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귀, 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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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정현정
입의 문
닫을 수 있고
눈의 문
닫을 수 있지만
귀는
문 없이
산다
귀와 귀 사이
생각이란
체 하나
걸어놓고
들어오는 말들 걸러내면서 산다.
【태헌의 한역】
耳(이)
口門可閉眼門亦(구문가폐안문역)
兩耳無門過一生(양이무문과일생)
縱掛思篩兩耳間(종괘사사양이간)
隨時入語濾而生(수시입어려이생)
【주석】
* 耳(이) : 귀.
口門(구문) : 입의 문. / 可閉(가폐) : 닫을 수 있다. / 眼門(안문) : 눈의 문. / 亦(역) : 또한, 역시. 여기서는 ‘또한 그렇다’는 의미로 쓰였다.
兩耳(양이) : 두 귀. / 無門(무문) : 문이 없다. / 過一生(과일생) : 일생을 보내다, 평생을 살다.
縱掛(종괘) : 세로로 걸다. / 思篩(사사) : ‘생각이라는 체’의 뜻으로 역자가 만든 말이다. / 兩耳間(양이간) : 두 귀 사이.
隨時(수시) : 때에 따라, 수시로. / 入語(입어) : 들어오는 말. / 濾而生(여이생) : 걸러내며 살다.
【직역】
귀
입의 문 닫을 수 있고
눈의 문도 그렇지만
두 귀는 문 없이
평생을 산다
두 귀 사이에
생각이란 체 세로로 걸어 놓고
수시로 들어오는 말들
거르면서 산다
【漢譯 노트】
사람의 얼굴을 구성하는 4대 요소를 한글로는 “눈코입귀”나 “눈코귀입” 등의 순서로 얘기하고, 한자로는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순서로 칭한다. 이 순서를 가지고도 문화적 차이를 얘기할 수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가운데 눈과 입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다. 그러나 코와 귀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귀와 귀 사이에는 생각을 하는 ‘머리’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 착안하여 ‘생각이란 체’를 이끌어낸 시인의 상상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생각이란 체’가 있으련만, 말이 들어오면 거르지도 않고 바로 반응해버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더군다나 지도자급 인사들 사이에서 그런 자들을 볼 때면 정말이지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사는 걸까 하는 우려가 절로 든다.
그리고 또 세상에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이 많다. 보기와 듣기에서의 이러한 편식은 생각의 들을 황폐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그 생각의 들이 황폐해지면 나오는 말은 필경 거칠어지거나 편향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어찌 보기와 더불어 듣기를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들어오는 말들 걸러내면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當爲)의 뜻으로 읽힌다.
4연 12행으로 된 원시를 역자는 4구의 칠언고시(七言古詩)로 한역(漢譯)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시어를 보태고 또 일부 시어는 고쳐 번역하였다. 한역시는 짝수 구에 동자(同字:같은 글자)로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生(생)’이다.
제법 여러 해 전에 역자가 “이목구비”를 소재로 하여 지은 시를 말미에 첨부한다. 심심풀이 파적으로 지어본 희시(戱詩)인 만큼 가볍게 감상하면서, 본인의 경우는 어떤지 각자 시로 한번 엮어보는 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시가 뭐 별 것이겠는가?
耳目口鼻何時樂(이목구비하시락)
耳聽淸樂曲(이청청악곡)
目對好文章(목대호문장)
口得東西玉(구득동서옥)
鼻聞脂粉香(비문지분향)
이목구비는 어느 때에 즐거운가?
귀로 맑은 음악 들을 때
눈으로 좋은 글 대할 때
입으로 맛난 술 마실 때
코로 지분 향기 맡을 때
耳目口鼻何時苦(이목구비하시고)
耳聽兒母詬(이청아모후)
目對吾人陋(목대오인루)
口得辣辛羞(구득랄신수)
鼻聞嘔吐臭(비문구토취)
이목구비는 어느 때에 괴로운가?
귀로 마누라 잔소리 들을 때
눈으로 나의 누추함 대할 때
입으로 매운 먹거리 먹을 때
코로 토악질한 냄새 맡을 때
2019. 11. 5.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