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애물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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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월 모일 모시,
뒷주머니에 넣어둔 널 깜빡 잊고 용을 쓰다가 무심코 일어서는데 이를 어쩌나,
변기 속에 널 빠뜨렸다.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이 어지럽다.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머리뼈를 깨쳐 내는 듯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겨우 정신 차려 건져올려 보니 오호, 스마트폰이여! 씻어보고 만져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한 팔을 베어 낸 듯 안타깝다.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 슬퍼함은 나의 생각하는 마음이 남과 달라서다.
너를 만나 한 몸 된지 여러날이 지난지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할까. 슬프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진정하여 오늘 여기에 네 품행과 내 회포를 총총히 적고자 한다.
자그마한 몸체에 특별한 재주를 가진 너는 핸드폰 중에도 으뜸이다.
신기함에 귀신도 혀를 내두르고 민첩하기는 백대의 협객이도다.
몇해 전, 너를 만나 손에 익히고 눈에 익혀 지금껏 짧지않은 시간을 함께하여 왔는데,
슬프도다. 스마트폰이여!
사용 부주의로 무수히 떨어뜨려 이곳저곳 상하게 했는데도 군소리 없이 제 역할을 다했으니
네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하지 아니한가.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누구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한 생전 너의 재주를 내 어찌 다시 바랄건가.
절묘한 네 재주가 눈에 삼삼하도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 함께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라, 스마트폰이여!~
……………………………………………………………………………………………………………
앞으로 어쩌면 ‘弔針文’에 버금가는 ‘弔스마트폰文’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스마트폰에 대한 애착은 무한대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온 세상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고들 말한다.
한술 더 떠 어떤 이는 인간 세상의 물건 가운데 가장 기발한 것이
스마트폰이라며 예찬하기도 한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가져다 준 일상의 변화는 실로 대단하다.
2009년 11월 말, 아이폰 3가 국내에 첫 출시됐다.
당시 아이폰 3의 선풍적 인기는 ‘삼성’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급히 대항마로 내놓은 것이 ‘옴니아’다. 그러나 ‘옴레기(옴니아 쓰레기)’란 오명만
뒤집어쓴 채 호된 뭇매를 맞았다. 정신이 번쩍 든 ‘삼성’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갤럭시’ 시리즈를 연이어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 판도를 바꿔 나갔다. 이후 사용자들은 하나 둘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 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이 70%를 넘어 부동의
세계 1위를 굳혔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이 4시간에 달할 정도로
스마트폰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공기만큼이나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이를테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스마트폰과 일심동체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스마트폰 천국이 되어버린 지금,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은
그만큼 편하고 즐거워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만은 않다.
그로인한 이런저런 폐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번개모임에 나갔을 때다. 열명이 참석했다.
모임을 주선한 친구가 불쑥 말을 꺼냈다. 각자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식탁 위로 올려 놓으란다.
너나없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주섬주섬 식탁 위로 올려 놓았다.
그러고보니 모인 열명 모두가 스마트폰이었다. 필자는 스마트폰 1세대다.
몇 해 전만해도 친구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무관심했었다.
몇몇이 신기해하며 호기심은 가졌지만 먼 나라 남의 물건처럼 대했다.
그러던 친구들이 언제부턴가 ‘카톡’을 주고받고, ‘카스’로 일상을 공유하고, ‘밴드’ 가입을
요청해오기도 했으며 ‘트위터’로 소통하고, ‘페북’을 화제 삼기도 했다.
“자고로 전화란 주고 받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건 아이들이나 쓰는 물건이지” 하던
친구들이 이젠 스마트폰 중독 수준에 이르렀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는 핸드폰을 거두어 식탁 가운데에 포개어 쌓았다.
각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 모임에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라며 누구든 먼저
스마트폰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이 그날 밥값을 몽땅 뒤집어 쓰는 걸로 정했다.
그렇게 잠시나마 스마트폰 공해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듯 ‘문명의 이기’로 대접받던 스마트폰이 경우에 따라서는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친구를 만나도,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자라목을 하고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다.
“과학기술이 인간 사이의 소통을 뛰어 넘을 그 날이 두렵다. 세상은 천치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예언이 가슴에 와닿는 요즘이다.
