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겨울 사랑,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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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사랑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태헌의 한역(漢譯)]
冬節相思(동절상사)
吾欲向君如雪片(오욕향군여설편)
不躊躇亦不彷徨(부주저역불방황)
一絲一毫不隱藏(일사일호불은장)
躍入吾君生涯裏(약입오군생애리)
固欲爲溫暖冬節(고욕위온난동절)
固欲爲千年白雪(고욕위천년백설)
[주석]
* 冬節(동절) : 겨울, 겨울철. / 相思(상사) : 사랑, 그리움.
吾欲向君(오욕향군) : 나는 그대에게로 가고 싶다. / 如雪片(여설편) : 눈송이처럼.
不躊躇(부주저) : 주저하지 않다. / 亦(역) : 또, 역시. / 不彷徨(불방황) : 방황하지 않다.
一絲一毫(일사일호) : 한 오라기의 실과 한 오라기의 털. 보통은 지극히 하잘것없고 작은 일을 가리키나 부사적으로는 ‘조금도’, ‘추호도’의 뜻이 된다. 이 말은 역자가 한역 과정에서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不隱藏(불은장) : 숨기지 않다.
躍入(약입) : ~에 뛰어들다. / 吾君(오군) : 너, 그대. / 生涯裏(생애리) : 삶 속, 생애 속.
固欲爲(고욕위) : 진정 ~이 되고 싶다. / 溫暖(온난) : 따스하다.
千年白雪(천년백설) : 만년설(萬年雪)과 비슷한 개념의 말로 천년토록, 곧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눈이라는 뜻이다.
[직역]
겨울 사랑
나는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또 서성대지 말고
조금도 숨기지 말고
너의 생애 속으로 뛰어 들어
진정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진정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漢譯 노트]
연 구분 없이 7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칠언 3구씩 두 단락으로 구성된 6구의 한시로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애매하게 처리가 된 부분은 원시의 제2,3,4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한역시만 놓고 보자면 원시의 제2,3,4행은 원시의 1행에 부가된 부사구가 되지만, 원시에서는 제2,3,4행이 제5행을 수식하는 부사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역자는 그 세 줄의 부사구를 제1행에 부가된 시구(詩句)로 보는 입장에서 한역을 진행하며 두 단락으로 나누었다. 역자가 이렇게 한역을 하게 된 이유는, 한역시가 전체적으로는 6구가 되지만 2구마다 의미가 완결되는 시형(詩形)으로 재구성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한역시는 각 단락마다 제2구와 제3구에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황(徨)’·‘장(藏)’, ‘절(節)’·‘설(雪)’이다.
김진섭(金晉燮) 선생이 <백설부(白雪賦)>에서도 비슷한 뜻으로 얘기했듯 눈은 대개 반가움의 상징이다. 눈이 와서 딱히 좋을 것도 없는 나이에 괜스레 눈이 기다려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는 것은, 너에게 그런 반가움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가 된다. 그리하여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눈[천년 백설]이 되어 너의 곁에 머물고 싶다는 것이 이 시의 주지(主旨)이다.
그러나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는 것은, 마음의 지향(指向)을 얘기한 것이지 현실 속에서 선택 가능한 방법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이미 이루어진 사랑에 대한 맹서(盟誓)라기 보다는, 곁에 머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희원(希願)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 때문에 역자는 이 시의 제목에 쓰인 ‘사랑’을 그리움의 뜻으로 이해하여 ‘相思(상사)’로 번역하였다.
올 겨울에는 유난히 비가 잦고 눈이 드물다. 그 언젠가 겨울에도 이처럼 눈이 드물어 역자는 문득 희시(戱詩) 한 수를 지어보게 되었다. 충족되지 않은 것이 때로 어떤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떠올리게도 하니, 무엇인가가 충족되지 않는다 하여 너무 투덜댈 일은 아닌 듯하다. 세상만사 모든 게 다 마음먹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待雪戱作(대설희작)
自嬰歡雪天(자영환설천)
半百情猶隱(반백정유은)
仙女罷工非(선녀파공비)
今時稀餠粉(금시희병분)
* 餠粉喩雪語見童謠눈(병분유설어현동요눈)
눈을 기다리며 재미삼아 짓다
아이 적부터 눈 내리는 날 좋아했는데
나이 오십에도 정 여전히 은은하여라.
선녀들이 파업을 하는 것일까?
요사이 떡가루가 드문 걸 보면.
* 떡가루는 눈을 비유한다. 말이 동요 <눈>에 보인다. ―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2019. 12. 31.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