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법인에서 일할 때 회사에 15년 정도 근무한 직원의 퇴직 절차를 처리한 적이 있다. 그 전부터 여러 기업들로부터 인도네시아 퇴직금 액수가 매우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직접 관련 규정을 찾아보며 정해진 계산법과 절차에 따라 지급해 보게 된 것이다.

15년을 조금 넘게 일했다는 이 직원은 약 27.6개월분의 급여를 받아서 퇴직하였다. 아무래도 금융회사는 제조기업보다는 급여 수준이 센 편이라 퇴직금 액수도 상당했다. 한 명을 내 보내는 데도 이 정도를 챙겨주어야 한다면 적게는 몇백명에서 많게는 5~6천명 이상의 종업원을 거느린 제조기업들은 퇴직금 부담이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조기업은 대부분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주겠지만 거기에 곱하기 수백, 수천을 해야 하는 일이다. 퇴직금 때문에 회사가 휘청할 수 있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이 되었다.

인도네시아 퇴직급여 체계는 2003년 법 제13호로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퇴직자가 받게 되는 급여는 크게 퇴직금, 근속사례금, 보상금, 전별금으로 나누어져 있다. 퇴직금은 근속 기준 첫 1년까지 1개월치 급여를 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근속기간이 1년 추가될 때마다 1개월 급여가 추가되어 최대 8년 이상 근무시 9개월치 급여를 받게 된다. 근속사례금은 근속 3년부터 6년까지 기준으로 2개월치 급여를 받게 되며 이후 근속 3년마다 1개월치 급여가 추가되어 24년 이상 근무하면 10개월치 급여를 받는다. 보상금은 미사용 연차휴가보상금, 그리고 위에서 계산한 퇴직금과 근속사례금의 15% 까지 지급할 수 있는 주거와 의료 보상금으로 구성된다.
[인도네시아 톡톡] 인도네시아 퇴직금 이야기
특이한 점은 퇴직금 등을 구성하는 각 요소를 퇴직사유에 따라 달리 계산하여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퇴직할 경우 30일 이전 고지 여부에 따라 보상금과 전별금 정도만 지급하면 되지만 회사가 파산하거나 적자 상태에서 폐쇄된 경우 또는 근로자가 경과실을 범하고 퇴직한 경우에는 계산된 퇴직금과 근속사례금과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정년퇴직을 하거나 사망한 경우, 경영효율화 등을 이유로 퇴직하게 된 경우에 퇴직금은 계산금액의 2배를 지급하고 근속사례금과 보상금도 주어야 해서 사측의 부담이 커진다.

문제는 해가 거듭될수록 퇴직금 계산의 기초가 되는 급여액이 현재 기준으로 최소 8% 이상씩 오르는 데다가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도 증가한다는 데 있다. 회사가 지게 되는 전체 퇴직금 부채 증가액이 기울기 1을 넘어 가파르게 우상향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최저임금 수준이 한화로 10만원~20만원 할 때만 해도 퇴직금 부채 수준이 어느 정도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카르타 및 인근을 기준으로 급여액이 30만원 중반 정도를 기록하고 앞으로도 꾸준한 상승이 예상되는 지금은 퇴직금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플 만도 하다.

당장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동안은 퇴직금 부채가 현실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 등 요인으로 인해 생산기지 이전이나 자동화, 효율화 조치를 취해야 하는 회사들은 퇴직금 조로 일시에 몇십억원 대의 현금유출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도 엄청난 액수의 퇴직금을 지급하고 직원들을 정리하고 단기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기업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곳들이다. 공장 문을 닫는 것도 퇴직금을 마련할 수 없으면 맘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몇몇 기업들은 최저임금이 지금 수준으로 오르기 전에 정규직 직원들을 퇴직 처리하고 그 시점에서 퇴직금을 정산한 후 지금은 계약직, 임시직 위주로 생산라인을 운영하기도 한다. 물론 직원들 입장에서야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고용안정 차원에서 더 바람직하겠으나, 퇴직금 규모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오르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해야만 했던 회사들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그나마 이것도 퇴직금을 정산할 수 있는 현금여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인도네시아 톡톡] 인도네시아 퇴직금 이야기
회사마다 막대한 퇴직금 부채 문제를 관리하고 이에 대해 대처하는 방안이 다르다 보니 회사를 밖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입장에선 주의가 필요하다. 상장기업이 아니거나 엄격한 회계 및 감사기준을 적용받지 아니하는 회사의 경우에 퇴직금 부채 규모가 제대로 재무제표 등에 표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많은 근로자를 고용하던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회사 문을 닫는 상황에 이르면 상거래 채권자나 금융관련 채권자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이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의 체불임금 지급 요구이다. 담보물을 포함하여 회사 자산을 점유하고 실력행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체불된 임금이야 몇 개월 분 정도 급여이겠지만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큰 것이 체불 퇴직금이다. 노동법에 따르면 경영상의 이유로 회사 문을 닫거나 회사가 파산하는 경우에도 법에서 정한 퇴직금, 근속사례금, 보상금 계산금액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

근로자들에게는 못 받은 몇 개월치 임금도 중요하겠지만 퇴직금이야 말로 액수가 더 크고 포기할 수 없는 권리이다. 당연히 충돌이 발생하고 담보권 행사 등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상거래나 금융거래상 채권을 원활하게 회수하기 위해선 담보물 평가와 더불어 해당 기업의 퇴직금 부채 현황도 면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공적/사적 연금으로 퇴직 후 자금이나 노후자금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려운 인도네시아 현실에서 근로자들에게 퇴직금은 정년퇴직이나 원치 않는 퇴직에 대비한 최후의 버팀목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 부담이 과중한 것도 사실이다. 퇴직금 제도 개편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는 있지만 근로자 입장에서 더 불리한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는 것은 여러 모로 쉽지 않다. 지금 상황에선 기업을 꾸려가는 입장에서 상수로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밖에 없다. 기업을 재무건전성 등을 밖에서 분석할 때에도 퇴직금 이슈는 중요한 변수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한국수출입은행(crosus@koreaexi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