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의 셀프 리더십] 참신(斬新)과 진부(陳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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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斬新)한 인재를 모시겠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이다. 참신하다는 앞 머리글 斬(벨 참)은 중국에서 죄인을 죽이기 위해 극형 틀로 사용했던 수레(車_수레차)와 도끼(斤_도끼 근)의 합성어다.
참(斬)이란 구태의연한 것들을 베어 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에서 말하는 참신(斬新)이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통해 새롭고 신선한 정치를 하기 위한 동량을 얻음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셈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정치 판을 보면 참신(斬新)이란 말은 선거를 위한 일시적 구호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냥 허공을 향해 던지는 소리에 불과할 뿐, 참신이란 말엔 무게감도 없지만 신선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 나물의 그 밥으로 차려진 밥상인데 그릇을 바꾸어 담는다고 맛이 달라질까? 너무나 익숙하게 경험했던 정치 세력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고, 당명을 밥 먹듯 바꾸고, 뜬금없이 위성정당을 만들고 그럴싸한 구호로 포장한다고 해서 참신한 정치는 아니다.
참신(斬新)이란 진부(陳腐)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는 나이와 성별, 출신성분을 초월한다. 나이가 많아도 얼마든지 참신한 생각을 도출하고 그에 맞는 정치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젊은 사람은 젊기 때문에 신선한 발상이 가능하고 과감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도 없다. 그리고 여성 정치인이 몇 %는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마치 적선이라도 하듯 몇 %는 여성 정치인의 몫이 되도록 하겠다는 선언도 참신하지 못하다. 거꾸로 여성이 60%, 남성이 40%라고 해서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참신한 정치판을 만들고 싶다면 다 열어 놓고 접근해야 한다. 기존에 경험했던 익숙한 사고, 익숙한 결정, 익숙한 경험들이 오답일 수 있다는 긍정적 의심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거나 소속 정당 머리수를 늘리기 위한 꼼수는 전광석화보다 빠르게 처리하면서 국민을 위한 각종 법안은 창고에 쌓아 놓은 채, 내 깔겨 버리는 정치를 참신하다고 할 국민이 있을까?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그때서야 먼지 쌓인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는 정치는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정치다. 진부(陳腐)란 ‘썩은 고기를 남들이 보라고 전시하는’ 어리석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진부한 정치는 썩은 고기를 보여주면서 새것처럼 착각하는 정치를 이른다 할 것이다.
참신한 정치를 할 마음이 있다면 특권의식부터 내려놓길 제안한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호기롭게 국민을 윽박지르는 이상한 정치인은 국민이 원하는 참신한 정치인이 아니다. 표 앞에선 겸손하고, 국회에 입성하면 교만해지는 정치인도 역시 참신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당의 공약은 틀린 것이고 자당의 것이 맞다고 큰 소리치는 정당 또한 참신한 당은 아니다. 상대 당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 당이 옳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진부(陳腐)한 정당이라는 것 외엔 아무런 감응도 느껴지지 않는다.
일상의 습관적 반복이 개인의 삶을 녹슬게 한다면, 정치의 습관적 반복은 나라를 녹슬게 만든다. 선거철만 되면 실현 불가능한 공략이 넘쳐난다. 자신이 당선되면 못 할 것이 없는 것처럼 뻥 카드를 남발한다. 정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평소엔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사람들이 선거철에 왜 그리 자주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공약을 보고 있자면 사탕 물만 잔뜩 발라 놓고 그 많은 재원은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앞 뒤가 맞지 않는다. 더 이상한 건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 많았던 공약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공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행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지지는 물론이고 관계법령, 이해관계, 재원 마련 등 살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책상에서 뚝딱 만들어서 보기 좋게 포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걸 보면 기가 찰 일이다. 막상 국회에 입성하면 국민을 위해 제대로 된 입법 하나 발의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이종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선거철만 되면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이다. 참신하다는 앞 머리글 斬(벨 참)은 중국에서 죄인을 죽이기 위해 극형 틀로 사용했던 수레(車_수레차)와 도끼(斤_도끼 근)의 합성어다.
참(斬)이란 구태의연한 것들을 베어 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에서 말하는 참신(斬新)이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통해 새롭고 신선한 정치를 하기 위한 동량을 얻음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셈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정치 판을 보면 참신(斬新)이란 말은 선거를 위한 일시적 구호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냥 허공을 향해 던지는 소리에 불과할 뿐, 참신이란 말엔 무게감도 없지만 신선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 나물의 그 밥으로 차려진 밥상인데 그릇을 바꾸어 담는다고 맛이 달라질까? 너무나 익숙하게 경험했던 정치 세력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고, 당명을 밥 먹듯 바꾸고, 뜬금없이 위성정당을 만들고 그럴싸한 구호로 포장한다고 해서 참신한 정치는 아니다.
참신(斬新)이란 진부(陳腐)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는 나이와 성별, 출신성분을 초월한다. 나이가 많아도 얼마든지 참신한 생각을 도출하고 그에 맞는 정치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젊은 사람은 젊기 때문에 신선한 발상이 가능하고 과감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도 없다. 그리고 여성 정치인이 몇 %는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마치 적선이라도 하듯 몇 %는 여성 정치인의 몫이 되도록 하겠다는 선언도 참신하지 못하다. 거꾸로 여성이 60%, 남성이 40%라고 해서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참신한 정치판을 만들고 싶다면 다 열어 놓고 접근해야 한다. 기존에 경험했던 익숙한 사고, 익숙한 결정, 익숙한 경험들이 오답일 수 있다는 긍정적 의심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거나 소속 정당 머리수를 늘리기 위한 꼼수는 전광석화보다 빠르게 처리하면서 국민을 위한 각종 법안은 창고에 쌓아 놓은 채, 내 깔겨 버리는 정치를 참신하다고 할 국민이 있을까?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그때서야 먼지 쌓인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는 정치는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정치다. 진부(陳腐)란 ‘썩은 고기를 남들이 보라고 전시하는’ 어리석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진부한 정치는 썩은 고기를 보여주면서 새것처럼 착각하는 정치를 이른다 할 것이다.
참신한 정치를 할 마음이 있다면 특권의식부터 내려놓길 제안한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호기롭게 국민을 윽박지르는 이상한 정치인은 국민이 원하는 참신한 정치인이 아니다. 표 앞에선 겸손하고, 국회에 입성하면 교만해지는 정치인도 역시 참신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당의 공약은 틀린 것이고 자당의 것이 맞다고 큰 소리치는 정당 또한 참신한 당은 아니다. 상대 당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 당이 옳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진부(陳腐)한 정당이라는 것 외엔 아무런 감응도 느껴지지 않는다.
일상의 습관적 반복이 개인의 삶을 녹슬게 한다면, 정치의 습관적 반복은 나라를 녹슬게 만든다. 선거철만 되면 실현 불가능한 공략이 넘쳐난다. 자신이 당선되면 못 할 것이 없는 것처럼 뻥 카드를 남발한다. 정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평소엔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사람들이 선거철에 왜 그리 자주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공약을 보고 있자면 사탕 물만 잔뜩 발라 놓고 그 많은 재원은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앞 뒤가 맞지 않는다. 더 이상한 건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 많았던 공약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공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행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지지는 물론이고 관계법령, 이해관계, 재원 마련 등 살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책상에서 뚝딱 만들어서 보기 좋게 포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걸 보면 기가 찰 일이다. 막상 국회에 입성하면 국민을 위해 제대로 된 입법 하나 발의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이종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