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생길에서 큰 상처나 좌절에 직면했을 때, 자신을 치유하고 극복할 힘을 얻기 위해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고우영의 <일지매>에서도 역적 김자점과 싸우는 의적 활동에서 받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일지매는 열공 스님이 있는 절의 깊은 광에서 치유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인생이 잘 나갈 때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생각도 없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겪고 나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자세를 갖게된다. 그로인해 다시 삶을 살아갈 통찰의 힘을 충전할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패닉 룸(Panic Room), 2002>에서도 삶에서 상처받은 주인공이 피한 공간이 다시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잠시 숨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현실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태원의 노래<솔개>처럼 고고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지만 가끔은 성찰의 동굴에서 자신의 현주소와 다음 스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작정 걸어가다가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솔개: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나르는 솔개처럼/ 소리 없이 날아가는 하늘 속에 마음은 가득 차고/ 푸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스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느덧 내게 다가와 헤아릴 수 없는 얘기 속에 나도 우리가 됐소/바로 그때 나를 비웃고 날아 가버린 나의 솔개여/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아/애드벌룬 같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의미 있는 하루/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 속에서 나도 움직이려나/머리 들어 하늘을 보면 아련한 솔개의 노래/수많은 농담과 진실 속에 멀어져간 나의 솔개여] <영화 줄거리 요약>
거대한 의약품 회사의 사장인 남편이 새로운 여자와 사랑에 빠지자 ‘멕(조디 포스터 분)’은 이혼 후, 당뇨를 앓고 있는 어린 딸 ‘사라(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와 뉴욕 맨해튼의 고급주택으로 도망치듯 이사를 한다. 그 집에는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 ‘패닉 룸(3센티의 철판으로 이루어진 방공호로 CCTV, 환기장치, 비상식량 등을 갖춘 완벽한 피난처)’이 있다. 이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3명의 괴한이 집으로 침입해 들어오고 이를 모니터로 본 멕은 딸과 ‘패닉 룸’으로 숨어든다.
괴한 중 ‘주니어(자레드 레토 분)’는 이 집 주인인 자신의 할아버지가 패닉룸에 숨겨둔 막대한 유산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했고, 패닉룸의 설계자인 ‘버냄(포레스트 휘테커 분)’과 정체불명의 마스크 맨 ‘라울(드와이트 요아캄 분)’을 데리고 왔지만, 집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멕과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게 된다. 페닉룸에 숨은 멕은 가까스로 전남편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하지만, 괴한들은 곧 전화선을 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남편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집을 방문했다가 괴한들에게 폭행당하고 포로로 잡히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멕이 딸의 인슐린을 가지러 간 사이 페닉룸에 혼자 남겨진 사라가 괴한의 인질이 된다. 사라를 인질로 잡은 설계자 버냄은 금고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이때 남편의 신고를 받은 2명의 경찰이 방문하는데, 멕은 인질로 잡힌 딸을 살리기 위해 아무 일도 없다고 돌려보낸다. 드디어 괴한들은 금고 안에서 2천 2백만 달러의 무기명 채권을 탈취하고 도망치려 하지만 멕과의 마지막 혈투가 벌어지게 된다. <관전 포인트>
A. 멕이 뉴욕 맨해튼의 저택에 입주하게 된 배경은?
남편의 배신으로 멕은 1879년 금융업자인 펄스타인이 지었고 1994년에 보수한 엘리베이터와 패닉룸까지 갖춘 저택으로 이사한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느낀 배신감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전 충전할 공간이 필요했다.
B. 괴한들이 패닉룸에서 나오게 하려고 쓴 최후의 수단은?
패닉룸 설계자였던 엔지니어 버냄은 환기통 속으로 프로판 가스를 흘려 넣어 모녀를 협박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멕은 환기통에 가스 토치로 불을 켜서 밖에 있던 괴한 주니어에게 화상을 입히는 반격을 한다.
주인공 조디 포스터는 14세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1976>에 출현하여 주목을 받았고, <피고인/The accused, 1988>, <양들의 침묵/The silence fo the lambs, 1991>에서 두번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명배우이기도 하다.
C. 집을 방문한 경찰이 다시 찾아온 이유는?
전남편의 신고로 집을 찾아온 2명의 경찰 중 한 명이 집요하게 멕을 탐문하자 멕은 모니터로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괴한을 의식하여 아무런 일도 없다고 둘러댄다. 하지만 노련한 경찰은 가는 척하면서 멕에게 “사정상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 눈으로 신호를 보내도 된다”라고 하며 돌아간다. 이 경찰은 인질을 보호하기 위해 잠복하고 있다가 나중에 들이닥치게 된다.
D. 세 명의 괴한의 각기 다른 목표는?
@주니어: 할아버지의 유산을 자신이 독차지하기 위해 패닉룸 설계자와 암살전문가까지 대동하고 집에 침입한다. 하지만 멕이 일정보다 일찍 이사를 들어옴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범죄 현장에서 도망가려고 한다. 결국 암살자인 라울의 총에 맞아 죽게 된다.
@버냄: 패닉룸의 설계자로 기술이 있던 사람이었지만 아이의 양육비 때문에 주니어의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던 사람이라 인질로 잡고 있던 딸이 쇼크가 오자 인슐린 주사를 놓아주기도 한다.
@라울: 살인마 같은 잔인한 인간으로 오직 돈만 챙기기 위해 주니어를 총으로 쏴 죽이고 마지막에는 멕의 가족까지 살해하려고 하지만 도망치던 버냄이 라울을 제거하게 된다.
E. 패닉룸 설계자 버냄의 변명은?
버냄은 인질인 멕의 딸에게 “자신은 열심히 살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맘대로 안 되는 거니까, 아이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범행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지, 범죄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결국 그는 3명의 괴한 중 가장 양심적이었지만 그의 허황한 꿈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게 된다.
F. 이 영화와 비슷한 스릴러 영화는?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다중인격 정신병자의 엽기적 살인극을 다룬 <싸이코/Psycho, 1960>
@오드리 헵번이 시각장애인으로 집에 침입한 살인마들과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는<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 1967>
@과거 부모들의 실수로 되살아난 살인마 프레디가 자녀들을 악몽에서 무참하게 살해해 나가는 호러<나이트 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
@ 크리스마스에 집에 홀로 남게 된 꼬마 맥컬리 컬킨과 흉악한 강도와의 기상천외한 결투를 벌이는 <나 홀로 집에/Home alone, 1990> <에필로그>
주인공 멕은 자신의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패닉룸’에 숨지만 결국 그곳에서 해답을 얻지 못하고 현실로 나와 진검승부를 통해 가족을 되살리게 된다. 패닉룸에서 얻은 교훈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딸과 경비가 있는 센트럴 파크가 보이는 아담한 방 2칸짜리 작은 집으로 이사를 결정하게 된다. 행복은 크고 비싼 아파트의 소유가 아니라 그 공간 속에 살아가는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과 편안하고 화목한 가족관계의 회복일 것이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처음 겪는 불안과 거리둠, 공포의 지옥에서 다시 한번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 가끔은 자신만의 성찰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치유와 충전의 시간을 거쳐 씩씩하게 스프링처럼 삶의 현장으로 복귀하여 삶을 살아내야 한다!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