모월 모일 모시,
뒷주머니에 넣어둔 널 깜빡 잊고 용을 쓰다가 무심코 일어서는데 이를 어쩌나,
변기 속에 널 빠뜨렸다.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이 어지럽다.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머리뼈를 깨쳐 내는 듯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겨우 정신 차려 건져올려 보니 오호, 스마트폰이여! 씻어보고 만져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한 팔을 베어 낸 듯 안타깝다.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 슬퍼함은 나의 생각하는 마음이 남과 달라서다.
너를 만나 한 몸 된지 여러날이 지난지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할까. 슬프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진정하여 오늘 여기에 네 품행과 내 회포를 총총히 적고자 한다.
자그마한 몸체에 특별한 재주를 가진 너는 핸드폰 중에도 으뜸이다.
신기함에 귀신도 혀를 내두르고 민첩하기는 백대의 협객이도다.
몇해 전, 너를 만나 손에 익히고 눈에 익혀 지금껏 짧지않은 시간을 함께하여 왔는데,
슬프도다. 스마트폰이여!
사용 부주의로 무수히 떨어뜨려 이곳저곳 상하게 했는데도 군소리 없이 제 역할을 다했으니
네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하지 아니한가.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누구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한 생전 너의 재주를 내 어찌 다시 바랄건가.
절묘한 네 재주가 눈에 삼삼하도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 함께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라, 스마트폰이여!~
……………………………………………………………………………………………………………
앞으로 어쩌면 ‘弔針文’에 버금가는 ‘弔스마트폰文’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스마트폰에 대한 애착은 무한대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온 세상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고들 말한다.
한술 더 떠 어떤 이는 인간 세상의 물건 가운데 가장 기발한 것이
스마트폰이라며 예찬하기도 한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가져다 준 일상의 변화는 실로 대단하다.
2009년 11월 말, 아이폰 3가 국내에 첫 출시됐다.
당시 아이폰 3의 선풍적 인기는 ‘삼성’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급히 대항마로 내놓은 것이 ‘옴니아’다. 그러나 ‘옴레기(옴니아 쓰레기)’란 오명만
뒤집어쓴 채 호된 뭇매를 맞았다. 정신이 번쩍 든 ‘삼성’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갤럭시’ 시리즈를 연이어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 판도를 바꿔 나갔다. 이후 사용자들은 하나 둘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 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이 70%를 넘어 부동의
세계 1위를 굳혔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이 4시간에 달할 정도로
스마트폰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공기만큼이나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이를테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스마트폰과 일심동체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스마트폰 천국이 되어버린 지금,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은
그만큼 편하고 즐거워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만은 않다.
그로인한 이런저런 폐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번개모임에 나갔을 때다. 열명이 참석했다.
모임을 주선한 친구가 불쑥 말을 꺼냈다. 각자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식탁 위로 올려 놓으란다.
너나없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주섬주섬 식탁 위로 올려 놓았다.
그러고보니 모인 열명 모두가 스마트폰이었다. 필자는 스마트폰 1세대다.
몇 해 전만해도 친구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무관심했었다.
몇몇이 신기해하며 호기심은 가졌지만 먼 나라 남의 물건처럼 대했다.
그러던 친구들이 언제부턴가 ‘카톡’을 주고받고, ‘카스’로 일상을 공유하고, ‘밴드’ 가입을
요청해오기도 했으며 ‘트위터’로 소통하고, ‘페북’을 화제 삼기도 했다.
“자고로 전화란 주고 받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건 아이들이나 쓰는 물건이지” 하던
친구들이 이젠 스마트폰 중독 수준에 이르렀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는 핸드폰을 거두어 식탁 가운데에 포개어 쌓았다.
각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 모임에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라며 누구든 먼저
스마트폰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이 그날 밥값을 몽땅 뒤집어 쓰는 걸로 정했다.
그렇게 잠시나마 스마트폰 공해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듯 ‘문명의 이기’로 대접받던 스마트폰이 경우에 따라서는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친구를 만나도,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자라목을 하고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다.
“과학기술이 인간 사이의 소통을 뛰어 넘을 그 날이 두렵다. 세상은 천치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예언이 가슴에 와닿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