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긍정주의가 전부는 아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사진 : http://blog.sk.com/403
바버라 에렌라이크가 쓴 ‘긍정을 배신’을 읽었다.
이건 ‘상식의 배신’이야, 이렇게 좋은 단어에 부정적 단어가 붙을 수있다니.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의미에 읽던 책을 잠시 미루어 두고 이 책부터 읽었다. 이 책을 출판한 ‘부키’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bookiemb)에 들어가니 ‘긍정성 테스트’가 있길 래 해보았더니, ‘밝고 긍정적인 당신은 ‘긍정의 배신’을 당할 확률이 높다’로 나왔다. 그래, 내가 긍정이란 놈한테 배신당할 수있다는 말이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우선 놈을 파악해봐야 겠구만.
내가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처음 생각난 것은 바로 ‘시크릿의 배신’이었다.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된다는 주문을 끊임없이 외우게 하는, 하지만 그 것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실행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없었던 황당한 책이었다. 지하철에서 성경책을 읽는 사람들을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이다. 목사도 아니고 어디가서 설교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마치 외울 듯이 성경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주여 믿습니다. 저에게 복을 주소서’하는 게 또한 황당해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시크릿‘과 초대형 교회의 목사들에 대하여 비판을 했을 때, 절대 공감하였다.
‘긍정의 배신’은 ‘왜 이 시대에 유독 긍정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인터넷에서 ‘코칭의 역사’를 찾아보면 코칭업이 1990년대에 급성장한 이유가 평생직장의 상실‘이라고 나와있다. …… 그 것이 심리통제를 위한 대규모 실험’이라고 한다. 세상은 불안하고, 믿고 의지할 만한 것도 결국은 자신 뿐일 때, 사람들은 자신을 잃어버릴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기를 쓰고 ‘나는 할 수있어, 정말이야,~~’라고 외쳐댄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같은 데, 그럴 방법조차도 모를 때 사람들은 긍정에 대한 책을 읽고, 텔레비전앞에 앉아 마치 악세사리를 쇼핑몰에서 구매하듯 온라인으로 송금을 하면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아멘’을 되풀이한다. 나도 그럴 수있으면 그러고 싶다. 하지만 ‘매일 매일 생겨나는 일, 나로하여금 세속적인 부담을 주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데, 그럴 수는 없다.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아질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일이 항상 잘 풀려가지는 않는다.
내가 읽은 ‘자기계발, 긍정마인드, 동기유발’에 대한 책들도 꽤 된다. 의식적으로 그런 책들을 가끔 읽는다. 나도 웃으면서 즐겁게 살고 싶으니까.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지치지 않도록 나를 채찍질하기 위함이다. 바버라가 좀 비꼬는 투로 말했지만, “문제를 초래하는 사람들은 자기 최면에 능하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유능한 세일즈맨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긍정이란 ‘잘 살펴보고 시작하고, 일단 시작하면 지치지 않고 진행하되, 아니다 싶으면 적당하게 접을 수 있는’게 좋은 긍정이다. 이게 꼭 “주의깊은 현실주의”와 같은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긍적의 마인드가 역효과를 내는 곳도 많다. 세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게하고, 자신만 잘하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잘 풀려갈 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을 갖게 한다.
이제까지의 세상은 그래도 희망적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세상은 점차 축소되어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오히려 희망보다는 불안이 세상을 덮여씌우고 있는 마당에, 사람들은 더 긍정마인드를 좋아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장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 그런데도 ‘나는 할 수있어!, 불가능이란 없어!’라고 외친다고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업은 끊임없이 터지는 새로운 일에 ‘ 떻게 해야지?’하고 걱정과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야 한다. 이럴 때 바바라 에렌라이크가 쓴 것처럼 긍정마인드는 “구명구라도 되는 듯 여기지만, 긍정적인 ‘생각통제’노력은 잠재적으로 판단을 가로막고, 지극히 중요한 정보로부터 우리는 분리시키는 치명적인 부담이 되었다. 공포심과 부정적인 생각을 조심해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그 외부 세계하는 것이 ‘부정적인’사람들 만족시키는 나쁜 뉴스를 포함하고 있다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긴장을 늦추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점이다. 주의깊은 현실주의는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
