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정말 나는 사업을 즐길 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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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rlaeodbs01/20131302222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사업을 하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 위궤양걸리지 않고, 약간의 머리카락만 잃고서도 사업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쓰이는 말이 있다. 같은 길을 걸어가도 미인과 함께 걸을 때는 그 시간이 무척 짧게 느껴지고, 싫어하는 사람과 걸을 때는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사업할 때도 그렇다. 사업이 잘되고 신이 날때는 웬 휴일이 그리도 많은 지 나를 제외한 세상사람들은 놀려고 사는 것같다. 기분같아서는 1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일이 안되고 사무실에만 가면 머리가 찌근거릴 때는 왜 이리도 주말은 더디게 오는 지 마치 1주일이 7일이 아니라 10일은 되는 것같다.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매우 화려해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기고, 언제나 남을 만나 뭔가 골치아픈 이야기를 해야 하고, 직원들은 언제나 내 맘같지 않다. 그 속에서 기업가는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성취욕을 달성할 수는 있지만, 그 기쁨은 언제나 잠시이다. 왜냐하면 그 성취욕을 정말로 즐기기 위하여는 모든 일들이 다 제대도 굴러가야 하고, 내가 월급주는 사람들이 내 맘같아야 하고,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뭔가를 이루는 것은 아주 길고 지루하고 괴로운 과정이다. 요즘 나에게는 새로 생긴 증상이 하나있다. 1주일에 하루는 잃어버린다. 흔히 하는 말, 젊어서는 시간이 기어가고, 나이들면 뛰어가고, 늙으면 날아간다고 한다. 아직 내 시간은 날아가지는 않지만, 뛰어가는 건 확실하다. 1주일을 지나고 하면 하루하루는 빠른 줄 모르는 데, 주말이 되면 어느 하루는 건너 뛴 기분이다. 그래서 꼭 ‘어, 오늘이 토요일이야!, 난 아직 목요일인 줄 알았는데~’하면 놀란다.
필립 짐바르도가 쓴 ‘타임패러독스’가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의 시간관을 여섯가지로 구분한다.
– 과거 부정적 시간관 : 과거의 행동에 대한 후회가 잦고 고통스럽게 과거를 회상한다
– 과거 긍정적 시간관 : 과거에 긍정적인 사건을 주로 기억하거나 역경의 경험에서 최선을 끌어내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다.
– 현재 쾌락적 시간관 : 모험심이 강하고 누구라도 웃게만들고 언제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 : 삶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것은 운명이다
– 미래지향적 시간관 :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할 때면,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꼼꼼히 검토한다.
– 초월적 시간관 : 충동을 잘 조절하며 공격적이지 않고 미래에 생길 수 있는 결과를 늘 염두에 둔다.
그리고 간단한 ‘짐바르도 시간관 검사(ZTPI)’를 통하여 나의 시간관을 채점해볼 수있다. 나의 시간관은 대체로 중간인 5점만점에 3.5언저리에서 여섯 개의 시간관이 나온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과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이 좀 낮은 편이다. 대체로 맞기도 하는 것같고….
이 책의 저자는 독자에게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일관된 시간관을 가지라고 한다. 지나치게 현재지향적인 사람들은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나치면 미래의 행복한 삶을 빼앗길 수도 있다. 시간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좋은 추억들로 행복해지기도 하고, 나쁜 추억들로 슬퍼지기도 한다. 현재의 순간에는 맛있는 음식, 친구들과의 대화, 뜻밖의 즐거운 일들, 사랑하기, 아름다운 것들 감상하기, 적성에 맞는 일하기등으로 행복을 느낄 수있다. 미래에도 행복이 있다. 복권당첨, 승진, 결혼, 자녀출산, 은퇴에 대한 생각이 각각 특별하고 희망에 찬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런데 난 요즘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 나는 성공한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자가 아니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고 싶은 수많은 일들에 대한 제약이 있으니 그 것만해도 행복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이유가 되는 것같다. 아마도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이를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때문일지도 모른다(내가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인가?).
