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사랑이란 이름의 시!
<프롤로그>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운 중년의 로이대령은 안개 낀 워털루 브리지에 서서 마스코트를 만지작거린다. 귓가에는 “당신만을 사랑해요.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예요”라고 속삭이는 마이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촛불클럽에서의 작별의 왈츠’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애잔한 선율이 애틋했던 사랑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애수(哀愁)/Waterloo Bridge, 1940>에서, 사랑이란 ‘백조의 호수(Swan Lake)’에 나오는 왕자와 마법에 걸린 백조공주 같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동시에 가슴 시린 한편의 시임을 느낄 수 있다. 인스턴트화 되어가는 현대의 사랑에 따뜻한 서정적인 감성이 피어날수 있게 촉촉한 낭만의 물을 줄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사랑이란 이름의 시!
<영화 줄거리 요약>
세계 1차대전, 전쟁의 소용돌이 속의 런던. 워털루 다리 위를 산책하던 25세의 영국군 대위 ‘로이 크로닌(로버트 테일러 분)’은 때마침 공습경보로 사람들과 함께 지하 철도로 피신한다. 그는 프랑스 전선에서 휴가를 받고 나와 있다가 내일로 다가온 부대 귀환을 앞두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런던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황혼의 거리를 거닐던 중이었다. 그때 공습이 시작됐고, 핸드백을 떨어뜨려 쩔쩔매고 있는 한 처녀를 도와주고 함께 대피한다. 혼잡한 대피소 안에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그녀의 이름은 ‘마이러 레스터(비비안 리 분)’로 올림픽 극장에서 공연 중인 올가 키로봐 발레단의 발레리나였다. 공습이 해제되고 밖으로 나오자, 마이러는 로이가 출정한다는 말을 듣고 “행운이 있기를 빈다”며 조그만 마스코트를 쥐여주고는 서둘러 사라진다. 그날 밤 극장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던 마이러는 객석을 바라보다 뜻밖에 로이를 발견하고 놀란다. 그 놀라움은 이내 기쁨으로 변하여 설레는 가슴을 억제치 못한다. 로이는 사람을 통해서 마이러에게 쪽지를 전한다. 로이의 초대를 받은 마이러는 기뻤지만, 그것도 순간, 완고한 키로봐 단장에게 발각되어 야단을 맞고 거절의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친구 ‘키티(버지니아 필드 분)’의 도움으로 둘은 몰래 만날 수 있게 된다. 그곳에서 싹트기 시작한 그들의 운명적 사랑은 다음 날 로이의 청혼으로 이어지나 참전을 앞둔 로이의 일정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전쟁터로 떠나고 만다. 이에 상심한 마이러는 전쟁터로 떠나는 로이를 마중하러 워털루 브리지 역으로 나가고 그로 인해 공연 시간을 못 맞춘 그녀는 발레단에서 쫓겨나게 된다. 전쟁 중에 살길이 막막해진 마이러는 직업을 구해 헤매고 다니지만 구하지 못한다. 그러다 로이 어머니를 만나러 나간 장소에서 우연히 신문에서 전사자 명단 중 로이 이름을 발견하고 절망에 휩싸인다. 상심하여 떠돌던 마이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거리의 여자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어느 날 워털루 역에 나갔던 마이러는 건강하게 살아 돌아온 로이를 귀국하는 군인들 사이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마음은 오직 로이만을 사랑하지만, 신뢰를 지키지 못한 몸이 된 마이러는 회한의 눈물만을 흘리고, 결국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사랑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행복해야 할 둘의 사랑은 무너지고 마이라는 새벽, 워털루 브리지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던진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사랑이란 이름의 시!
<관전 포인트>
A. 영화 제목이 워털루 브리지인 배경은?
로이 크로닌은 마이러를 워털루 브리지에서 운명적으로 처음 만났고, 그 다리에서 그녀를 잃는다.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한 채 워털루 브리지 위를 서성이며 그녀와의 애절한 추억을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기에 워털루 브리지는 그에게 인생의 스토리가 담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쟁으로 비롯된 25세 젊은 청춘과  사랑의 슬픔이 현재 48세가 된 그에게 여전히 또 다른 전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어두운 시대를 나타내기도 한다.

