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월 1일 설날은 인도네시아에서도 명절이다. 음력설(Tahun Baru Imlek) 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보통 중국새해(CNY, Chinese New Year)로 부른다. 그런데 음력설이 정식으로 공휴일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3년부터이며, 1968년부터 1999년 사이 약 30여년 간은 심지어 음력설을 쇠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설 뿐 아니라 언어와 종교, 문화 등 중국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실상 묶여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가 인도네시아 안에 있는 중국계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인도네시아 톡톡]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하였던 2001년 1월의 일이다. 착륙을 앞두고 기내에서 세관신고서를 작성하는데 신고사항 중에 중국어로 된 서적이나 인쇄물을 소지하고 있는지를 묻는 항목이 있었다. 중국 약재 같은 것들을 지니고 있는지를 묻는 항목도 있었다. 그 때에는 왜 이런 것들을 묻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고 과도정권을 거쳐 와히드 대통령 체제 하에서 단계적으로 해소되고는 있었지만 그 때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던 중국과 관련된 제약의 흔적이다.

몇 주 뒤 어학원에서 선생님과 신문으로 공부를 하면서는 중국 전통 탈춤인 ‘바롱사이’ 금지가 풀려 이제 탈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기도 하였다. 탈춤이 뭐길래 금지까지 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그 때가 바로 언어와 종교, 문화 모든 차원에서 중국계 시민들에게 가했던 속박이 하나둘씩 풀리던 시기였다.
[인도네시아 톡톡]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1945년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면서 중국계 주민들은 시민권에 대해 속인주의를 적용하는 중국법과 속지주의를 적용하는 네덜란드법 계열 인도네시아법에 따라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일부는 중국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인도네시아 시민이 되는 것을 선택하였다. 중국계라고는 해도 몇 세대를 거쳐 인도네시아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문화와 혈통은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도네시아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셈이다.

그러던 것이 수하트로 정권(1967~1998)에서 중국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동화(assimilation)’ 정책을 시행하면서 상황이 또 바뀌었다. 중국 명절을 쇠는 것도, 공식적으로 중국어나 문자를 사용하는 것도 다 금지되었다. 중국식 이름도 모두 인도네시아식 이름으로 바꾸어야 했다. 이러한 정책은 중국계 주민들의 경제적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동화정책이 시행된 이후 태어나거나 성장한 세대들은 상당수가 중국 쪽 뿌리에 대한 연결고리가 약하다. 중국어도 모르고, 집에서 쓰는 중국식 이름이 있는 경우에도 그 뜻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레이시아만 보아도 상황이 많이 다르다. 말레이시아 중국계 주민들은 대부분이 중국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또는 영어식) 시내에 있는 상점들의 간판을 보면 영어나 말레이어로 된 상호와 함께 한자가 병기되어 있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미디어도 그렇다. 중국어 티브이 채널과 신문도 많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중국어로 된 신문을 들고 읽고 있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중국계 주민들이 말레이어가 아닌 중국어나 영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말레이시아에서 같이 공부했던 한 중국계 친구는 처음으로 말레이어로 강연을 한 날 자랑스럽게 이를 SNS에 올리기도 하였다. 말레이시아 사람이지만 말레이어로 강연을 한 것이 꽤나 기념할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 친구는 5년 마다 한 번씩 중국 남부에 있는 종가를 방문한다고도 하였다. 가서 호적도 정리하고 회합도 가진다는 것이다. 꽤 놀랐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중국계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중국에 두고 있는 뿌리를 기억하고 지금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자카르타에서는 중국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자로 된 상호를 보기 어렵다. 중국계 주민들도 인도네시아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중국어를 아예 할 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중국어로 된 이름이 허용된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와 서구식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훨씬 더 많다. 수하르토 정권 퇴진과 함께 취해진 해금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중국설을 명절로 인정해 주고 유교를 6대 공식 종교 중의 하나로 인정해 주는 등 공식 조치들은 시행되었지만 동화정책 하에서 자라 인도네시아화된 중국계 주민들이 다시 중국 쪽 뿌리를 더듬어 찾기는 이미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국계 주민들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연계를 강화하려는 노력들도보인다.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진 후 몇 년 뒤에 중국의 한 도시에서 언어 연수를 했던 한 연수생의 말에 따르면 그 곳에서 중국어를 배우러 온 부유한 젊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과의 교류가 다시 열리자 중국계 부유층들이 제일 먼저 자녀들을 보내 중국을 다시 배우게 한 것이다.

꼭 중국으로 가서 공부하지 않더라도 이제 중국계 주민들에게 중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배우는것은 꽤 중요한 일이 되었다. 자카르타에서 만난 한 젊은 중국계 기업인에게 자녀를 미국에서 교육시킬 것인지 인도네시아에서 교육시킬 것인지 물었던 적이 있다. 이 기업가는 대학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낼 수도 있지만 그 전에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중국이나 대만회사의 대(對) 인도네시아 투자가 늘고 있는 지금은 사업을 하건 취업을 하건 간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라는 지위를 꽤 유리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꼭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뿌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깔려있다.

언젠가 중국계 기업인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여러 세대로 이루어진 이 대가족은 서로 중국어와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를 모두 섞어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하였다. 중국 쪽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중국인은 아닌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이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았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한국수출입은행 (crosus@koreaexi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