사실 나 자신도 어느 누구보다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나의 미래는 찬란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가능한 한 세상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남들이 나를 보면 언제나 ‘어유, 얼굴좋으시네, 장사가 잘되나봐요’하곤 한다. 그런데 막상 돌아보면 잘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형, 왜이래, 위장병이라도 있어?’하면, ‘응 맞아, 요즘 왠지 소화가 잘 안되!’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하고 잠을 설친다. 잘될때도 더 잘되어야하는데 걱정하고, 안될때는 어째서 안되지를 고민한다. 그러니 위산이 너무 많이 흘러나오고, 소화가 안되는 게 당연하다. 그게 어쩌면 ‘그래 왠만하면 잘되겠지!’하면서 스스로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건들을 미리 상상하게 하고, 그에 대한 대처방안도 만들기 때문에 더 잘하는 것이다. 장사는 나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도 도와주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도 내 마음과 맞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데 ‘나는 분명 백만장자가 될 수있어!’라고 외치고 주문을 건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한번 삐긋하면 그 실패를 만회하는 데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지를 상상해보아야 한다. 재고, 또 재고 그리고 다시한번 검토하고. 남들이 겁쟁이라고 하고,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해도 쉽게 시작하면 안된다. ‘어떻게 되겠지, 잘 될거야, 나는 딴 사람과 달라’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겁쟁이로 비춰지기 싫어서, 용감하게 보이고 싶어서,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생활비라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주변에는 또 그런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시작하시라!’고 하면서 자기와 같이, 또는 자기네 프랜차이즈에 가입하라고 한다. 그리고 너무 망설이면 늦을 것이라는 홈쇼핑식의 은근한 협박도 곁들인다. 하지만 사업은 시크릿이나 성경식의 삶이 아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두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이가 찾을 것이요 두두리는 이 에에 열릴 것이니라.’ 우리의 삶이 정말 이처럼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베풀면 얼마나 좋을 까마는 사업이란 ‘투자하라, 그러면 일부는 세금을 내야할 것이고, 일부는 경비로 써야하고, 일부는 사기꾼에게 가야하고, 그 나머지중 일부를 너에게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아주 드물지만 더 많이 돌려줄 지도 모른다’이다.
긍정주의의 화신인 돈키호테가 로시난테 공주와 결혼을 하지도 못했는 데, 지금은 모두가 돈키호테가 되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아무리 원하든 간에 그 것이 실제로 이루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 그 것은 허무한 비관주의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세무서에서 내는 자영업자의 사업자등록증 유지 기간이 그렇고, 통계청에서 내는 ‘50%미만의 생활비를 제대로 번다’는 통계를 확실한 수치로 보여준다. 사업을 하다보면 ‘긍정에 대한 상식’에 배신당한 사람이 많다. 그들은 자신과 사업의 장래성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아 사업의 확장규모나 투자를 상식이상으로 감행한다. 그리고 뒷감당을 어려워한다. 긍정주의가 삶을 밝게 보여줄 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그 삶이 내 것이 되게하지는 못한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고 했다. 우리의 삶도 긍정주의와 비관주의의 적당한 타협내에서 살아야 한다.
바버라 에렌라이크가 쓴 ‘긍정을 배신’을 읽었다.
이건 ‘상식의 배신’이야, 이렇게 좋은 단어에 부정적 단어가 붙을 수있다니.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의미에 읽던 책을 잠시 미루어 두고 이 책부터 읽었다. 이 책을 출판한 ‘부키’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bookiemb)에 들어가니 ‘긍정성 테스트’가 있길 래 해보았더니, ‘밝고 긍정적인 당신은 ‘긍정의 배신’을 당할 확률이 높다’로 나왔다. 그래, 내가 긍정이란 놈한테 배신당할 수있다는 말이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우선 놈을 파악해봐야 겠구만.
내가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처음 생각난 것은 바로 ‘시크릿의 배신’이었다.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된다는 주문을 끊임없이 외우게 하는, 하지만 그 것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실행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없었던 황당한 책이었다. 지하철에서 성경책을 읽는 사람들을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이다. 목사도 아니고 어디가서 설교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마치 외울 듯이 성경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주여 믿습니다. 저에게 복을 주소서’하는 게 또한 황당해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시크릿‘과 초대형 교회의 목사들에 대하여 비판을 했을 때, 절대 공감하였다.
‘긍정의 배신’은 ‘왜 이 시대에 유독 긍정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인터넷에서 ‘코칭의 역사’를 찾아보면 코칭업이 1990년대에 급성장한 이유가 평생직장의 상실‘이라고 나와있다. …… 그 것이 심리통제를 위한 대규모 실험’이라고 한다. 세상은 불안하고, 믿고 의지할 만한 것도 결국은 자신 뿐일 때, 사람들은 자신을 잃어버릴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기를 쓰고 ‘나는 할 수있어, 정말이야,~~’라고 외쳐댄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같은 데, 그럴 방법조차도 모를 때 사람들은 긍정에 대한 책을 읽고, 텔레비전앞에 앉아 마치 악세사리를 쇼핑몰에서 구매하듯 온라인으로 송금을 하면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아멘’을 되풀이한다. 나도 그럴 수있으면 그러고 싶다. 하지만 ‘매일 매일 생겨나는 일, 나로하여금 세속적인 부담을 주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데, 그럴 수는 없다.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아질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일이 항상 잘 풀려가지는 않는다.
