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는 나보다 많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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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나보다 많이 안다.
장사를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만나야 한다. 나같은 경우는 요즘들어 내수 영업을 시작하다보니 사람만나기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말로는 사람이 사업의 처음과 끝이라고 했지만, 실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뛰어들어보니 모든 영업의 처음과 끝이 사람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두사람은 꼭 만난다. 사업상 만나다 보니 매번의 만남을 협상을 하듯이 만난다. 설령 당장의 영업과 관계가 없더라도 언젠가는 무언가로 연결될 수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주도권을 쥐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주로 상대에게 넘겨주고 난 그 보충적인 역할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해서 불편함을 받은 적은 없다. 내가 사람을 만나는 전제로는 ‘나의 모든 협상상대는 나보다 항상 많이 안다’는 것이다. 그 것은 내가 남과 대화할 때도 항상 염두에 두는 말이기도 하다. 말 재주도 별로 없지만 할 얘깃거리도 별로 없는 나로서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비즈니스로 사람을 만날 때는 더욱 그렇고, 협상을 할 때는 더 더욱 그렇다.
내가 보아도 난 훌륭한 협상가는 아니다. 게다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또한 남의 속마음을 읽는데도 서투르다. 그렇다고 내 속마음을 잘 감추는 것이 아니다. 나같은 사람은 한두마디 하면 상대는 내 속을 속속들이 알아버린다. 포커페이스에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얼굴에 다 표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과 상담을 하거나 계약을 할 때도 주로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편이다. 예를 들면 계약서 문구도 상대가 작성하게 한다. 그러면 그 문구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내가 생각지도 못한 조항이 들어가고, 나는 다시 그 계약내용을 돌아보게 된다.
주도권을 넘겨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편한 구석이 많다. 상대가 많은 고민을 하는 반면에 난 거기에다 약간의 내 생각만 넣으면 된다. 아직까지는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계약이 깨지는 적은 없었다. 우선 계약규모와 상관없이 계약서를 작성한 사람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작성한 사람으로서는 별 불만이 있을 수없고, 다만 계약서에 자기의 바람을 충분히 넣었으니 나에게 얼마만큼을 양보해야 할 지만을 고민하면 되기 때문이다.
2000년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독일.핀란드바이어와 내가 브랜드를 공동으로 통일하자고 했을 때에도 그런 식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물론 사전에 이메일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협의가 이루어졌지만, 막상 종이위에 씌여진 계약서를 놓고 또 한참의 갑론을박이 있었다. 헬싱키 변호사 사무실에서 3일을 아침저녁으로 토론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만족하면 계약을 했다.
그 것은 아마 나와 핀란드.독일 파트너의 상담성향이 ‘이익의 극대화’이기 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피해의 최소화’라는 데 비슷한 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밑바탕에는 ‘내가 아무리 날고 뛰어도 나보다 현실적인 경험이 많은 상대를 이기기 어려울뿐더러,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게다가 우리는 이 관계를 우리의 다음세대까지 넘겨주자는 장기적인 목표가 있어서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있었다.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을 보면 수많은 게임이론이 있는 데, 현재까지 가장 안정적이고 승률이 가장 높은 게임이론은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TFT)’ 게임이다. 이 전략은 다음과 같은 아주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다. 1) 협조 전략을 사용하면서 게임을 시작한다. 2) 게임이 반복되는 경우 상대방 전략의 이전 전략을 그대로 따라한다. 즉 상대방이 방금 전회에 ‘협조’를 했으면 자신도 이번 회에 협조를 하고, 상대방이 전회에 ‘배신’을 했으면 자신도 이번 회에 배신을 한다. 다시말해 TFT전략은 선하게 게임을 시작한 후, 상대방의 호의에는 호의로, 악의에는 악의로 대응한다는 ‘호혜성의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즉 조건부 협조 전략인 셈이다. 상대가 협조적으로 나오기만 하면 이 전략은 영원히 협조적으로 나올 용의가 있지만, 상대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협조하길 그만두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한두번 보고 말 사람사이에서는 적용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한번 볼 사람에게 굳이 손해를 보면서 호의를 베풀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사를 오래하자면 소비자든, 구매선이든, 매출처든 항상 잘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돌아올 다음 번의 반응은 부정적일 테니까.
내가 신발이나 양말로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확률이 매우 높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넓은 것 같지만, 양말업계나 신발업계로 줄인다면 사실 부처님 손바닥만큼이나 좁은 게 한국의 업계 사정이다. 그러니 내가 누구와 상담해도, 그가 조금이라도 업계에서의 평판에 신경을 쓴다면 그 사람이 나에게 잘 못해줄 이유가 별로 없다. 따라서 신발업계, 내수 판매의 초자인 난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이 나보다 많이 알고 있고, 나에게 잘 해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인간관계나 거래관계는 이런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일단 익명성이 부여되는 데다가, 서로간의 관계가 두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그야말로 ‘너’ 대 ‘나’로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한 댓글에는 무척이나 비이성적이거나, 비논리적인 게 많다. 대표적으로 연예인들이 악플에 마음을 많이 상한다. 아직 인터넷을 통한 지속적 상거래 관계나 협상에 대하여 딱히나 마음에 드는 글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인터넷은 통한 인간관계과 상거래는 여전히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