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의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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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과 특이함, 이 두가지와 말로 구멍가게 갖는 최대의 장점이다.
벌써 비즈니스를 시작한지 15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면서 때로는 모든 결정을 내가 해야한다는 일처럼 부담가면서 신나는 일도 없다. 내가 세상을 움직이지는 않지만, 대응 방안을 내가 만들고 그 중에서 내가 선택하고, 내가 추진한다. 때로는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내가 최소한 하루정도의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모든 것을 내가 혼자서 정하는 만큼 오류의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흥분해서 결정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우울한 기분에 결정하기도 한다. 흥분했을 때는 모든 것이 좋아보기지만, 우울할 때는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아 그냥 이대로 무너져 내릴 것같은 기분에서 결정을 내린다. 이럴 때는 생각의 폭이 평상심을 가질 때보다 좁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 지 원인을 다양하게 보기보다는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자체에 기분이 좋고 나쁘고 하는 데, 그 상태에서 곧바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선다. 일단 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나서 돌이켜 보면 더 좋은 대안이나 해결책을 보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항상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결정을 빠르게 해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서두르면 내가 고려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적어진다.
일예로 맨발신발의 오프라인숍에 사용할 ‘홍보물’을 제작할 때가 아마 적절할 것이다. 맨발신발을 국내에 처음 판매하면서 몇 개의 오프라인 매장에 홍보물을 설치하였다. A 매장에는 커다란 스탠드에 사진을 붙이고 신발을 같이 전시하는 것으로 매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고, B 매장에 준비했던 것은 마른나무 가지에 신발을 매달아 놓아 가벼움을 바로 볼 수있으면서 바닥에서는 모래.자갈.낙엽들을 깔아놓아 신발을 신었을 때 정말로 맨발과 같은 느낌을 줄 수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문제가 많았다. 우선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밑에 뿌려놓은 낙엽들이 실내에 자꾸 흐트러져서 어지럽혔다. 게다가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다지 세련되지 못했다. 그 것을 인공적인 대나무로 바꾸어 보기도 하였다. 인체 실물크기의 사진을 위주로 한 POP로 만들어볼 까도 했다. 결국은 제품의 특성을 설명하는 정보위주의 사진 3개를 보여주는 조그만 POP로 대체하였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벼움을 강조하는 퍼포먼스적인 디자인에서 ‘슬로우레져(Slow Leisure)’를 위한 신발이라는 새로운 마케팅컨셉트도 추가하였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약간의 디자인을 바꿀 수는 있었겠지만, 나처럼 아예 오프라인 매장의 마케팅 컨셉트 자체까지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강점은 ‘특이함’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 사장이 자기만의 강점을 가지지 않은 회사는 없다. 예를 들면 나같은 경우는 무역, 그 것도 해외 수출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었다.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하였고, 무역진흥공사에 있었고, 파나마무역관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으면서 수많은 회사들을 만났고, 그 회사들이 수출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조합해보았다. 그리고 파나마에 있으면서 첫 수출품목으로 자동차부품을 선택했고, 파나마와 중남미의 자동차부품 수입상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1년에 걸친 사업준비 과정에서 내가 갖는 최대의 강점은 스페인어를 할 수있었고, 중남미에 대한 지식기반이 있고, 나의 인맥이 수출분야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2년은 중남미 수출로 사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자동차 부품의 국내 구매에서 부족했던 나의 취약점 때문에 자동차부품이 지지부진해짐에 따라 한동안 나의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그리고 4-5년은 정말 백화점만큼 많은 품목들을 다루어보았다. 99년 이후 유럽으로의 발가락양말이 수출의 주력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음에 따라 집중할 아이템이 생겼다. 그리고 발가락양말에 관한 새로운 시장을 독창적으로 개척하였다. 감히 말하건대 한 때는 유럽에서 Feelmax발가락은 최고였다. 처음에는 나의 개인적 특성이, 99년이후는 발가락양말이, 2009년 이후는 맨발신발이 내 사업의 기반이 되었다. 이 중에서 발가락양말과 맨발신발은 그야말로 세계시장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제품이었다.
필맥스 발가락양말은 색상의 선명함, 부드러움을 특징으로 하면서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유럽시장을 공략했고, 필맥스 맨발신발은 ‘신발의 과학화’를 핑계로 무언가를 자꾸만 첨가하던 신발업계의 추세를 거꾸로 하고 가장 자연적이면서 과학의 최소화를 지향한 신발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대단히 특이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필맥스’ 만이 할 수있었던 것이 아니다. 필맥스보다 더 특이한 제품을 내놓은 구멍가게들이 세상에는 무지하게 많다. 그보다도 그 정도의 특성이 없었다면 구멍가게는 생존전략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구멍가게의 생존전략이 ‘가격’을 무기로 한 경우는 생존력이 길지 않다. 남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운영의 효율성을 내세운 대기업이나, 아니면 자원.저렴한 인력이 있는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체일 뿐이다. 특이함과 속도감, 이 두가지야말로 구멍가게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