“시작은 우리가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업을 이끌고 갔다. 전에는 조금 잘못해도 소주 한잔 마시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주식이 뜬 뒤로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묘기를 부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나를 격리시켜야 했다. 내가 나를 몰랐다. 너무도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도 몰랐다.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 데, 지금 돌아보니 되는 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유명세와 함께 찾아온 외로움을 이겨냈어야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되리라고 생각했는 데, 그게 아니었다. 더 처절하게, 내게 찾아왔던 고독을 혼자서 견뎌냈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외로움에 진 것이다.”
서광원이 쓴 ‘사장으로 산다는 것’에 나오는 어느 사장의 독백이다.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정말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갈 때를 돌이켜 보면 내가 정말 나답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결정하고, 나의 결정에 영향을 줄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내수없이 수출만 한다는 것은 내가 한국사회에서는 온전하게 구매자의 역할만 한다는 것이다. 그 것은 적어도 나와 관련된 먹이생태계에서 내가 최상의 위치에 있음을 의미했다. 돌이켜보면 그 때 조차도 실제로 내가 결정한 것을 꼽아보라면 별로 없는 것같다. 다 상황에 맞추어 어쩔 수 없이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양자택일형의 결정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기업이 커간다면 양자택일이 아닌 3지선다형이나, 4지선다형 정도로 늘어나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사업은 사장이 시작하지만, 결국 사회의 상황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사장이 하는 일의 거의 전부인 것같다. 회사의 범위를 뛰어넘어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내 한몸이니 가볍게 움직일 것같은 데, 의외로 나는 변하기 쉽지 않고 사회는 빨리 변한다.
서광원이 말한 것처럼 “CEO도 산너머에 무엇이 있는 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 지도 모르면서도 수많은 생명을 이끌고 가야한다면 마음이 어떨까?”
시작은 했는 데, 갈 길은 모르겠고, 사람들은 나만 쳐다보고 있고, 겁은 나는 데 자신감없어 보이면 안되고…… 그렇다고 시작하면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
사장을 해야할 이유만큼이나,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많다. 그렇지만 자기 마음대로 그만 둘 수 있는 오너사장은 거의 없다. 월급을 받는 사람이야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을 때 사표를 내면 그만이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은 좋든 싫든 끝까지 가야한다. 그 과정은 조용필의 노래처럼 ‘화려하면서도 텅빈’ 모습일 것이다. 언제나 뭔가 터지는 새로운 일에 치이다 보면 사장은 인생을 즐길 기회도, 행복을 찾을 마음의 여유도 없게 된다. 그런데 그게 지나가니 보였다. 2005년까지는 나름대로 여유를 부릴 만큼 필맥스의 발가락양말이 제법 자리를 잡아갔다. 해외 전시회도 1년에 4-5번나갔고, 유럽 출장도 1년에 1-2번은 갔다. 그러면서 마음먹기를 ’이번 전시회에서 큰 바이어를 만나면, 유럽의 오더가 좀더 확실하게 안정적이 되면, 가족들과도 같이 와서 좀 재미있게 놀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혀주어야지!‘라고 마음을 먹곤 했지만 결국 한번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차라리 그 때 같이 갈걸’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일도 하겠지만, 좀 더 그 상황을 즐길 것이다. 성공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았고, 일하는 그 자체가 마치 나의 행복인 줄 알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미를 새겨보지 않았다. 손안에 있던 파랑새를 놓쳐버린 기분이다.
돌이켜 보면 행복은 중요한 문제지만 긴급을 요하지 않는다. 지금의 행복을 즐기는 일은 ‘세탁소 문 닫기전에 드라이클리닝한 옷찾기’보다도 뒤인 열 번째 항목으로 밀려난다. 결국 우리의 시간은 정해진 크기의 파이이며 우리는 그 파이를 점점 더 얇게 썰어 각 조각을 점점 덜 만족스럽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지금의 행복을 즐겨야겠지만, 사업을 하면서 현재지향성과 미래 지향성의 불균형은 재앙으로 연결된다.
