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거의 일년만에 들어와 칼럼게시판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뿌듯하네요. 작년 마지막 칼럼을 보니 연대 뒤편에 있는 봉원사 얘기인데 지난 주에도
휴가도 못가고 일에 파묻혀 살다 밤에 봉원사에 들렀다 아래 있는 찜질방에서 찜질을 하고
다음날 다시 봉원사에 갔더니 마침 사찰마당의 연꽃들이 활짝 큰 미소를 보이더군요. 전날 밤 이곳에 왔을 때는 꼭 닫고 있던 봉오리를 이른 아침부터 열어 신비한 화사함으로 마음 설레게 합니다.
연꽃 꽃말을 찾아보니 <소원해진 사랑>이라는데 맞는가요. 이참에 칼럼독자님들과 소원해진 관계를 되돌리고 싶습니다.
전날 밤 딸과 이곳에 왔을 때는 텅빈 사찰에 아무도 없고 반달과 꼭 다문 연꽃들 그리고 우리 뿐이었습니다.익숙치 않은 불교의 조형물들과 고요함이 빚어내는 신비한 기운이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는 터라 기도 드리고 약수물 한모금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홉마리 용의 조형물이
보였습니다. 험상궂은 모습으로 금방 달려들어 할퀼 듯 여의주를 쥔 손모양이 무섭기도 했으나 쉽게 만나기 어려운 용조형물이 신기해 세심하게 만져보았습니다. 용이 나쁜 존재로 묘사되는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신성한 존재로 묘사되는 영물이잖습니까. 나름 고유한 에너지가 느껴지며 용과 교감이 되더군요.
마당을 살금살금 걸으며 구경하다 아무도 없는 뒤편 계단을 올라 나타난 기와집 현판을 보니
<滿月殿>이라는 글씨가 보입니다. 멋진 이름이네 하고 돌아서 사찰 아래를 내려다려니 놀랍게도 앞에 있는 나무에 달이 걸려 그득한 빛을 비추는 광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하 그래서 만월전이구나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정말 달이 가득한 만월전이구나. 이름 한번 제대로 지었는걸.
사진 가운데 보이는 나무 가지 위로 달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신비한 하룻밤이 그동안 폭우와 더위속에서 묵묵히 일한 보상이구나 싶더군요. 행복한 마음으로
달처럼 환해진 표정으로 마당을 내려오는데 조용하던 사찰 마당이 어수선한 기운이 느껴지고 한 아저씨가 급하게 다가와 밤에는 출입금지인데 어디까지 올라간 것이냐며 보안벨을 울려 침입자를 찾고 있노라고 하더군요.
정황상 벨소리를 울리게한 범인이 우리임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목소리로 처음인거 같은데 밤에는 사찰 출입이 금지되있다며 모르고 한 짓이니 어쩔 수 없다며 부처님처럼 자애로운 목소리로 소란의 주범인 우리를 자비롭게 놓아주었습니다. 덕분에 봉원사분들에게는 죄송했지만 짧은시간 멋진 휴가를 보냈습니다. 다음에 또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아쉽지만 특별한 한밤의 소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