쉽다.
8봉(780m)에서 건너다 본 9봉은 지금껏 지나온 봉우리들과는 덩치부터 다르다.
여덟 봉우리를 지나오며 이미 삭신이 파김치가 된 탓일까?
9봉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거대 방벽(防壁)처럼 느껴졌다.
기운이 쭉 빠지고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다. 8봉에서 다시 80m를 내려서니 돈내미재 갈림길이다.
돈내미재(700m)에서 해발 1,002m인 9봉까지 거리는 500m에 불과하나
고도 차이는 300m에 달한다. 이렇듯 오지게 가파르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천황암을 거쳐 곧장 원점으로 하산할 수 있다.
머뭇머뭇 하던 몇몇 산객들이 천황암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9봉의 위세에 지레 겁먹은 이들이 이용하는 탈출로인 모양이다.
저질체력이라 믿는 건 오로지 뚝심 뿐이다.
스스로에게 ‘화이팅’을 주문하며 마의 구간, 9봉 사면에 매달렸다.
끝간데 없는 가파른 계단에 가쁜 숨소리만 쌓여 가고,
거친 된비알은 ‘방심’을 노리며 ‘긴장’을 주문한다.
조망없이 까칠한 된비알 구간은 정말이지, 학을 떼게 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고 했다. 만고의 진리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제9봉, 천왕봉(1,002m)에 올라섰다. 구봉산 정상이다.
불끈 솟구친 암팡진 암봉들은 ‘햇살밝은 마을’을 호위하듯 도열해 있고
옹골진 주변 산세는 용담호와 어우러져 한 폭 그림으로 펼쳐졌다.
서쪽으로 북두봉과 운장봉이 손짓하고, 남쪽으로 덕유산 능선과
두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일망무제에 홀려 9봉 오름길의 쓴 맛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천왕봉을 뒤로하고 남쪽 능선을 따라 바랑재로 향한다.
바랑재에서 능선을 버리고 동남쪽 바랑골로 내려섰다.
바랑재에서 하산길, 높인 만큼 고도를 낮춰야 한다.
급사면 마사토가 얼어붙은 눈길만큼이나 미끄럽다는 사실은 진즉 알았지만
이곳 내리막길에서 다시한번 온 몸으로 실감했다.
마사토 비탈길이 끝나자, 계류 시작점까지 너덜길이 바통을 이었다.
봄 가뭄으로 계곡은 메말라 있어 세족의 기쁨은 누리지 못했다. “지끔 보담사 단풍 든 가을 구봉산이 기가 메키지라~
날머리 길모퉁이에서 오미자즙을 팔고 있는 동네 아낙의 구봉산 자랑이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게 맞나 보다.
독하게 오르내린 기억은 그새 싹 가시고 단풍 좋다는 가을에
다시한번 찾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