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거철만 되면 잠자던 분노가 일어 도대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그것은 아마도 스스로 느끼는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작게는 지방선거에서 크게는 대선에 이르기까지 난 도대체 불편하다. 사람들은 외친다. 자신은 잘 할 거다.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 자신만은 분명히 바꿀 거다. 자신은 깨끗한 정치, 바른 정치, 세상에 없는 이상적인 정치를 할 거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댄다. 정말이지 신물이 나고 토악질이 난다.

나도 청소년시절 앞에 설 일이 많았다. 아마도 큰 키 때문일 확률이 거의 100%였지만, 사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앞에 나가서 확신할 수 없는 공약을 뇌까리는 것이 너무나 싫어서 절대로 안 한다고 도망 다녔었다. 물론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고 나 하나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난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을 것이고 기필코 이루어 냈을 것이다. 아마도 목숨 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짜여 진 각본 때문에 수차례 수장(首長)의 노릇을 했지만 난 불편한 심기를 말했고,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명히 말했었다. 어린것이 어찌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각설하고 난 도대체 허울 좋은 유세를 듣지 않는다. 그런 시간낭비, 금전낭비, 에너지 낭비 같은 일련의 부질없는 일들에 늘 눈살이 찌푸려진다. 내 생각 같아서는 딱 내 생각만 한다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해서 잘 정리 한 리포트를 나눠주는 것으로 선거를 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국민은 그 자료를 통해 대권주자들의 현 정치를 바라보는 안목과 미래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받고, 그 자료를 토대로 지극히 객관적이고 집단주의적 주관적 안목으로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속에는 반드시 그 만의 철학이 담겨져 있어야 할 것이며 자신의 삶의 애환이 녹아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정치를 향한 자기 소개서 같은 것이랄까!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선동하고, 소리치고, 군중들을 집단 심리로 몰아가고, 흑색선전에, 비방에, 인신공격과 같은 부조리한 일련의 일들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저 딱 나 같으면, 그저 내 생각이 그렇다. 국민들도 나라의 일을 다 모르고 나라는 고사하고 지방의 정책과 방향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그 누구의 말을 듣는다고 해도 그 말이 현실적이며 실현가능한 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위정자들은 국민을 자신들이 다스려야 할 백성으로 보고, 백성 된 자는 위정자들이 그저 알아서 잘 해 주기만을 입 벌리고 쳐다보는 꼴이 되는 것이다.

국민이 뭘 제대로 알아야 위정자들이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지 요구하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소위 말하는 투명한 정치라는 것이 기껏해야 돈 안주고, 돈 안 받는 정도의 의미만 내포한다면 정말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한 가정이나, 한 집단이나 한 사회나, 한 국가가 잘 되려면 반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굳이 독일의 정치를 예로 들지 않더라고 국가는 여당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국민 모두가 나서서 국가의 정책을 분석하고 그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면 야당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어 그들과 협력하고 그들과 함께,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머리를 맞댄다면 분명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나의 이러한 요구가 정말 뜬 구름 잡는 공허한 소리일까? 정말로 실현 불가능한 어처구니없는 요구일까?

한 가정이 건강하려면 가장이 가족 구성원 모두의 생각과 마음을 수렴하고, 의논하고, 잘 다독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회집단이나 국가라는 형태는 그 보다는 규모도 크고 산재해 있는 논제들도 비교가 안 된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정치는 권력을 나누고 누리는 곳이 아니라 늘 입버릇처럼 외치듯 맏이 일꾼들이다. 그런데 그 일꾼이 권력만 잡으면 군주로 군림하고, 권력을 남용하고, 듣는 귀는 막고, 자신의 욕심만 챙기고, 폭력을 행사한다.

위정자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권력에 희열을 느끼며 다시 누리고 싶은 욕망만을 키운다. 그래서 보여주는 행정, 나타나는 행사에만 치중한다. 이제는 정말 그만들 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국민들도 바보가 아니다. 위정자들의 속을 다 들여다 볼 수 있을 만큼 지혜롭고 똑똑하다. 이제 더는 자신들을 속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