B. 마이러가 준 마스코트의 의미는?
전쟁터로 가는 연인 로이에게 자신을 지켜주던 마스코트를 줌으로, 로이는 전사가 아닌 포로수용소에 잡혀있다가 무사히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자신의 행운을 아낌없이 준 마이러는 결국 슬픈 운명을 맞게 되는 스토리에서, 진실한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를 살리는 위대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C.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는 어떤 배우인가?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  1936년 <춘희/Camille>에서 그레타 가르보와 환상의 콤비로 유명해짐. 1951년<쿼바디스/Quo Vadis>에서 ‘데보라 카’와 열연을 펼쳤다
@ 비비안 리(Vivian Mary Hartly): 남편인 ‘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나러 뉴욕을 방문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역에 전격 캐스팅되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1951년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도 말론 브란도와 함께 남부 미녀를 연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D. 영화의 유명한 2가지 유명한 삽입곡은.?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의 명곡 ‘백조의 호수 중 제2막 제10곡 정경-모데라토(1876 작곡): 마이러가 발레리나로 무대공연 시 나왔던 곡
@이별의 왈츠(Farewell Waltz. Candlelight Waltz)로 유명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듯 상당히 우울하고 슬픔 분위기의 연주이다. 1960년 미국의 5인조 보컬 그룹 ‘지 클립스(The G Clefs)는 ‘I Understand’라는 노래로 큰 인기를 얻었다.

E. 로이가 마이러의 행적을 알게 된 배경은?
기적적으로 마이러를 다시 만난 로이가 무척이나 행복감에 빠져있던 순간, 마이러는 로이의 어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로이의 집을 나간다. 이를 찾아 헤매던 로이는 자신이 전쟁터에 나가 있던 동안 생활고로 거리의 여자로 살아온 것을 알게 되고 더욱 죄책감에 복받치던 순간, 자신의 초라해진 모습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마이러는 로이에게 작별의 편지(당신은 제게 너무나 소중하지만, 우리에겐 미래가 없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준 사랑에 감사드려요. 더 쓸 수가 없군요. 안녕 내 소중한 사랑)를 남기고 워털루 브리지에서 트럭에 몸을 던진다. 그녀는 결국 아름다웠던 소중한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F. 주인공이 입었던 유명한 코트는?
트렌치코트(Trench Coat)로 겨울 참호 속의 혹독한 날씨로부터 영국 군인과 연합군을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코튼 개버딘(Cotton Gabardine) 소재가 주로 사용되며, 우수한 통기성/내구성/방수성으로 기능성이 뛰어나다. 1941년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토머스 버버리가 영국 육군성의 승인을 받고 레인코트로 이 트렌치코트를 개발한 연유로 일명 버버리 코트라고도 한다. 영화에서 로버트 테일러가 버버리를 입고, 연인 비비안 리와 비가 내리는 워털루 브리지에서 포옹하는 장면은 잊히지 않는 감동을 주는 명장면이다.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입었던 트렌치코트는 ‘험프리 보가트’ 룩으로 패션사에 기록되고 있다.

G.영화 시작에서 옛사랑을 추억하던 로이의 모습은?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1939년 9월 3일 저녁, 안개 자욱한 런던의 워털루 다리 위에 한 대의 지프가 멎는다. 로이 크로닌대령. 그는 프랑스 전선으로 부임하기 위해 워털루역을 향해 가고있는 중이었다. 군인다운 단정한 매무새엔 기품이 넘쳐 보였으나, 어딘가 얼굴엔 쓸쓸한 표정이 어리어 있었다. 마이러가 떠난 지 23년이 지난 그는 48살이 된 나이까지도 독신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서서히 워털루 다리 난간으로 간다. 난간에 기대어 선 그는 호주머니에서 조그만 마스코트를 꺼내어 든다. 일생을 통틀어 잊을 수 없는 그 마스코트. 그의 눈앞으로 슬픈 사랑의 추억이 서서히 물결을 이루며 다가온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사랑이란 이름의 시!
<에필로그>
마이러로 열연한 비비안 리의 사랑과 절망, 후회와 선택의 모습이 담겨있는 영화<애수>는 그녀가 ‘스칼렛 오하라’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보다 어쩌면 더욱 애절하고 가슴을 시리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남겨진 로이역의 로버트 테일러의 모습 역시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지켜주지 못한 남자의 고독한 심정을 극대화한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워털루 브리지, 그녀가 주었던 행운의 마스코트, 그리고 전쟁터로 나가기 전의 마지막 밤의 올드 랭 사인, 이런 기억들은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이다. 윤종신의 노래<아버지의 사랑처럼> 가사처럼 아버지의 사랑 모습을 한 번쯤 돌아본다면 현대에서의 계산적이고 쉽게 변하는 사랑에 하얀 첫눈만큼이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스토리가 덮혀지길 기대한다.

[아버지의 사랑처럼 : 언제인가 들어 보았지 아버지의 사랑 얘기를, 지금 우리와는 다른 한 총각 얘기를/ 그렇게도 힘들었다지 엄마에게 고백하기가, 요즘 우린 너무 흔하게 쓰곤 하는 말 사랑해/ 지금 우린 어떤 말도 수줍지 않아, 조금 깊이 빠져들면 머뭇거림 없이 널 사랑해, 아무런 고민도 없이. 많은 건 새것이 좋지 그렇지만 사랑하기엔 먼지 쌓인 아버지 것도 낭만 있잖니/언젠가 세월이 흘러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어떤 얘기 해주려고 하니, 아직은 늦지 않았어 변해보렴]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