결국 나의 시간관리 지향점은 이런 모순으로 결론을 맺는다. “현재에 몰두하되 적당히 즐기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간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사업을 하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 위궤양걸리지 않고, 약간의 머리카락만 잃고서도 사업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쓰이는 말이 있다. 같은 길을 걸어가도 미인과 함께 걸을 때는 그 시간이 무척 짧게 느껴지고, 싫어하는 사람과 걸을 때는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사업할 때도 그렇다. 사업이 잘되고 신이 날때는 웬 휴일이 그리도 많은 지 나를 제외한 세상사람들은 놀려고 사는 것같다. 기분같아서는 1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일이 안되고 사무실에만 가면 머리가 찌근거릴 때는 왜 이리도 주말은 더디게 오는 지 마치 1주일이 7일이 아니라 10일은 되는 것같다.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매우 화려해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기고, 언제나 남을 만나 뭔가 골치아픈 이야기를 해야 하고, 직원들은 언제나 내 맘같지 않다. 그 속에서 기업가는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성취욕을 달성할 수는 있지만, 그 기쁨은 언제나 잠시이다. 왜냐하면 그 성취욕을 정말로 즐기기 위하여는 모든 일들이 다 제대도 굴러가야 하고, 내가 월급주는 사람들이 내 맘같아야 하고,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뭔가를 이루는 것은 아주 길고 지루하고 괴로운 과정이다. 요즘 나에게는 새로 생긴 증상이 하나있다. 1주일에 하루는 잃어버린다. 흔히 하는 말, 젊어서는 시간이 기어가고, 나이들면 뛰어가고, 늙으면 날아간다고 한다. 아직 내 시간은 날아가지는 않지만, 뛰어가는 건 확실하다. 1주일을 지나고 하면 하루하루는 빠른 줄 모르는 데, 주말이 되면 어느 하루는 건너 뛴 기분이다. 그래서 꼭 ‘어, 오늘이 토요일이야!, 난 아직 목요일인 줄 알았는데~’하면 놀란다.
필립 짐바르도가 쓴 ‘타임패러독스’가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의 시간관을 여섯가지로 구분한다.
– 과거 부정적 시간관 : 과거의 행동에 대한 후회가 잦고 고통스럽게 과거를 회상한다
– 과거 긍정적 시간관 : 과거에 긍정적인 사건을 주로 기억하거나 역경의 경험에서 최선을 끌어내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다.
– 현재 쾌락적 시간관 : 모험심이 강하고 누구라도 웃게만들고 언제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 : 삶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것은 운명이다
– 미래지향적 시간관 :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할 때면,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꼼꼼히 검토한다.
– 초월적 시간관 : 충동을 잘 조절하며 공격적이지 않고 미래에 생길 수 있는 결과를 늘 염두에 둔다.
그리고 간단한 ‘짐바르도 시간관 검사(ZTPI)’를 통하여 나의 시간관을 채점해볼 수있다. 나의 시간관은 대체로 중간인 5점만점에 3.5언저리에서 여섯 개의 시간관이 나온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과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이 좀 낮은 편이다. 대체로 맞기도 하는 것같고….
이 책의 저자는 독자에게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일관된 시간관을 가지라고 한다. 지나치게 현재지향적인 사람들은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나치면 미래의 행복한 삶을 빼앗길 수도 있다. 시간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좋은 추억들로 행복해지기도 하고, 나쁜 추억들로 슬퍼지기도 한다. 현재의 순간에는 맛있는 음식, 친구들과의 대화, 뜻밖의 즐거운 일들, 사랑하기, 아름다운 것들 감상하기, 적성에 맞는 일하기등으로 행복을 느낄 수있다. 미래에도 행복이 있다. 복권당첨, 승진, 결혼, 자녀출산, 은퇴에 대한 생각이 각각 특별하고 희망에 찬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런데 난 요즘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 나는 성공한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자가 아니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고 싶은 수많은 일들에 대한 제약이 있으니 그 것만해도 행복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이유가 되는 것같다. 아마도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이를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때문일지도 모른다(내가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인가?).
