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장을 자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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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람회에 참가하는 게 무척 좋다. 박람회장에 들어설 때는 마치 책방을 들어서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박람회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게 91년도 코트라 전시부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부터이다. 그 때부터 해외 전시회를 맡게 되었는 데,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내가 테헤란국제박람회를 맡으니 이란-이라크전쟁이 나고, 참가업체들이 많이 모이던 박람회였는 데 갑자기 협회지원이 줄어들어 업체 모임에 어려움을 겪고, 등등…… 그렇게 수많은 박람회를 망가뜨리면서도 ‘박람회와 마케팅’이라는 책을 내었다.
해외에서 박람회를 주최하기도 하였다. 파나마무역관에 있을 때였다. 박람회 개최는 다가오는 데, 한국관의 설치를 맡았던 업체에서는 개최 전날 밤까지도 ‘한국관’ 장치는 시작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파나마대통령과 대사등 주요 VIP들이 방문하기로 되어있었는 데 텅비어있는 한국관을 보여주게 생겼다. 둘러보니까 중국관, 대만관,미국관등도 마찬가지 사정이었다. 그렇다고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항의해봐야 소용이 있을 것같지도 않았다. 현지 장치업체 노무자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청소를 해주며, ‘한국관’도 신경써달라고 애원 반, 협박 반 하면서 커피도 사주었다. 그러자 자기네들도 미안했던 지, 자기네들이 급하다고 생각했던 파나마관을 마치고는 우선적으로 한국관부터 설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온 직원들이 달라붙고 나는 쓰레기를 치우면서 설계도를 보고 고칠 것은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수정하고, 장치하다보니까 새벽녘에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결국 대만관이나 중국관은 그날 오후에나 마쳤고, 파나마대통령의 한국관 방문은 무사히 마쳤다.
내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주최자로서가 아니라 참가기업으로 미국과 일본의 박람회에 참가하였다. 그러면서 박람회의 진면목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 박람회가 참가업체에 주는 가능성도 보았고, 실패도 보았다. 우선 박람회장이 주는 분위기는 ‘자유’와 ‘가능성’이라고 요약해 볼 수있다. 박람회장은 비슷한 업종의 경쟁자들이 모여서 자신의 생각과 제품을 남에게 알려주는 ‘광장’과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서로 댓거리를 놓으면서 싸우거나, 경쟁자를 견제해야 할 것 같은데 실상 부스를 가지고 참가하면 오히려 반대이다. 서로의 제품을 비교하기도 하고, 교환하기도 한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원부자재를 볼 수도 있고, 내 제품에 대한 단점과 장점을 지적해주는 경쟁자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신문에 박람회에 대한 기사가 나면 자세히 보는 편이다. 나는 항상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게는 될수록이면 많은 박람회에 참가하거나, 최소한 될수록이면 자주 전시장을 찾아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보통 박람회의 주기능을 정보 수집기능, 판매기능, 커뮤니케이션기능으로 나눈다. 인터넷은 단지 정보만을 제공한다. 하지만 오프라인의 전통적인 박람회는 제품에 대한 정보, 시장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소비자, 판매자, 제조자가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제품과 시장에 대한 상호 의견 교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제품에 대한 수정과 재수정을 하면서 직접 주문을 받을 수 있는 판매기능도 하고 있다.
박람회에 참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잠재적 구매자와 대면접촉을 통하여 제품을 직접제시함으로써 수주를 받아 기업의 수익을 올리려는 것이다. 실제로 박람회가 끝난 후에 성과 분석을 하면 투입대 산출의 비가 매우 높다. 이와 같은 종래의 참가 목적의 중요성은 인정되지만 박람회가 상품정보 시장으로서의 역할이 커져감에 따라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하여 참가하는 업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박람회에서는 다른 방법보다도 사람들이 반응을 빠르게 감지할 수있기 때문에 특히 유동적인 시장 환경에 민감해지기 위하여 박람회 참가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제는 경쟁력이 과거와는 달리 제품의 질이나 가격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의 동향에 관한 정보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더구나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로 기술이 발전되고 소비자의 욕구가 변덕스러울 속도로 급변하는 현대의 시장에서는 정보야말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면서 존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경쟁국.경쟁업체 및 경쟁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남보다 먼저 파악하지 않는다면 하나로 통합되는 세계 시장과 기업이 뿌리를 두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경쟁에 이기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다.
미국과 독일의 마케팅 조사업체의 조사에 의하면 박람회가 가장 효율성이 높은 마케팅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한 사람의 세일즈맨이 10개의 업체를 만나기 위하여 소요되는 비용으로, 박람회 참가한다면 30개 이상의 신규업체를 만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세일즈맨은 보통 자신이 기왕에 알고 있는 업체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경향이 있지만, 박람회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바이어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나의 부스로 들어와서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려고 한다. 나는 이 것을 ‘의도된 우연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의도된 우연성’이 참가업체에는 상당히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우선 전시장에서는 비교적 참가업체나 참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져 있다. 평소라면 잘 말하지 않을 만한 기술상의 문제들도 서로 거리낌없이 토론을 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의 제품이 무엇을 잘 만들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 지를 알 수있다. 박람회장을 방문하는 사람은 참가하는 사람만큼이나 절실하다. 남들보다 좋은 제품을 찾아내서 더 빨리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사는 사람은 파는 사람보다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구경오는 사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면서 박람회장에 오기 때문이다. 박람회는 ‘좋은 제품과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필연성’과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제품과 파트너를 알게 되는 우연성’이 겹치는 곳이다.
이처럼 박람회장은 현장에서 주문을 받는 목적도 있지만, 자사 제품에 대한 시장성을 판단하기에도 무척 좋은 곳이다. 특히 박람회에 대한 오해중의 하나가 나가면 꼭 대박을 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우선 박람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서로 알고 있는 경우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문하고, 기왕에 주고받았던 내용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사전에 약속을 하고 실제품과 비교하기 위하여 전시장을 방문한다. 이런 경우는 현장에서 상당한 규모의 오더가 확정되는 일이 많다. 그게 사람들에게 박람회의 환상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이미 사전에 길을 닦아놓고, 박람회장에서 개통식을 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또 하나의 환상은 미국 박람회이다. 미국의 박람회는 거의 지역적이다. 물론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몇몇개의 세계적인 박람회도 있지만, 대부분은 도매상들이 라스베가스에 놀러도 오면서 장사도 겸해서 오는 것이 라스베가스의 박람회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주문을 하면 신용카드로 몇백불어치하면 많이 하는 것이다. 뉴욕에서 하는 박람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소량 주문을 몇 년동안 받다보면 그게 커지고 소문이 나서 미국시장에 안착을 하게 된다.
박람회의 가장 큰 잇점은 뭐니뭐니해도 더 많은 바이어들을 만날 수있다는 점이다. 박람회장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하루에 수십명의 바이어들이 알아서 찾아오니 이보다 더 좋은 마케팅 수단이 없다. 박람회장에만 가면 새롭고 뛰어난 제품을 하루에도 수십개는 볼 수있다. 그게 다 내 장사의 아이디어이다.
팔기 위해서든, 사기 위해서든 박람회장은 될수록이면 자주 찾아가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