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한 송이 꽃, 도종환
한 송이 꽃



도종환



이른 봄에 핀


한 송이 꽃은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피어 있느냐고


묻는



[태헌의 한역(漢譯)]


一枝花(일지화)



早春放綻花一枝(조춘방탄화일지)


於人一個疑問號(어인일개의문호)


君亦如此開花非(군역여차개화비)



[주석]


* 一枝花(일지화) : 한 가지의 꽃. 한 송이 꽃.


早春(조춘) : 이른 봄. / 放綻(방탄) : (꽃이) 피어나다. / 花一枝(화일지) : 꽃 한 가지, 꽃 한 송이.


於人(어인) : 사람에게는. / 一個(일개) : 하나, 하나의. / 疑問號(의문호) : 의문 부호. 물음표. ‘?’


君(군) : 그대, 당신. / 亦(역), 또, 또한. / 如此(여차) : 이와 같이, 이렇게. / 開花非(개화비) : 꽃을 피웠는가? 시구(詩句) 말미에 쓰이는 부정(否定) 부사 ‘不(불)’, ‘否(부)’, ‘未(미)’, ‘非(비)’ 등은 시구 전체를 의문형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梅花著花未(매화착화미)”는 “매화가 꽃을 피웠던가요?”의 뜻이다.



[직역]


한 송이 꽃



이른 봄에 핀


꽃 한 송이는


사람에게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꽃을 피웠나요?”



[한역 노트]


이른 봄철에 꽃이 피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혹한(酷寒)이라는 고통을 잘 견뎌냈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꽃이 피는 것은 단풍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에게 매우 아픈 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꽃이 피었다는 것은 또 그런 아픔을 잘 참아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과 아픔 속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것이 어찌 꽃만의 일이겠는가? 예술이 그렇고 스포츠가 그렇듯,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거의 모든 인간사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꽃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당신은 혹시 고통과 아픔이 두려워서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못하지는 않았습니까?’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꽃이 꽃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듯,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그것이 바로 꽃으로 피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세상에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무엇인가를 대가로 치르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하나의 진리 앞에서 우리가 겸허해지고 그 진리를 실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한 송이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원시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꽃을 피운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역자는 부귀(富貴)가 아니면 명예(名譽)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 동양의 ≪탈무드≫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채근담(菜根譚)≫에 부귀와 명예를 꽃에 비유하여 논한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부귀와 명예가, 도덕(道德)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산림(山林) 속의 꽃과 같아 당연히 여유로워 번성하여 뻗어나가고, 공업(功業:이룩한 공)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화분(花盆)이나 화단(花壇) 속의 꽃과 같아 이리저리 옮겨지다가 시들기도 하고 피기도 하며, 만약 권력(權力)으로 얻은 것이라면 화병(花甁)이나 화발(花鉢:꽃사발) 속의 꽃과 같아 그 뿌리가 심어지지 않았으니 그것이 시드는 것은 서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富貴名譽 自道德來者 如山林中花 自是舒徐繁衍 自功業來者 如盆檻中花 便有遷徙廢興 若以權力得者 如甁鉢中花 其根不植 其萎可立而待矣]


부귀와 명예가 무엇을 통하여 꽃을 피우느냐에 따라 그 생명력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런 글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전(古典)의 가치는 바로 이러한 데에 있다.


연(聯) 구분 없이 6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3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다. 한역시의 압운자는 ‘枝(지)’와 ‘非(비)’이다.


2020. 4. 14.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