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세이)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딸에게 보내는 경제편지)
‘자유주의’라! 어쨌든 자유란 좋은 것이지. 자유란 인간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의지이고, 사회의 제도이기도 하지. 그런데 ‘자유’란 또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우선은 자기의 자유로 말미암아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을 것과 자기의 행동에 지어야 할 ‘책임’이야. 그러니까 개인의 존엄성은 문화적, 자연적 조건과 더불어 신장하면서 자신의 목적과 특성을 스스로 성취해 가는 존재이니까,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개인의 생활에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자유주의의 기본 개념이지.
그런데 거기에서 새로운 개념이 나오지. 바로 신자유주의. 그냥 ‘자유주의’가 비교적 정치적인 개념으로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면, ‘신 자유주의’는 상당히 경제적인 의미가 많이 들어가지. 신자유주의는 우선 자유 완전시장을 기본으로 해.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합리적으로 행동을 하고, 그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시장은 완벽하게 작동을 한다는 거지. 시장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말은 우선 모든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면서 실업이 없는 완전 고용을 이룬 상태를 말하는 데, 대체적으로 완전고용이란 실업율 2%내외를 말해. 왜 2%를 인정하냐하면 직장을 옮기느라 생기거나, 질병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사유에 의한 실업이 존재하는 것을 감안한 거지.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알아서 할테니, 정부는 될수록이면 가만히 있으면서 최소한의 국민 복지와 국방정도에만 신경을 쓰라는 이야기지. 왜냐하면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은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저해하는 이른바 ‘정부의 실패’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거든. 이들은 그래서 국가간의 무역에도 정부의 개입을 부정하지.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이 최근 수십년간 세계 경제의 특징으로 ‘세계화’나 ‘자유화’라는 용어도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결과야.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상적인 이론이야. 그런데 뭐든지 지나치면 없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있잖아. 이 것도 그런 셈이야. 각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것은 좋은 데, 개인의 능력이나 주어진 환경에는 많은 차이가 있거든. 이걸 무시하니까 많은 문제가 생기지. 예를 들면 ‘김연아선수’는 휘겨스케이팅의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엄청 많은 돈을 벌었지. 물론 그녀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녀의 재능은 본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거지. 좀 더 확실한 예를 들자면 김태희처럼 태어날 때부터 아름답게 태어났고, 그로 인해 유명한 여배우가 되어 안락한 삶을 살잖아. 불공평하지. 게다가 더 한 것은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나 날 때부터 손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고. 이런 것들은 좀 극단적인 예이지만, 설령 자기의 능력으로 해서 성공을 이루었다고 하여도 그 부의 전체를 온전히 이룬 사람들이 가져야 한다면 사회의 부는 한쪽으로 쏠리게 되지.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란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더 주어지는 속성이 있거든. 국가간의 관계도 그래. 이미 북미나 유럽처럼 상당히 산업화를 이룬 나라가 있는 반면에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는 아직도 산업화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상태이고, 중국은 이미 산업화가 이룬 지역도 있고 내륙 깊숙한 지역은 아직도 원시적 농경생활을 유지하는 곳도 있어. 그만큼 개인간의 격차만큼이나 국가간의 격차도 큰 데, 그냥 같이 내버려두면 시장이 알아서 다 골고루 발전을 이루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지. 이런 시작하면서부터 불공평한 거를 ‘기회의 불평등’이라고 하지. 누구에게는 그런 타고난 부나 재능을 갖고 태어나 좋은 기회를 갖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 데, 그런 점을 무시하는 단점이 있어.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란 어느 정도의 자유를 말할까? 그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범위내에서의 자유’야.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라함은 남에게 구속되지 않을 신체적 자유를 말했지만, 신자유주의에서는 자본을 가진 만큼 뭔가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해. 그러니까 이미 현대 사회에서 남이 나에게 무엇을 해라, 말아라 할 명령을 받지 않아도 되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는 이루어졌다고 보거든.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자유, 즉 뭔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자유가 현대적 의미의 자유이지. 그럼 자본주의의 범위내에서 자유란, 결국 내가 얼마만큼 자본을 가지고 있는 가에 따른 자유이지. 자, 쉽게 생각해보자. 아빠가 부자야. 그럼 너희들은 좋은 집에서 살면서 미국이나 유럽 여행을 하고 싶을 때 할 수있고, 비싼 학원에 다니면서 과외를 할 수있고, 비싼 호텔에서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있지.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해줄 수있을 정도로 충분한 부자가 아니니, 안타깝게도 너희들은 그런 자유를 누릴 수가 없어. 그래서 가진자의 자유와 못가진자의 자유란 똑같을 수가 없지. 그게 신자유주의자들의 문제야. 그리고 뭐 그런 데까지 정부에서 신경써달라고 할 수는 없지.
문제는 앞서 말한 ‘기회의 불평등’이 살아가면서 이루어야 할 많은 부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되고,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게되는 경우가 많아. 그걸 ‘결과의 불평등’이라고 하는 데, 신자유주의에서는 그런 것까지 어떻게 나라에서 신경을 쓸 수있냐? 그건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이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런 능력의 차이를 국가에서 보조해주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고 국가에 지나치게 의지하려고 하니 가급적 그런 상황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하지. 그 것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본의의의 가장 큰 특징, 개인의 이기주의에 의한 행동이 세상을 평화롭고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한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고쳐줄 것이다라고 하지. 그리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국가간의 무역도 완전히 자유스럽게 내버려 두면, 각각의 나라가 서로 잘하는 것을 만들어 교환하면 서로간에 이익이 되니, 관세나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을 철폐하자고 하다보니 국가간의 불평등마저 깊어지고 있어. 게다가 정보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세계적으로 돈의 흐름이 너무 빨라졌는 데, 이를 규제하지 못하다보니 외환위기가 생기고 금융위기가 생겼지.
그러니까 ‘신자유주의’는 두 가지 사이에서의 갈등이야.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사이에서 어느 부분을 더 큰 것으로 보는가의 문제.
시장의 실패란 시장이 완전하게 굴러가기 위하여는 사람들이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완전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전제이지만 그런 완전한 경우란 없는 게 문제이고,
정부의 실패란 시장이 완전하지 않으니 정부가 시장의 작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지만, 관료들 역시 완전한 정보를 가질 수도 없고, 이를 제대로 평가할 수도 없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개입은 ‘시장의 실패’보다도 더 큰 어려움을 불러일으킨다는 문제이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정부의 실패’를 보여주는 예이고, 지금의 경제위기는 ‘시장의 실패’를 보여주는 예이지.
이제 다음에는 무슨 주의가 나올지, 아빠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