내가 읽은 ‘자기계발, 긍정마인드, 동기유발’에 대한 책들도 꽤 된다. 의식적으로 그런 책들을 가끔 읽는다. 나도 웃으면서 즐겁게 살고 싶으니까.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지치지 않도록 나를 채찍질하기 위함이다. 바버라가 좀 비꼬는 투로 말했지만, “문제를 초래하는 사람들은 자기 최면에 능하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유능한 세일즈맨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긍정이란 ‘잘 살펴보고 시작하고, 일단 시작하면 지치지 않고 진행하되, 아니다 싶으면 적당하게 접을 수 있는’게 좋은 긍정이다. 이게 꼭 “주의깊은 현실주의”와 같은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긍적의 마인드가 역효과를 내는 곳도 많다. 세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게하고, 자신만 잘하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잘 풀려갈 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을 갖게 한다.
이제까지의 세상은 그래도 희망적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세상은 점차 축소되어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오히려 희망보다는 불안이 세상을 덮여씌우고 있는 마당에, 사람들은 더 긍정마인드를 좋아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장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 그런데도 ‘나는 할 수있어!, 불가능이란 없어!’라고 외친다고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업은 끊임없이 터지는 새로운 일에 ‘ 떻게 해야지?’하고 걱정과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야 한다. 이럴 때 바바라 에렌라이크가 쓴 것처럼 긍정마인드는 “구명구라도 되는 듯 여기지만, 긍정적인 ‘생각통제’노력은 잠재적으로 판단을 가로막고, 지극히 중요한 정보로부터 우리는 분리시키는 치명적인 부담이 되었다. 공포심과 부정적인 생각을 조심해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그 외부 세계하는 것이 ‘부정적인’사람들 만족시키는 나쁜 뉴스를 포함하고 있다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긴장을 늦추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점이다. 주의깊은 현실주의는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
사실 나 자신도 어느 누구보다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나의 미래는 찬란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가능한 한 세상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남들이 나를 보면 언제나 ‘어유, 얼굴좋으시네, 장사가 잘되나봐요’하곤 한다. 그런데 막상 돌아보면 잘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형, 왜이래, 위장병이라도 있어?’하면, ‘응 맞아, 요즘 왠지 소화가 잘 안되!’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하고 잠을 설친다. 잘될때도 더 잘되어야하는데 걱정하고, 안될때는 어째서 안되지를 고민한다. 그러니 위산이 너무 많이 흘러나오고, 소화가 안되는 게 당연하다. 그게 어쩌면 ‘그래 왠만하면 잘되겠지!’하면서 스스로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건들을 미리 상상하게 하고, 그에 대한 대처방안도 만들기 때문에 더 잘하는 것이다. 장사는 나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도 도와주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도 내 마음과 맞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데 ‘나는 분명 백만장자가 될 수있어!’라고 외치고 주문을 건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한번 삐긋하면 그 실패를 만회하는 데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지를 상상해보아야 한다. 재고, 또 재고 그리고 다시한번 검토하고. 남들이 겁쟁이라고 하고,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해도 쉽게 시작하면 안된다. ‘어떻게 되겠지, 잘 될거야, 나는 딴 사람과 달라’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겁쟁이로 비춰지기 싫어서, 용감하게 보이고 싶어서,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생활비라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주변에는 또 그런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시작하시라!’고 하면서 자기와 같이, 또는 자기네 프랜차이즈에 가입하라고 한다. 그리고 너무 망설이면 늦을 것이라는 홈쇼핑식의 은근한 협박도 곁들인다. 하지만 사업은 시크릿이나 성경식의 삶이 아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두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이가 찾을 것이요 두두리는 이 에에 열릴 것이니라.’ 우리의 삶이 정말 이처럼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베풀면 얼마나 좋을 까마는 사업이란 ‘투자하라, 그러면 일부는 세금을 내야할 것이고, 일부는 경비로 써야하고, 일부는 사기꾼에게 가야하고, 그 나머지중 일부를 너에게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아주 드물지만 더 많이 돌려줄 지도 모른다’이다.
긍정주의의 화신인 돈키호테가 로시난테 공주와 결혼을 하지도 못했는 데, 지금은 모두가 돈키호테가 되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아무리 원하든 간에 그 것이 실제로 이루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 그 것은 허무한 비관주의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세무서에서 내는 자영업자의 사업자등록증 유지 기간이 그렇고, 통계청에서 내는 ‘50%미만의 생활비를 제대로 번다’는 통계를 확실한 수치로 보여준다. 사업을 하다보면 ‘긍정에 대한 상식’에 배신당한 사람이 많다. 그들은 자신과 사업의 장래성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아 사업의 확장규모나 투자를 상식이상으로 감행한다. 그리고 뒷감당을 어려워한다. 긍정주의가 삶을 밝게 보여줄 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그 삶이 내 것이 되게하지는 못한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고 했다. 우리의 삶도 긍정주의와 비관주의의 적당한 타협내에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