“시작은 우리가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업을 이끌고 갔다. 전에는 조금 잘못해도 소주 한잔 마시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주식이 뜬 뒤로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묘기를 부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나를 격리시켜야 했다. 내가 나를 몰랐다. 너무도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도 몰랐다.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 데, 지금 돌아보니 되는 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유명세와 함께 찾아온 외로움을 이겨냈어야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되리라고 생각했는 데, 그게 아니었다. 더 처절하게, 내게 찾아왔던 고독을 혼자서 견뎌냈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외로움에 진 것이다.”
서광원이 쓴 ‘사장으로 산다는 것’에 나오는 어느 사장의 독백이다.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정말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갈 때를 돌이켜 보면 내가 정말 나답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결정하고, 나의 결정에 영향을 줄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내수없이 수출만 한다는 것은 내가 한국사회에서는 온전하게 구매자의 역할만 한다는 것이다. 그 것은 적어도 나와 관련된 먹이생태계에서 내가 최상의 위치에 있음을 의미했다. 돌이켜보면 그 때 조차도 실제로 내가 결정한 것을 꼽아보라면 별로 없는 것같다. 다 상황에 맞추어 어쩔 수 없이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양자택일형의 결정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기업이 커간다면 양자택일이 아닌 3지선다형이나, 4지선다형 정도로 늘어나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사업은 사장이 시작하지만, 결국 사회의 상황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사장이 하는 일의 거의 전부인 것같다. 회사의 범위를 뛰어넘어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내 한몸이니 가볍게 움직일 것같은 데, 의외로 나는 변하기 쉽지 않고 사회는 빨리 변한다.
서광원이 말한 것처럼 “CEO도 산너머에 무엇이 있는 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 지도 모르면서도 수많은 생명을 이끌고 가야한다면 마음이 어떨까?”
시작은 했는 데, 갈 길은 모르겠고, 사람들은 나만 쳐다보고 있고, 겁은 나는 데 자신감없어 보이면 안되고…… 그렇다고 시작하면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
사장을 해야할 이유만큼이나,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많다. 그렇지만 자기 마음대로 그만 둘 수 있는 오너사장은 거의 없다. 월급을 받는 사람이야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을 때 사표를 내면 그만이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은 좋든 싫든 끝까지 가야한다. 그 과정은 조용필의 노래처럼 ‘화려하면서도 텅빈’ 모습일 것이다. 언제나 뭔가 터지는 새로운 일에 치이다 보면 사장은 인생을 즐길 기회도, 행복을 찾을 마음의 여유도 없게 된다. 그런데 그게 지나가니 보였다. 2005년까지는 나름대로 여유를 부릴 만큼 필맥스의 발가락양말이 제법 자리를 잡아갔다. 해외 전시회도 1년에 4-5번나갔고, 유럽 출장도 1년에 1-2번은 갔다. 그러면서 마음먹기를 ’이번 전시회에서 큰 바이어를 만나면, 유럽의 오더가 좀더 확실하게 안정적이 되면, 가족들과도 같이 와서 좀 재미있게 놀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혀주어야지!‘라고 마음을 먹곤 했지만 결국 한번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차라리 그 때 같이 갈걸’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일도 하겠지만, 좀 더 그 상황을 즐길 것이다. 성공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았고, 일하는 그 자체가 마치 나의 행복인 줄 알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미를 새겨보지 않았다. 손안에 있던 파랑새를 놓쳐버린 기분이다.
돌이켜 보면 행복은 중요한 문제지만 긴급을 요하지 않는다. 지금의 행복을 즐기는 일은 ‘세탁소 문 닫기전에 드라이클리닝한 옷찾기’보다도 뒤인 열 번째 항목으로 밀려난다. 결국 우리의 시간은 정해진 크기의 파이이며 우리는 그 파이를 점점 더 얇게 썰어 각 조각을 점점 덜 만족스럽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지금의 행복을 즐겨야겠지만, 사업을 하면서 현재지향성과 미래 지향성의 불균형은 재앙으로 연결된다.
결국 나의 시간관리 지향점은 이런 모순으로 결론을 맺는다. “현재에 몰두하되 적당히 즐기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