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성을 중시해야 한다

(무역마케팅) 적응성을 중시해야 한다


시장이 나에게 물었다.

“이런들 엇떠하리 저런들 엇떠하리

만수산 드렁츩이 얽혀진들 엇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전에 나는 시장에게 답하였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하지만 지금은 대답이 달라졌다. “그래, 그렇게 대충 얽혀 백년까지 누리자!”

내가 잘아는 사람중의 한 사람도 ‘신봉하는 전쟁의 원칙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하고 비슷하게 말했다. “나는 어떠한 원칙도 신봉하지 않는다” (나폴레옹)



나는 그동안 사업을 정말 교과서적으로 했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선 서점에 가서 그 분야의 원론에 해당하는 책을 찾아, 그 일을 왜 일어났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 지를 사례부터 찾아보고 그 원론적인 이론을 적용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마케팅에서 가장 큰 이론분야인 브랜드의 중요성과 그 확립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모든 일을 하는 데 어떤 결정을 내릴라치면 항상 해야할 장점이 있고, 하지말아야 할 단점이 있다. 그런 고민 끝에 어떤 일을 진행하다보면 꼭 더 나은 대안이 보이고, 그 대안으로 돌아서려면 이제껏 진행해왔던 일들에 대한 시간과 비용을 고민해보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나의 정보가 틀렸거나 상황이 아주 달라지는 경우도 꽤나 많았다. 그래서 선뜻 뭔가를 한다는 것이 어려워졌다.



예를 들면 2000년 전후에 내가 양말공장에 기계를 투입할 때가 그랬다. 우리는 애초부터 양말에 발뒤꿈치가 없는 모델을 생산해서 싱가포르와 유럽으로 수출하였다. 원래 발가락양말이 장갑기계에서 나왔었다. 유럽에서 주문이 늘어나면서 몇가지 기계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는 데, 그 때 뒤꿈치있는 양말기계를 살 것인지, 기존의 모델과 같은 기종을 구매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바이어들에게 물어본 결과 너무 모델이 다양하면 판매에 어려움이 있고, 새로운 기계에서는 하지못하는 나름대로의 특성을 이미 구축하였으니 그대로 가자는 의견이 전부였다. 결국 우리는 상당한 비용을 들여 기왕에 공장에서 운영하던 기종과 같은 기계를 다수 구매하였다. 그 기계는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몇 가지의 특별한 특성이 있었는 데, 그 특성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고 뒷꿈치가 있는 양말을 선호하는 내수시장으로의 진출을 어렵게 하였다. 그건 마케팅에서 가장 자주 말하는 ‘차별화’의 댓가로 일본과 한국의 내수시장을 놓친 것이다. 그게 그렇게 두고두고 나를 괴롭힐 줄 몰랐다. 우리가 유럽을 위해서 만드는 양말이 한국시장의 수요와는 너무 달라서 나의 안방격인 내수시장에서는 할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유럽시장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한국시장에서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브랜드는 그 나름의 독특함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고, 그때문에 유럽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나는 다른 퇴로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제와서 보니 ‘자기만의 이름을 가지고 장사하는 브랜드회사가 되는 것만이 마케팅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 아주 값비싼 교훈을 얻은 셈이다.



도박판에는 온틸스(on tilt)라는 말이 있다. 도박하는 도중에 잃은 돈에 대한 손실을 크게 느껴 계속해서 무모한 배팅을 말한다. 도박꾼은 도박의 과정에서 입은 손실을 자기가 판을 떠나기 전까지는 잃은 돈이 아니라, 아직도 자신의 돈이라고 착각하고 그걸 다시 따오기 위해 더욱 공격적인 배팅을 하게 된다. 자기 앞에 있던 돈은 사라졌지만, 뇌는 돈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손실을 인정하고 전략을 재정비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겠지만 그러기는 너무 고통스럽다. 그는 그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으로 언제든지 반전을 일으킬 수있다고 자신하면서 무리한 배팅을 한다.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애초의 손실이 아니라 그런 손실이 일어난 사실을 거부하기 위해 그가 두는 무리수이다. 손실과 화해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때 같았으면 용납하지 않았을 도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그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 ‘그래 이번 판은 내가 졌다. 내일 벌어질 판에서는 좀 더 잘해보자!’라고 하면서 털고 일어났어야 한다.



지금 나의 상황이 그렇다. 커다란 야망을 가지고 시작해서 17년이 지난 지금 삼세판의 세 번째 판에 들어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껏 해왔던 실패는, 타격이 크기는 했지만 그래도 감내할 만한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나는 실패를 만회하지 못할 만큼 나이들지도 않았고, 의지가 약해지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나에게 낮설지만, 아주 적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처럼 내가 배웠고, 해왔던 것들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도 깨달았다. 원튼 원치 않았든 간에 시행착오는 복잡한 세상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막강한 프로세스이다.



그건 꼭 나같은 소기업만이 아니라 대기업에게도 시행착오는 피할 수없다. 시장은 시행착오 프로세스를 이용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팀 하포드가 지은 ‘어댑트’에 의하면 내전, 기후변화, 금융불안과 같이 겉으로 보기에 다루기 힘든 문제점에 봉착했을 때 시장의 친숙한 상황을 뛰어넘어 시행착오라는 비결을 활용할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고 했다. 대기업처럼 복잡한 동시에 강하게 결합된 시스템은 위험하다. 강결합 프로세스의 결정적인 특징은 일단 시작되면 중단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도미노 게임은 특별히 복잡하지는 않지만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복잡성은 여러 방법으로 일이 잘못될 수있음을 뜻한다. 또 강결합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너무 빠르게 확산되어 실패에 적응하거나 뭔가 다른 방법을 써보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안전시스템 자체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경우도 많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라도 적군을 만나봐야 안다. 리더가 얼마나 신속하게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전쟁에서 전략의 오류는 드문 일이 아니다. 잘못된 전략을 들고 시장에 뛰어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현지 상황에 적응의 실패가 문제이고, 더 나쁜 것은 적의 거부가 더 큰 문제이다.



‘어댑트’에서 팔친스키는 현실의 문제점들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하면서, 시장은 언제나 변할 수있다고 했다. 그에 대한 그의 대치법은 1)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것, 2) 새로운 걸 시도할 때는 실패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규모로 시도할 것, 3) 피드백을 구하면서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