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질보다 양이다



얼마전에 거래처의 사장님과 산에 가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데, 자신이 큰 회사에 다니면서 편의를 봐주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전혀 뜻밖의 사람들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더라는 것이다.



나 역시 최근에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내 성격이 그리 내성적은 아니지만 한동안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뜸해진 적이 있다. 대략 2000-2008년 사이었다. 우선 처음에는 양말의 수출이 활성화되었을 때다. 주 거래선이 독일.핀란드가 유럽이라 시간차가 우리보다 7-9시간 늦는다. 이 때는 아침에 출근하여 12시까지 사무실에서 할 업무를 끝낸다. 그 다음부터는 4-5시까지는 시간이 비게 된다. 그런데 이 시간이 참 애매하다. 업무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친밀감을 서로 나누기는 어려운 시간이다. 주로 하는 일이 수출이라 국내에서는 주로 해야할 일이 구매나 신제품 개발이다. 처음에는 정말 여기저기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래서 남들이 만들지 않은 여러 가지 양말을 만들었다. 문제는 한국이라는 데가 그렇게 넓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나의 관심범위는 매우 좁았다. 그냥 자나깨나 ‘필맥스양말’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만나는 사람은 기존의 거래선, 새로운 섬유를 만드는 회사, 해외 바이어가 거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2008년 말부터 ‘신발’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들어서야 했다. 막상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 내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우선은 그동안 내가 배워온 대로 ‘2008년 부산신발박람회’부터 시작하였다. 일단 신발박람회에서 ‘맨발신발’의 시장성을 확인하고, 여러 사람들의 명함을 받았다. 하지만 그 때는 본격적인 마케팅을 할 만한 입장은 아니었다. 그 때 전시한 것은 그야말로 프로토타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신발시장의 현황, 주요 유통경로, 주요 판매업체등은 팩과 자료를 통해 알 수있었지만, 실행하는 데는 역시 사람이 있어야 했다. 거기서부터 막혔다. 대학을 졸업하고 십수년동안 수출하고 관련된 일만하다보니 내수와 관련된 상식은 거의 바닥수준이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발의 ‘ㅅ’자만 들어가도 만나려고했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다.



바라바시가 지은 ‘링크’는 이런 사람들간의 네트워크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깊게 느낀 점은 사람들과의 네트워크에서도 어떤 네트워크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지만, 어떤 것은 그 구성원이 적고 약하다는 것이다. 그 것은 왜 일까? 그 네트워크의 중심선상에 있는 사람이 다른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사람보다 더 높은 ‘적합성(fitness)’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적합성이란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친구를 잘 만드는 사람의 능력이 될 수도 있고, 다른 기업과 비교하여 고객을 잘 끌어들이고 유지하는 기업의 능력이 될 수도 있다. 쉽게 예를 든다면 ’구글‘’네이버‘같은 포털 사이트를 들 수있다. 왜 이런 포탈사이트는 다른 모든 사이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가? 그 것은 구글이나 네이버가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더 만나고 싶어하게 해야 한다. 그 것은 내가 비록 많은 사람을 알지 못하더라도 기회가 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하고,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몇 개쯤은 나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럼 서로 다른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승수효과를 올릴 수있다. 그렇게 하기에 가장 좋은 예가 아마도 인터넷의 카페를 통한 모임이다. 인터넷 모임은 대개 실명보다 ID라는 인터넷 이름으로 통한다. 그래서 각 회원들끼리 서로 실생활에서 무엇을 하는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게는 수백명에서 수만명까지 이르는 카페에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할 때, 다른 회원들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나같은 경우도 화장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때 다른 회원이 마침 그 분야에 있어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나의 주 사업품목은 ‘발가락양말’이었다. 양말은 값이 비싸지 않기 때문에 ‘질’도 중요하지만, ‘양’이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품질 좋은 것을 한두개 만들어서는 팔 수가 없다. 일단 수량이 많아야지 품질을 개선하거나 신제품을 만들어 볼 여지가 생기는 제품이다. 그래서 그런 지 나의 생각은 항상 ‘질보다 양’이다. 사람들간의 관계도 아마 그래서 내가 ‘질보다 양’을 중시하게 되었는 지도 모른다. 물론 질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업을 하려면 역시 질보다는 양위주로 인맥형성에 힘을 쏟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질과 양을 겸비하면 더욱 좋겠지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양을 선택하여 폭넓게 많은 사람위주로 가는 게 좋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로 1) 현대는 정보의 사회로 새로이 알게된 정보를 확인할 필요성이 늘어나고, 2) 때로는 한마디의 말 실수로 친밀하던 인간관계가 흐트러질 수있고, 3) 사업의 확장이나 변경에 따라서 알아야 할 사람들이 수시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의외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악의를 가진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 아무리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험악한 뉴스를 틀어대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이다. 인맥네트워크라는 것이 의도적으로 만들었든, 아니든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 조건없이 남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에게 대가를 원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 ‘어, 그래요 내가 아는 사람들중에 이런 사람이 있는 데’하면서 소개시켜 주곤한다.



평소에 알던 사람으로부터는 비즈니스에 관한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비즈니스에서 도움을 받을려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금과 정보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돈을 빌려달라’기에는 무척 껄그럽다. 빌려 준다하여도 사업에 충분할 정도로 빌려주기는 어렵고, 또한 기간도 짧다. 정보의 측면에서도 그 친구의 인맥과 나의 인맥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소수의 마음만 맞는 사람을 위주로 만나는 것은 사업가로서 적정한 인맥관리는 아니다. 많이 만나야 한다. 그래야 우연히 좋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