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응답하라 흥남 부두, 여기는 국제시장!
<프롤로그>
[1·4 후퇴 :  1950년 10월 25일 중국이 한국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한국군과 유엔군이 38선 이남 지역까지 퇴각한 사건을 가리킨다. 1·4 후퇴라는 명칭은 북한군이 서울을 다시 점령한 1951년 1월 4일의 날짜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퇴각하는(흥남철수작전 : 1950.12.15~12.24) 한국군과 유엔군을 따라서 북한지역에 살던 주민들도 대거 남한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수많은 난민과 이산가족이 발생했는데, 흥남에서 배를 타고 내려온 피난민만 해도 1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국제시장, 2014>은 힘겹고 고달팠던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 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중에도 한국전쟁 피난길에 아버지를 잃고 일찌감치 가장의 피할 수 없는 책무를 다하며 평생을 살아온 남자 ‘덕수(황정민 분)’를 통해 6·25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희미하게나마 애환의 기억을 소환해 주리라 생각한다.  그 옛날, 바람 찬 흥남 부두에서 오늘 국제시장까지의 격동의 시간을 반추하며, 오늘 그리고 내일을 가장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흥남 부두, 여기는 국제시장!”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응답하라 흥남 부두, 여기는 국제시장!
<영화 줄거리 요약>
영화는 1950년 12월 가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래 가사처럼,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 부두의 철수와 피난민 생활 등 혹독하고 가난했던 옛 모습과 살아내기 위해 서독의 광산과 베트남의 정글로 떠나야 했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을 조명한다.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덕수’는 가수 ‘남진’만이 최고의 가수라고 고집하는 호통쟁이 노인이 되고 , ‘말이 안 통한다’며 짜증 내는 자식, 손주들을 뒤로하고 자기 방에 들어와 아버지 사진을 보며 과거 흥남 부두에서 생이별했던 시절로 돌아가 그리운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흥남 부두의 철수 장면은 프리비주얼(pre-visual:초 단위로 정확하게 계산된 동영상 콘티)작업이 다섯 달이 걸릴 만큼 사실적이며, 미국 전쟁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느낌을 준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제시장>에서는 피난민들이 중공군의 반격으로 마지막 떠나는 미군 함에 올라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악착같이 사다리를 올라탔다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상륙선에서 내려 육지로, 빗발치는 포탄을 피해 고지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상황이 다른 점이다.

광산 시퀀스는 실제 한국인 광부가 가장 많았던 독일 뒤스부르크 함보른 광산에서 찍은 것이 아니고, 이미 폐광된 체코 광산과 부산의 한 창고에 지은 수십m짜리 갱도 세트를 오가며 찍은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덕수’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버지를 그리며 “아부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진짜 힘들었거든예”하는 대사에서 격동의 시기를 살며 가장으로서의 강한 책임감 뒤에 피하고 싶었던 애환이 동시에 느껴져서 가슴이 찡함을 느끼게 된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응답하라 흥남 부두, 여기는 국제시장!
<관전 포인트>
A. 영화에서 1·4 후퇴 당시 흥남 부두에서 타고 내려온 기적의 배는?
1950년 12월 23일 흥남 부두에 도착한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총 정원이 60명이었고, 이미 47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지만, 당시 ‘아몬드 장군(미 육군 제10군 단장)’의 고문으로 있던 한국인 의사 현봉학 씨의 간곡한 요청으로 ‘레너드 라루’ 선장은 배에 있던 모든 무기를 버리고 피난민을 최대한 태우라고 명령하여 1만 4천여 명(정원의 230배)이 배에 승선할 수 있었다.

B. 덕수가 평생 지키며 살아가는 아버지의 당부는?
덕수가 난리 통에 업고 있던 여동생(막순)을 잃어버리자, 덕수의 아버지 진규는 막내딸을 찾기 위해 남으면서 덕수에게 “시방부터 네가 가장이니까, 가족들 잘 지키라. 어?”라는 말을 하게 되고 덕수는 이 말을 평생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살아가게 된다.

C. 덕수가 피난 와서 하게되는 일은?
덕수는 부산으로 피란 내려와서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꽃분이네’에서 일하며 다섯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러다 남동생의 대학교 입학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독일에 광부로 떠나 3년간, 광산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는 등 고생을 하다가 간호사로 나온 평생의 동반자 ‘영자(김윤진 분)’를 만나게 된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 :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각국에 차관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독일에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면 이들의 임금을 담보로 1억 5,900만 마르크의 차관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로 인해 1960~1980년 사이 7,900여 명의 광부와 1만226명의 간호사가 독일에 파견되었다.]

D. 덕수가 독일에서 돌아와 다시 월남으로 가게 된 이유는?
덕수의 성실함을 인정했던 고모는 자신의 ‘꽃분이네’ 가게를 덕수에게 물려주기로 했지만 갑자기 돌아가시게 된다. 그러나 고모부의 욕심으로 가게를 잃게 될 위기에서 결국 자신의 꿈이었던 해양대 진학을 통한 외항선 ‘선장’이 되는 길을 접고, 다시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에 기술근로자로 파견되게 된다.

E. 덕수가 월남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배경은?
덕수는 월남에서 기술 근로자로 일하던 중 미군 클럽에 납품을 하러 갔다가 ,월남의 어린 고아를 보고 불쌍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초콜릿과 약간의 돈을 쥐어주었다. 은혜를 받은 아이는 베트콩이 미군클럽을 폭발하기 직전에 덕수에게 알려주어 덕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된다. 결국 덕수가 6·25전쟁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공감하고 어린 고아에게 따뜻한 동정심을 베푼 것이 생명을 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F. 1983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통해 덕수가 찾게 되는 가족은?
‘패티킴’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가사처럼 TV 방송을 통해 흥남 철수에서 헤어진 피난민들의 생사를 파악하고 살아있는 가족을 찾는 방송에서 덕수는 흥남 부두에서 헤어졌던 막냇동생 ‘막순’이 미국으로 입양 가서 사는 것을 확인하고 감격의 재회를 하게 된다. 이로써 덕수는 아버지에게 부여받은 가장으로서의 책임(어머니 봉양, 동생들 대학교육, 결혼 지원, 막순이 찾기)을 다하게 된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응답하라 흥남 부두, 여기는 국제시장!
<에필로그>
영화를 본 후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갔다 왔을 뿐인데 이렇게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참으로 엄청난 지옥과 같은 국난에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고생으로 현재의 번영을 이루었다는 깊은 감회가 들었다. 최근, 사회에서 극도의 갈등과 대립으로 엄청난 소모적 비용과 정신적 허탈감을 일으키는 상황을 보면서,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1·4 후퇴,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서, 부산까지 피난 내려와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했고, 산업화의 과정에서 고단한 삶도 마다하지 않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계적인 IT 강국을 만든 최고의 자부심으로 미래의 국제시장에서 다시,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진지한 성찰과 노력이 필요한 엄중한 시기임을 절실하게 느낀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를 들으며 격랑의 삶을 산 사람들의 애환을 기억해 본다.

[굳세어라 금순아 :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 다오 북진 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 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 보자]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